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견문록] 월정사 여성 출가학교

지금부터라도 업 짓는 것을 멈춰라

2017-06-18     문현선

지금부터라도 업 짓는 것을 멈춰라

월정사 여성 출가학교

출가 첫날, 월정사 문수선원 벽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깨끗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해서도 아니다. 생사를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갈등의 수렁에서 뛰쳐나와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다.’ 『선가귀감』에 나오는 구절이다. 출가를 체험해본 건 단 나흘간이었지만, 해보고 나니 저 글을 읽는 느낌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 짧고 다채로워진 단기출가

월정사 여성 출가학교 / 사진 : 최배문

3월 9일부터 12일까지, 3박 4일간 진행된 월정사 ‘여성 출가학교’에 참가했다. 서울은 봄기운이 완연하던 그때, 오대산에는 여전히 눈발이 날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오대산의 추위도, 단기출가의 여파도 짐작 이상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취재후기 등을 지면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전환의 계기가 됐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출가한 분들이나, 하려는 이들의 마음을 비로소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게 되었다.

떠나기 며칠 전, 참가자 안내문을 받았다. 준비물과 지참불가 소지품 목록이 적혀 있었다. 겨울용 털신과 이불(침낭)은 가져가야 했고, 책이나 여벌 옷은 가져가면 안 되는 것들이다. 도시의 시장에서 검정 털고무신을 사 강원도로 향했다. 오대산에 실제로 다섯 곳의 대臺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마 많지 않을 것 같다. 신라의 고승 자장 율사는 중국 유학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했다. 그리고 돌아와 643년, 오대산에 월정사를 세우고 중대中臺에 적멸보궁을 조성했다. 뿐만 아니라 월정사는 한암, 탄허, 만화 스님 등 선지식들이 머물렀던 절이기도 하다. 월정사가 수행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하는 데는 그러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출가학교’ 때문이다. 약 한 달간인, 기존의 출가학교 프로그램은 2004년에 시작돼, 올여름 50기를 앞두고 있다. 입학 경쟁률이 치열하다.

반면, 출가학교가 그 외에도 다변화됐다는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월정사는 출가학교 참가대상을 황혼기(노년), 청년, 여성 등으로 세분화하고, 부담이 덜하도록 참가일수도 훨씬 줄였다. 짧게라도 출가를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 중에서도 여성 출가학교는 2013년에 시작돼, 이번이 3기째다. 현재로서는 자주 있진 않지만, 앞으로도 여성 출가학교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한 월정사 측 표현을 빌리면, 여성 출가학교는 여성 전용이다. 그래서 여성들끼리의 공감대를 느끼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 거문고와 같았던 행전

3월 9일, 월정사 입구에 도착했다. 시절은 다름 아닌 ‘출가’재일과 ‘열반’재일 사이. 돌다리 옆 개울은 얼어 있고 눈이 쌓여 있었다. 한겨울 같은 한기에 몸이 굳었지만, 청량한 공기가 반갑다. 진행하는 스님들은, 3박 4일은 아무래도 몸에 익기에는 짧다고 했다. 그러니 일종의 맛보기로 생각하라는 얘기다. 물론 나흘은 짧다면 짧다.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마음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기에는 짧은 시간이 아닐 수도 있음을 공감하리라. 입교 시간이 되자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문수’성지답게 진행 장소는 문수보살의 이름을 딴 문수선원이다. 대방大房에 ‘묵언’과 ‘하심’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다. 스님 한 분이 참가자들을 맞아 법명이 적힌 명찰을 나눠준다. 법명에 ‘바다 해海’자가 공통으로 들어간다. 참가인원은 총 열여덟 명. 가장 먼저 한 일은 소지품 추려내기였다. 휴대폰, 차 열쇠 등은 주최 측에서 보관한다.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휴대폰을 쓸 수 없다는 건 연락도, 녹취도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처음으로 다 같이 줄을 맞춰 앉았다. 무슨 연유에서일까, 그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왔다. 이어서 입학 고불식告佛式을 했다. 부주지 원행 스님은 전날이 ‘세계 여성의 날’이었음을 언급하며 수많은 여성상을 예로 들었다. 나아가 양성평등의 차원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평등을 이야기한다. “여러분이 여기 온 건 대단한 용기이고 원력입니다. 이번 기수의 법명에는 모두 해海 자가 들어갑니다. 바다는 짠맛 하나지요. 가정을 이루기 이전 본래면목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정과 사회를 밝히는 길입니다.” 학감스님인 적엄 스님도 이번 법명에 들어가는 해海 자의 의미를 설명했다. 해海 자는 ‘어미 모母’ 자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 여성이 지닌 바다 같이 넓은 마음을 뜻한다 했다. 또 하나는,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할 때 들었던 해인海印삼매다. 고요한 바다처럼 번뇌가 끊어진 마음. 자비와 지혜를 겸비한 자유로움이 아닐까.

산사의 자연은 지친 심신을 쉬게 해준다. 대중생활은 어려운 한편, 힘을 길러준다. 언뜻 템플스테이와 비슷해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다를까. 학감스님은 가장 큰 차이점으로, 출가‘학교’라는 점을 들었다. 학교이기에 규율, 즉 청규가 있다는 것이다. 청규가 있어야 끄달리는 마음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을 어지럽힐 만한 요인이 통제된 가운데 오직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불편함이 있어야 자기 마음, 그 고약스러운 놈이 나와요.” 청규 일부를 소개하면 이와 같다. ‘삼귀의계와 오계를 지킨다. 자신의 허물을 돌이켜볼지언정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 청규를 어길 시 참회의 절을 하고, 도중에 떠나려면 3천배를 하고 퇴방한다.’ 학교장은 주지 퇴우 정념 스님이고, 학감이란 교감선생님을 가리킨다. 담임에 해당하는 청중스님은 서현 스님이 맡고 있다. ‘청중’은 대중을 맑힌다는 뜻이다. 참가자들과 많은 시간을 오롯이 함께한 청중스님은 수행자답게 당당하고 침착한 모습이었다. “남을 살피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을 살피는 겁니다.” 단호하면서도 경쾌한 어조다. “행주좌와, 수행 아닌 게 없어요. 수행자의 기본은,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이죠. 공부를 잘 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척도가 됩니다.”

출가해 옷을 갈아입는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입고 온 옷을 벗고 남자 한복 비슷한 황토색 행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커다란 바지에, 적삼을 갖춰 입는다. 행자行者로 생활하게 된 걸 실감하는 때다. 설렘과 긴장 속에 미소가 떠오른다. 처음 불편한 마음이 올라온 건, 바짓가랑이가 흩날리지 않도록 무릎 아래에 행전 매는 법을 배울 때였다. 바지 접어 넣는 법을 설명하는 스님의 모습이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혼자 해보려 해도 영 모르겠다. 익숙지 않은 그것을 매느라 다들 애쓰고 있어, 물어볼 사람도 없다. 가슴에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지켜본다. 청중스님은 겉모습이 단정해야 마음도 다잡는 계기가 된다 했다. 하여, 대충 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잠잘 때 빼고 내내 행전을 차고 생활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 물건은 매는 방법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 강도가 정말 중요했다. 허술하게 매면, 계속 흘러내린다. 꽉 매면, 앉거나 절할 때 종아리가 조여 몹시 아프다. 아, 영락없는 거문고! 부처님이 수행에 있어서의 중도를 비유하신 거문고 줄. 느슨해도, 팽팽해도 곤란하고 적절할 때에야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그것.

월정사 여성 출가학교 / 사진 : 최배문
월정사 여성 출가학교 / 사진 : 최배문

 

| 화두처럼 다가온 삼보일배

자기소개 시간. 30세부터 69세까지, 참가자 중엔 50대가 가장 많았다. 주부도 있고 미혼도 있었다. 참가 동기로, 간절히 출가를 하고 싶었다는 사람이 적잖았다. “항상 출가하고 싶었는데 아들, 딸 다 출가(결혼)해서 홀가분하게 왔어요. 이제 나를 위해 살 건데, 그 첫 번째가 단기출가에요.” 해경(海經, 63)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집에 있는 부처님이 (단기출가를) 늘 반대했는데, 저 자신한테 선물 주고 싶고 비우고 싶어서 왔어요.” 해윤(海輪, 52) 행자의 소회다.

모집을 몇 달간 한 데 비해, 아직은 참가율이 높지 않은 편이다. 그 이유를 학감스님은, 주부들이 집에서 나오기가 그만큼 어려워서라고 했다. “거사님들이 짜장면 사 드셔야 되니까.” 웃을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평소에 주부들을 만나 속마음을 들어보면 그 애환은 주부가 아니고는 모를 듯싶다.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다. 반복되는 가사노동은 고초를 인정받는 경우조차 드물다. 자신을 위해 돈이나 시간을 쓰는 건 가장 마지막이고, 필요한 일이 있어도 괜히 미안해하게 된다. 그렇기에, 가족을 두고 잠시라도 떠나오는 건 그 자체가 결단이고 발심이다. 그러니 단기출가는 가출이자 휴가일 수도 있다는 것. 스님은 또, 각자 자신의 ‘업’대로 본다고 했다. 함께 생활하다보면 그로 인해 서로 갈등이나 마찰이 일어난다. 그래서 출가 중 생활자세에 대해 이렇게 당부한다. “이 행자복은 다 같다는 뜻이에요. 서로를 똑같은 도반으로서 보라는 거예요. 누구의 엄마나 딸이라는 직분, 나이도 던져버리고 너다, 나다 구분하지 마세요. 이렇게 여성들이 모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 후, 일동은 청중스님을 따라 도량을 둘러봤다. 스님은 법당이나 큰스님들에 대해 안내하며 역사·문화적인 맥락을 함께 짚어주었다. 또한 발우공양 체험 때를 비롯해, 스님의 설명에서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를테면 국보인,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을 안내하면서 스님은 곡선의 역할을 설명한다. 그걸 들으며 삶에 있어서도 주변과 어울리는 것의 중요성을 돌아본다.

남녀노소 불문, 월정사의 모든 출가학교에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삼보일배三步一拜다. “그동안 응어리진 것들을 마음속에서 풀어내십시오. 절하다보면, 몸뚱이와 마음이 부딪혀서 온갖 게 올라옵니다. 화내는 것도 또 다른 나에요. 자, 또 다른 나를 만나십시오.”(학감스님) 첫날부터 참가자들은 둘째 날 있을 삼보일배 생각에 불안해했다. 오기 전에도 그게 두려워 많이 걱정했다는 참가자가 꽤 됐다. 이에 반해, 나는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방심도 만심慢心이었을까. 나는 내내, 마치 화두를 드는 것 같은 꽉 막힌 상태로 삼보일배를 경험했다.

300살이 훌쩍 넘은 전나무들이 늘어선 숲길에서 삼보일배를 했다. 열을 맞춰, 세 발자국 걷고 그때마다 흙 위에 절을 하는 것이다. 도량 밖 계곡 옆에서부터, 석탑 앞 석조보살좌상까지. 약 2km, 한 시간 반의 여정이었다. 전날 우리는, 간격이 벌어지지 않게 유의하도록 실내에서 연습을 했다. 실제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내가 있는 행렬 중간 부분은 앞뒤 간격이 좁아져버렸다. 엎드리기에도 좁은 사이에 끼어 막막한 상태로 행진을 계속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진행을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목청 높여 염불을 하면서, 쉼 없이 나아갔다. 그때의 상황(판단)으로는 대열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었다. 진퇴양난. 당혹, 원망, 분심憤心.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들이 일어났다. 마침내 일주문 앞에서 절을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인생에서 가장 푸른 하늘을 보았다. 티 없이 맑은, 허공.

이후,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해주(海州, 47) 행자가 말했다. “땅에 이마를 대본 게 평생 처음이에요. 순간, 코끝에 강렬한 전나무 향기를 맡았어요.” 목소리에서 감동이 전해져온다. 해윤海輪 행자는 삼보일배 후, 허리가 아파 걷기도 힘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음엔 한 달짜리 출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돌아온 대답. “아무 생각 없이 떠나고 싶은 열망이 항상 있었어요. 가정에선, 해야 되는 일들을 해내느라 힘들었어요. 사회에서도요. 여기선 너무 좋아요. 시간도 안 따져도 되고, 밥도 맛있어요. 새벽, 별, 바람, 햇살, 그리고 미래의 부처님들.”

지장암 지현 스님의 특강도 있었다.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가 주제였다. 수습은 ‘대화’에 달렸다는 실마리를 얻었다. 그리고 스님은, 부처님도 차별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셋째 날, 또 한 번 시절인연에 감사하게 된 행사가 있었다. 조계종 초대종정 한암 대종사(1876-1951)의 열반 66주기 추모다례재가 열리는 날이었던 것이다. 행자들도 한쪽에 함께했다. 생전에 한암 스님은 “불교는 실행”임을 강조했다 한다. 그것이야말로 실천적인 수행을 이뤄내는 지침이며, 불교가 거듭나는 가르침이라는 법문이 이어졌다. 대지大智 문수사리보살이 대행大行 보현보살과 만나는 듯했다.

 

| 모두 부처. 마음출가

스님들은, 남녀라는 분별도 내려놓으라 했다. 그래도 여성 출가인데, 여성이라는 업karma을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마련되지 않았는지 다소 아쉬워하고 있을 무렵, ‘서로 부처되기’라는 시간을 가졌다. 마주 보고 108배를 하는 동안, 여성으로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 흐른다. 차츰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서 일상에서 있었던 경험을 꺼내놓는 시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서로 비추고 마음을 나눴다. 후에 알게 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우리는 위로받아 마땅하다’였다. 문수선원 로비에는 육바라밀이 쉽게 풀어 쓰여 있었다. 그중 인욕은 다음과 같이 바꿔 표현돼 있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라.’ 존재는 더하고 덜함 없이 다 존귀하다는 불교의 대전제를 실천하는 방법이리라. 대상을 초월한, 바다 같은 사랑. 요원한 일로 느껴질 때가 많지만, 우리 안에 씨앗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모두 부처이기에.

학감스님과 함께한 참선시간. “여러분, 김장 해보셨죠? 파닥이는 망상에 소금을 쳐주십시오.” ‘나/ 너’를 벗어나는 게 공부라 한다. 분별심이 일어나면, ‘시비분별하는 그 놈이 누구인가?’하는 의문으로 돌아오라 했다. “선禪수행을 하면 마음에 힘이 생겨요. 상相을 부수는 게 마음공부에요.” 스님의 법문 중, 참가자들이 회향 후에도 되새긴 일침이 있다. “업장소멸도 중요하지만, 지금부터 업을 쌓지 않는 것, 부끄러운 행동은 안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빚 갚으러 세상에 오는 거라는 얘기에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밖에 종을 쳐보는 대종 체험, 인도에서 온 도엄 스님의 특별 법고 시연, 보름달 아래서의 포행, 마음이 정화됐던 선재길 걷기, 찻김을 쐬어 심신이 이완된 차향명상 등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졌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체감한 프로그램의 강도 역시 꼭 거문고 같았다. 쉬는 시간이 넉넉하게 느껴진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결코 느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빡빡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날. 드디어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적멸寂滅이란, 바깥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의 불길이 꺼진 자리를 일컫는다. 진신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궁, 보궁寶宮이다. 그래서 법당에 불상이 없고 그 자리가 텅 비어 있다. 참배하러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번뇌를 살피는 걷기명상이다. 끝으로 수계식이 진행됐다. 먼저, 참회진언을 왼다.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감회가 새롭다. 향불로 팔목에 연비燃臂를 하고 나니 숙연해진다. 주지스님의 법문. 마음으로 하는 출가에 대한 얘기다. “경허 스님은, 청산과 세속의 개념이 허물어져버리면 걸림 없는 자유라 하셨어요. 세속에 있어도,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수행자가 마음출가자의 모습이지요.” 분별심이 사라지면 마음의 본래자리가 드러난다. 하나로 돌아간 세상, 청정한 일심一心의 자리를 일러주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행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해안(海眼, 53) 행자는 월정사 템플스테이에 여러 번 참가했었다. “그땐 멀리서 행자님들을 바라만 보면서 참 부러웠는데, 직접 해보니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

월정사를 떠나오는 길, 마음출가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도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벌써 손님맞이로 분주해 보였다. 월정사에는 외국인이나 가족이 출가해볼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다. 산 전체가 불교성지인 오대산에는 세조가 문수보살을 만난 전설로 유명한 상원사도 있다. 기도·순례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여성 출가학교에서 만난 도반들과 헤어지던 날, 누군가 다가와 속삭였다. “나 봤다는 얘기는 하지 마세요.” 아뿔싸. 거기서 무심코 친견한 이들은 문수보살이었던가.

_____________

월정사 출가학교 033)339-6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