[스님의 명법문] 부산 장안사 정오 스님

스스로 공덕을 쌓는 법

2017-08-01     김우진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올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지요. 불자들 주변에 불화 없이 여름나기를 잘 하셨으면 합니다. 

올해는 3년 만에 윤달이 든 해입니다. 흔히들 윤달은 손이 없는 달이라고 합니다. 즉 보통의 달과 다르게 탈이 없는 달이라, 예로부터 집수리와 이사는 물론 조상의 묘를 이장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윤달에는 가정에서 중요한 일들을 정하기도 하지요. 사찰에서는 윤달이 되면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를 지냅니다. 생전예수재는 사후를 위해 살아있을 때 미리 재를 올려 공덕을 쌓는 불교 의식 중 하나입니다. 천도재나 49재, 수륙재와는 다른 의미죠. 사찰에서 예수재는 삼사순례, 가사불사와 함께 윤달에 행하는 대표적인 불교 의식이라 하겠습니다. 생전예수재는 예수 칠재라고도 하며 사후에 행할 일을 미리 한다는 의미에서 역수逆修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예수재는 ‘미리 닦는다’는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불자들이 소홀했던 자기 수행을 점검하기도 합니다. 살아생전 자신에게 생기는 크고 작은 업들을 참회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선행을 발원하는 의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예수하고자 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극락왕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보시행으로 공덕을 쌓는 의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망자를 위한 천도재가 타력에 의한 것임에 비해, 생전예수재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구제하는 자력 수행을 실천할 수 있는 의례라 하겠습니다.

정오 스님 / 사진 : 최배문


|    복 짓는 삶

‘화복禍福은 자기에게 달렸고 득실得失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화와 복은 자신이 짓는 대로 따라오는 것이죠. 재앙을 부르는 행동을 하고서 복이 오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이는 ‘복 짓는 행동을 한다면 재앙이 닥치는 법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득실得失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정성을 다해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저 가만히 있는데도 저절로 복을 얻는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생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업의 과보에 따라 하늘에 달린 일이니 좋은 일을 하면서 악업을 소멸시키고, 현재를 살아가면서 복을 지으며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달은 반드시 둥글지는 않다. 
이지러짐 역시 아름다움의 일종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반드시 모든 것을 
누리지는 못한다.
누릴 수 있음도 일종의 복이다.
재물이 있으나 사용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차이가 없고 
돈이 있으나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없음과 다르지 않다.
한 마음으로 소유만 생각하기보단 소비하라.
소유는 부자일 뿐이지만 
소비야말로 지혜로운 자이다.
나누는 것을 소유로 삼으면 탐욕하지 않고 
바쁜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면 괴롭지 않고 
근면을 부유함으로 삼으면 가난하지 않고 
인내를 힘으로 삼으면 두렵지가 않다. 

대만의 성운 대사는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삶과 재물의 쓰임과 베풂에 대해 잘 표현해 놓은 말이죠. 우리는 평생 잘 살아갈 것만 같아도 때로는 힘든 과정도 겪습니다. 여러 고비를 넘기며 살아가는 삶도 있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복을 지어야  합니다. ‘미리 닦아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볼 수 있지요.

 

|    사소한 말도 중시하라

복을 짓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악업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애써 지은 복이 무색할 정도로 크고 작은 업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입으로 짓는 업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가 많지요.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리지요.

자기 이웃이 도둑이라고 소문을 퍼트린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 이웃은 체포되었고, 조사를 통해 무고하다는 게 증명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곤 즉시 소문을 퍼트린 노인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습니다.
노인은 법정에 서서 “그건 제가 그냥 한 말이고 아무 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판사는 “종이에 이웃에 대해 이야기한 모든 걸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게 잘라서 집에 가는 길에 뿌려라.”고 하면서, 판결은 다음 날로 연기했습니다.
다음 날 노인은 법정으로 돌아와 판결을 기다렸습니다. 자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했겠죠. 판사가 말했습니다. “판결을 받기 전에 어제 잘라서 뿌린 종이를 찾아 오라. 모든 조각을 반드시 다 모야야 한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람이 불어 사방으로 날아갔을 것”이라며 “어디서부터 찾아봐야 하는지 알 턱이 없다.”고 했지요.
판사는 노인을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이건 당신이 타인의 평판을 깎아내린 그냥 했던 말과 같다. 나쁜 말은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이 이야기의 노인이 차라리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애초에 침묵을 지켰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은 총칼보다도 강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무심코 뱉은 말에 누군가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심지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불교에서 말을 조심하라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사찰 법회에서 자주 외는 『천수경』에서도 ‘정구업진언凈口業眞言’이 첫머리에 들어갑니다. 남을 향한 말을 좋게 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그냥 하는 것으로도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소문을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을 망치게도 하지만 결국 구업을 지은 자신에게도 해가 되는 일입니다.
이번 정유년 윤달 생전예수재에 우리 불자들이 복 짓는 삶을 서원했길 바랍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라며, 더불어 힘든 나날을 보내더라도 너도 나도 예쁜 입으로 좋은 말만 하면서 살아가는 훌륭한 불자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서로에게 상처 주지 마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복과 업을 잘 가려 선덕을 쌓기 바랍니다. 불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법문. 정오 스님

부산 기장 장안사 주지. 1990년 범어사 벽파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일타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범어사 금강암, 가야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기장군불교연합회 제11대 회장과 중앙종회의원, 원효학원 해동중학교 이사, 사회복지법인 범어 이사, 사회복지법인 보현도량 이사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