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은둔의 나라 부탄

우리가 잊어버린 것이 거기에 있다

2017-08-01     정태겸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3,600km가 훌쩍 넘는 거리에 있는 작은 나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부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부탄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부탄=티베트불교’라는 편견이다. 사람들은 부탄이 티베트불교를 신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탄의 불교는  외형적으로 티베트불교와 흡사해 보일 뿐, 부탄만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해왔다.

사진 : 정태겸

|         부탄은 부탄이다
부탄이 독자적인 발전을 해온 배경에는 샵둥 나왕 남곌이라는 인물이 있다. 샵둥 나왕 남곌은 부탄의 국조國祖다. 본래 티베트불교 둑빠까규 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오랫동안 티베트에 머물며 공부하던 그는 고향인 부탄으로 돌아와 부족국가들을 통일하고 지금의 부탄이 되는 기초를 만든다. 부탄이라는 이름도 당시에 지어졌다. 이 시기가 17세기다. 


부탄은 시작할 당시부터 둑빠까규라는 불교적 토대 위에 세워졌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티베트불교, 다른 말로 금강승불교라 불리는 그 불교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위에 세워진 그들만의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고, 부탄을 온전히 보기란 불가능하다. 세상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그들만의 정체성이 뚜렷한 나라. 그래서 부탄은, 부탄이다.


부탄의 유적지를 살펴보면 이 나라에서 불교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부탄에서 만나는 여행지의 90% 이상이 불교 관련 유적지들이다. 아니, 유적지라는 표현은 거슬린다. 불교는 그들에게 삶의 일부다. 그네들의 삶 속에 자리한 불교문화가 이방인들에게는 여행지이자 관광의 대상이 된다. 1,500년이 훌쩍 넘은 빛바랜 탕카(불화)를 손으로 만져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국보급 탕카라는 설명을 들었던 차였다. 이방인의 눈에는 기겁을 하게 되는 모습이건만, 그들은 태연하다. “저래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탕카는 우리에게 신앙의 대상이다. 보존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일부다. 도리어 신앙의 대상을 신앙이 아닌 보존의 대상으로 삼는 건 신앙을 박제하는 행위라고 본다.”고 답한다.


부탄에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기능의 건축물이 있다. ‘종dzong’이라고 부른다. 그 안에 사원과 행정기관을 모두 품는다. 원래 종은 과거 세 차례에 걸친 티베트의 강력한 침공에서 버텨내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성이었다. 버티기 위해 행정기관과 사원을 건축물 내부에 모두 담아두었고, 이 난공불락의 성은 끝내 티베트의 침공을 물리쳐냈다. 당시에 생겨난 건축양식은 지금도 이어진다. 전국 20개의 종칵(지방자치단위)에서 중앙행정기관이자 그 지역의 중심 사원은 여지없이 ‘종’이다. 외국인들에게는 부탄을 대표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사진 : 정태겸

|         ‘꾸동’이라 불리는 등신불의 신비
스무 개에 달하는 종들 중에서 부탄을 방문하면 반드시 보게 되는 종이 있다. 그중에서도 과거 부탄의 정부청사 역할을 했던 푸나카종과 현재 정부청사의 역할을 하는 따시최종은 으뜸과 버금으로 꼽힌다. 과거 부탄의 수도는 푸나카였다. 1637년부터 1907년까지 부탄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오랜 역사를 품어 안았던 푸나카의 종은 다른 어떤 종보다도 아름답고 화려하다. 푸나카종은 히말라야 설산에서 시작된 두 개의 거대한 강 포추(아버지 강)와 모추(어머니 강)가 합류하는 지점 바로 위에 올라 앉아 있다. 


푸나카종은 부탄인들의 자부심이라 할 만하다. 내부는 무척 넓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면 중앙의 법당을 거쳐 건축물의 끝을 향해 나아간다. 이곳에는 국조인 샵둥 나왕 남곌의 등신불과 함께, 부탄의 국교라고 할 수 있는 둑빠까규 파의 개산조 짱빠갸레의 척추사리가 모셔져 있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성스러운 곳이기에 지금도 부탄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은 푸나카종에서 열리고, 국왕과 승왕은 푸나카종으로 모인다. 티베트의 중심지 라싸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달라이 라마의 겨울궁전인 포탈라궁을 꼽는다면, 부탄의 대표 건축물은 푸나카종을 꼽을 수 있다. 따시최종도 그 역사는 꽤 깊다. 이전에는 사원이었지만, 1952년 제3대 국왕이었던 직메 도지 왕축이 수도를 푸나카에서 팀푸로 옮기며 부탄의 정부종합청사 및 승왕청의 본부 기능이 부여됐다.


이번 여행 중에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녜젤강(‘강khang’은 사원을 뜻한다.)의 개방이었다. 부탄의 왕디 지역에 있는 녜젤강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속살을 해외언론에 보여준 적이 없었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사원은 그림 같은 왕디 지역의 풍광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곳에 올라 앉아 있다. 부탄의 사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녜젤강 역시 전기보다는 촛불과 자연 채광에 의지한다. 부탄 내에서 명성이 자자한 이 사원에서 제67대 국사가 배출되었는데, 제67대 국사였던 니저 틴리 렌둡 스님은 입적 후 등신불이 됐다. 부탄사람들은 등신불을 ‘꾸동’이라고 부른다. 꾸동은 현대과학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오랜 수행으로 경지를 넘어선 고승들은 입적과 함께 순간적으로 빛을 발하며 몸이 쪼그라든다. 쪼그라든 육신은 우리가 흔히 쓰는 쟁반 위에 올릴 정도로 작다. 그렇게 믿기 어려운 신묘함을 보여준 ‘꾸동’은 작은 스투파에 모셔져 후세로 전해진다. 스님의 꾸동 역시 스투파 형태로 녜젤강에 모셔져 있다.


부탄 여행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역시 탁상 사원이다. 탁상 사원은 파드마 삼바바가 수행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파드마 삼바바는 티베트를 떠나 부탄에서 수행을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험준한 절벽 사이에 머물며 수행을 했다고 전해진다. 탁상 사원이 올라앉은 지점은 해발 3,100m다. 당시로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르기란 불가능했을 곳이다. 그 절벽 위에 사원이 앉았다. 설화에 따르면 당시 티베트인 아내가 호랑이로 변신해 그를 태우고 이곳에 올라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해진다. 그런 연유로 탁상 사원은 ‘호랑이 둥지(Tiger’s Nest)’라고 불린다.

사진 : 정태겸

|         행복은 조건이 아니다
부탄은 알려져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부탄에 대한 거의 유일한 정보라면 ‘행복지수 1위의 나라’라는 것 정도. 때문에 부탄을 찾는, 혹은 찾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행복한 나라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사실 부탄에서 행복의 단서를 찾기는 어렵다. 여행은 목적지를 순회하는 여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부탄이라는 나라의 시작과 현재의 이면에 담긴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행복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여행 중에 행복의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는 부탄사람들뿐이다. 그들의 표정과 사고방식에서 행복을 읽는 게 유일한 길이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정말 행복한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당신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라고 되묻는다. 행복은 삶의 일부기에 드러나지 않고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부탄은 국민들의 행복을 담보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두었다. 이른바 ‘국민총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라 불리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를 전공한 제4대 왕 직메 싱계 왕축은 국민들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고민했다. 서구권 국가들의 현실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봤다. 부탄만의 실천방향을 찾는 게 필요했다. 이를 위해 국가총행복위원회를 설치하고 수년간의 연구 끝에 GNH를 만들어냈다. 


제4대 왕이 GNH를 개발할 당시, 그와 머리를 맞대고 GNH의 핵심인 4개의 기둥과 9개의 영역, 33개의 지표를 완성한 인물이 있다. 국가행복연구소의 도르지 펜졸 소장이다.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 짧지 않은 시간 이야기를 나눴던 그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조건으로 판단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볼 때 행복은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봤죠. 좋은 집과 좋은 차, 은행 잔고가 행복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마음 상태가 더 중요해요. 그렇다면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행복하게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GNH였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마음밭을 풍족하게 가꾸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GNH는 부탄 의회가 입안하는 모든 정책의 근간이 된다. 그중에서도 자연환경 보호와 무상교육, 무상의료, 공동체 문화 보전 등의 내용은 살펴볼 만하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은 우리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부탄에서는 벌목이 금지돼 있고, 생명을 의도적으로 죽이는 도축도 하지 않는다. 낚시마저 금지다. 모든 육류는 온전히 수입에 의지한다. 이 배경에는 불살생 계율이 자리하고 있다.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심지어 부탄 내에 머무는 외국인 여행자까지도 무상의료의 대상이 된다. 삶을 이어가는 데 있어 필요한 부분을 국가가 책임지는 행정. 내 삶에 부족함이 없이 하루가 평온할 수 있다면, 부의 많고 적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대신 그들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지키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부탄에 축제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다. 축제에 온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진지하다. 축제는 그 자체로 불교의식과 직결되며 신앙은 삶의 주춧돌이 된다.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사회. 부탄은 정토세계에 가장 근접해 있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 지금, 이 땅의 우리가 잊어버린 그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