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의 뒷얘기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09-14     관리자


중국 당나라때 조주(趙州) 스님이 투자(投子) 스님에게 묻기를 "크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난다면 어떠한지요?"라고 하자 투자 스님이 이르기를 "밤길을 허락하지 않으니 날이 밝거든 오시오."라고 하였다.
이 선문답은 벽암록 제 41측과 종용록(從容錄) 제 63측에 나오는 선화(禪話)인데 말하자면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고 추앙받는 조주 스님이 천하를 주유하며 무심탁마도 하고 후학도 가르치며 민심도 순화시킬 겸 운수행각 중에 일어난 고사로서 이번 투자 스님과의 대치는 일종의 선리심천탐색(禪理深淺探索)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주 스님이 물은 뜻은 보통 학인이 해탈경지를 몰라 궁금하여 물어 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님은 확실한데 시치미 떼고 상대방의 경지를 물은 것은 투자 스님을 저울질하여 보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그런데 물음을 받은 투자 스님은 비범한 선의 거장이라 그 이색적인 물음에 그 답 또한 절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원래 생사가 없는데 사활을 들먹이니까 역설로 죽은 사람이 살아났나니, 밤에나 횡행하는 유령 같은 그런 상대와는 만날 수 없으니 날이 밝거든 정정당당하게 대하자는 것으로 말은 그러하나 속뜻은 원래 생가를 초월하지 못한 사람(실제는 그렇지 않지만)하고는 상대할 수 없다는 풀이가 된다.
대저 크게 죽는다는 것은 물론 범부의 육체적 사멸을 말한 것이 아니고 유무·생사·시공·시비·득실·일체사량분별을 떠나 범성미오 등 차별성을 초월한 대오철저의 경지를 큰 죽음이라고 하는데 본래무일물로 한 번은 거기에 투철하지 않고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선의 소극적인 면일 뿐 종횡무애한 활기작용(活機作用)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크게 죽었다가 다시 크게 살아나서 차별현상계에 자유자재로워져야 한다. 색즉시공과 동시에 공즉시색이 되어야 이것이 선의 적극적인 다른 일면이 된다. 이러한 이면의 체달이 있어야만 비로소 참된 선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선문답의 내용은 전술한 바와 같아서 조주 스님이 투자 스님을 인증하여야 할 판이라 이 두 분의 선배들이 후학들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겨준 고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한가지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비범한 선의 대가인 투자 스님이지만조주 스님이 생사없는 곳에 생사를 거론하는 것을 비평할 줄만 알았었지 자기 자신은 또다른 집착 즉 실상(實相)에는 없는 명암(明暗)에 걸린 것을 살피지 못한 허점도 드러냈다고 보아야 하니 양대 선지식의 대등한 법력을 추앙할 뿐이다.
이상 선문답 뒷얘기는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우리의 당면문제로 삼고 진지하게 연구하고 행원적 정진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