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연蓮과 사자獅子

2017-06-18     심재관

연蓮

‘물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속의 「코뿔소경經」은 옛사람이 직접 필사筆寫하여 남긴 경전들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들 중 하나다. 거의 이천 년 전에 남겨진 경전 속에서 수행자의 덕목은 연꽃에 비유되고 있다. 연蓮은 표면을 미세하게 덮고 있는 수많은 솜털 때문에 꿀이나 진흙에도 젖지 않는다. 세속의 번뇌에 물들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이 곧 연꽃의 모양이다.

연蓮은 불교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식물이며, 불교의 이념과 실천을 상징적으로 잘 대변하는 식물이다. 기원 전후에 등장했을 것으로 보이는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의 대화 속에서 나가세나 스님은 연꽃의 모습을 빌어 수행자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말한다. 밀린다Milinda 왕에게 나가세나Nāgasena 존자는 이렇게 말한다.

“왕이시여, 비록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랐지만, 연꽃은 물에 젖지 않습니다. 그처럼 수행을 통해 자신을 갈고 닦은 비구는, 자신이 받은 공양물에 집착하거나 자신이 얻은 추종자나 명성 등에 의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왕이시여,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연꽃의 첫 번째 덕목입니다.” 그리고 나가세나 스님은 연꽃이 수면 위로 우뚝 올라오는 모습을, 미세한 바람에도 진동하는 연꽃의 모습을 말한다. 이는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수행자, 사소한 잘못도 매우 경계하는 수행자의 자세를 연꽃에 빗댄 것이다.

그렇지만, 의외로 초기 불교경전에서 연꽃에 대한 비유나 묘사가 생각만큼 그렇게 풍부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비유나 상징이 완전히 불교적으로 해석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불교적으로 해석된 연꽃보다 불교 이전의 대중들이 가지고 있었던 연꽃의 의미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인도의 연꽃이 보여주는 가장 오랜 된 상징은 신성한 창조와 탄생이다. 연꽃은 아주 일찍부터 인도에서 ‘물의 결정체(태아)’였다. 리그베다R.gveda에서는 연꽃을 물의 고갱이(apām garbham)라고 불렀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아이의 씨가 자라듯, 연못에서 자라는 연꽃을 표현하고 있다. 깊은 물속에서 마치 탯줄을 연상시키는 긴 연꽃줄기를 타고 올라와 아이가 탄생하듯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그런데, 이 탄생은 신성하고 초월적인 어떤 것이다. 어두운 혼돈의 물 밖으로 솟아올라온 것이기 때문이다. 데오가르Deogarh의 비슈누 사원에 표현된 창조신 브라흐마Brahmā의 모습은 고대 인도의 종교에서 연꽃이 상징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창조신 브라흐마는 비슈누가 잠들어 있는 어두운 심연의 바다에서 솟구쳐 오른 연꽃 위에서 탄생한다.

신성함과 초월성을 암시하는 연꽃의 상징은 불교에서도 매우 강력하다. 이 상징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초기 불상부터 등장하는(아마도 3세기 전후부터) 연화좌蓮花座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기 힘들 것이다. 비교적 불상 조성의 초기에 등장하는 불상의 연화좌는 삼존불 양식 등에서 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양식과 함께 대승불교의 불타관이 변화하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힌두교의 표현처럼, 불상의 연화좌는 비교적 많은 꽃잎을 매단 채로 약간 높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 위에 부처님이 마치 초월적인 신처럼 앉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시기 주변에 등장하는 불상들은 연화좌를 하고 있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신격화를 시도하고자 했던 당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대승의 일면이기도 하다.

연蓮

한편, 연꽃은 인도 전체를 통틀어 인도인들의 세계상(imago mundi)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식물로 꼽힌다. 연꽃의 형태를 통해서 세계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했던 시도는 특히 불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일이다. 흔히 고대 인도인들의 심상 속에 있었던 세계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산의 형상은 아래쪽이 넓고 위로 갈수록 뾰족한 산이 아니라, 정반대로, 아래쪽이 가늘며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져서 정상은 평편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특이한 산의 형태는 분명히 연꽃 속의 중심을 이루는 연꽃대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연꽃이 벌어지면 그 안에 있던 연꽃대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모양이 꼭 뒤집어놓은 원뿔 모양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사방에 네 개의 대지가 나뉘는데 이는 마치 연꽃을 형성하는 사방의 꽃잎을 연상시킨다. 그 가운데 남쪽에 있는 땅이 바로 염부제閻浮提이다. 남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때로는 남염부제南閻浮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땅이 바로 인간이 사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계상은 이미 『구사론俱舍論』에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비교적 전근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인들이 생각하는 세계상을 대변하고 있었다.

 

 

 

 

사자獅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자獅子

다시 「코뿔소경」은 말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 경은 이천 년 전에 필사筆寫한 그 현물이 아직 존재할 정도로 오래된 경전이다. 필자가 간다라본本의 이 구절을 다시 찾아보니 역시 “사자sīho”라고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확인한 이유는 사자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물의 옛 경전 속에 이 단어가 있다고 해서, 옛 부처님 당시에 실제의 사자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연꽃과 마찬가지로 불교를 대표하는 동물 역시 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이니, 사자가 인도 토착의 동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온갖 경전 속에서, 그리고 불탑과 불상 속에서 우리는 이 동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없었지만 인도에는 살고 있었으리라는 상상과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전 속에 사자가 등장한다고 해서, 또는 오래전 제작된 조각 속에서 이 동물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이 동물을 인도 토착의 동물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인도 사자에 대해서 경전보다도 구체적이고 확실한 기원전의 단서들은 많아 보인다. 마우리야 왕조의 아쇼카 석주는 아마도 가장 오래된 증거일 것이다. 기둥머리의 사자 장식은 인도를 대표하는 국장國章이 아니던가. 산치Sañci탑의 탑문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날개 달린 사자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불상이 얹힌 사자좌獅子座의 양쪽에서 이 동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자는 인도 토착의 동물이 아니다. 초기 인도의 베다문헌 속에 등장하는 ‘사자sim.ha’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전에 서북 중앙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빌려온 차용어일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기원전 3세기 아쇼카 석주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인도 땅에서 사자가 도상적으로 표현된 적이 없다. 인더스 문장에서도 사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코뿔소, 호랑이, 토끼, 물소 등의 많은 동물이 등장하지만 사자는 흔적을 보이지 않는다. 불교 전후로 인도의 풍물을 기록한 그리스나 페르시아의 기록 속에도 인도의 사자를 설명한 적은 없다. 사자의 조각은 갑자기 기원전 3세기에 불쑥 인도 땅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통일된 마우리야 왕실이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 패권의식으로 말미암아 서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주로 사용해왔던 사자의 상징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마우리야 이전에 수입되었을 수도 있다. 산치탑을 장식하는 날개 달린 사자는 곧바로 아케메니드 왕실을 수호하는 날개 달린 사자를 상기시킨다. 이 날개 달린 사자는 페르시아 왕조의 종교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뿐만 아니라 마우리야 왕실에서는 서아시아 지역의 국가에서 유행했던 왕실의 사자 사냥놀이도 수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르타샤스트라Arthaśāstra』에는 국가가 갖추어야 할 시설물 가운데 사냥터를 제시하고 있다. 이 속에는 수입된 사자도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인도의 사자들은 수입된 동물이며, 수입된 왕실의 상징물이었다. 당연히 고대 인도에서 이 수입된 동물의 생태를 잘 알 수는 없었기 때문에, 유명한 시인이었던 칼리다사Kālidāsa조차 히말라야 설산에서 살아가는 사자를 노래한 적도 있었다.

사자는 왕권과 권위, 수승한 존엄의 상징이다. 동시에 불교에 수용된 사자는 불법의 권위와 그 권위를 갖는 석가모니 자신을 의미한다. 스승께서 행했던, 누구도 거절하지 못할 설법을 우리가 보통 사자후獅子吼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의미에서다. 그래서 비교적 초기의 팔리 게송인 나라시하가타Narasīhagāthā에서는 우리의 스승을 아예 인간사자narasīho라고 노래했다.

잘 생긴 둥글고 부드러운 목을 가졌네.
사자의 턱과 금수의 왕과 같은 몸을 지니고
부드러운 피부는 빼어난 황금색이네.
그이가 실로 당신의 아버지, 인간사자라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금강대학교 HK 연구교수, 상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동국대학교와 상지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