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인도 1 부처님이 나신 나라

불국토 순례기, 인도 기행 1

2007-09-15     관리자

거리 곳곳에 집없는 사람들의 빨래가 어지러이 널려 있고, 옷가지마다 걸린 가난과 그 아래 누운 사람들, 지천으로 널린 체념들, 체념이 주는 찰나의 편안함을 베고 누운 사람들, 무심히 그 사이를 오가는 달관의 소떼들....

인도 종교를 공부한다는 인연으로 대여섯 해를 그 곳에서 살고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거리의 풍경, 그것도 인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의 풍경을 몇 줄 그려낼 수 있을 뿐이다. 아직 행간을 읽어낼 눈이 내게는 없다. 때로는 그 행간의 실체를 의심해 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너저분하게 방치된 길거리의 풍경이 정작 더 여실하게 다가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인 나라, 인도에 대한 나의 애정은 도무지 맹목적이어서, 늘 유마경의 한 구절을 놓지 않으려 한다. " 언덕 위의 마른 땅에는 연꽃이 나지 않지만, 낮고 습한 진흙 가운데는 연꽃이 나느니라. "

겉으로 보는 인도는 실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한 나라 안에 백 가지도 넘는 언어가 통용되고 있으며, 흑백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온갖 피부색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나라가 인도이다. 길거리에서 태어나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생을 마치는 숱한 삶들이 널려 있는가 하면,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 수십의 하인을 부리는 호사스런 삶들 또한 드물지 않다. 이미 오래 전에 핵을 보유할 수 있었고 자체 기술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나라가 인도지만, 이 나라의 서부에는 아직도 사띠(sati)라는 믿기지 않는 풍습이 남아 있어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함께 화장되는 부덕(婦德)이 종용되기도 한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다양함은 차라리 입을 다물게 한다.

이와 같이 인도가 지닌 언어, 인종, 신들 그리고 생활 문화 등은 이들이 과연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자아낼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난다. 실로 현기증이 날 정도의 다양성 속에서도 무엇인가 인도적인 통일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삶의 자세에서이다. 이들의 종교적인 열정은 하나같이 유별나다. 구걸한 돈을 신전에 드리는 거지의 뒷모습에서는 아예 체념과 달관의 구별이 있음을 의심케 한다. 어슴 새벽 갠지스 강가에 서면 - 강물에 몸을 담그고 마음조차 담근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실제로 종교란 사람의 알음알이로 잴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님을 느낀다. 여기에는 그럴듯한 이론도 설명도 무의미하다. 다만 갠지스가 있을 뿐, 업을 씻어내리는 갠지스가 있을 뿐이다.

인도 사람들에게 종교는 생득적이며, 따라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이미 어느 한 종파에 속해 있으며, 평생 이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드물다. 종교란 별스런 그 무엇이 아니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삶의 방식이 다르듯, 다양한 종교, 다양한 신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인도에 살면서 "당신은 어떤 신을 섬기는가? " 하는 나의 우문을 그만두기까지 수 년이 걸렸다는 것은, 웃어넘기지 못할 내 나라의 종교 현실인지도 모른다.

힌두교도들은 불교를 그들의 종교와는 다른 어떤 이질적인 문화의 산물로 여기지 않는다. 부처님을 비슈누 신의 아홉 번째 권화(權化)로 간주하는 비슈누교의 오랜 전승이 있는가 하면, 불적지마다 힌두교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 또한 오늘날 인도의 현실이다. 뉴델리의 대표적인 힌두사원이라 할 수 있는 락슈미- 나라야나( Laksmi - Narayana )사원에서, 힌두교의 신들과 함께 모셔진 불상을 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물론 이것은 불교가 그 연원에 있어 인도의 고대 종교를 배경으로 발흥하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또한 모든 종교의 상대적인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인도에서는 불교가 서부 벵갈의 일부와 아쌈 지방을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모든 불자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의 땅이요, 한번쯤 몸을 닿아 직접 느껴보고 싶은 나라인 것은 여기에 부처님의 발길이 어려있는 까닭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인도에 살면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여러 차례 이곳의 불적지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곳이라도 갈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고, 누구와 함께 가는가에 따라서도 또한 그 다가오는 감회가 다른 곳이 여기 불적지들인 것 같다. 그래서 늘 처음이고 늘 새롭다.

대체로 말하여 인도의 불적지들은 동남아의 태국이나 미얀마의 사원에서 보이는 그런 화려함이 있는 곳이 아니며, 중국의 대찰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웅장함이 있는 곳은 더욱 아니라 할 것이다. 산치와 보드가야의 몇몇 유적들 외에는 제대로 보존되고 관리되는 곳이 드물 정도로 내버려져 있는 것이 인도 불적지들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불적지들이 담고 있는 의미들을 생각한다면, 어느 곳 하나 귀하지 않은 곳이 없고, 그냥 스쳐 지나버릴 수 없는 곳이 바로 인도의 불적지들이다.

불연이면, 적벽돌의 흔적 위에 흩어지는 스산한 바람 한 자락을 안고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신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