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경영] 돈 안 되는 일로 먹고 살려면

2017-06-15     이언오

| 돈 되는 일에만 몰려서 스트레스를 자초

이언오

사찰 범종은 소리로 중생을 번뇌에서 벗어나게 한다. 예불의 서른셋 타종은 같은 숫자의 하늘에 울려 퍼지라는 뜻이다. 한국 종은 소리의 묵직함과 아름다움이 세계 으뜸이다. 종신을 매달아놓고 당목을 흔들다가 때리기 때문이다. 만든 모양, 치는 방식, 나는 소리가 모두 불교적이다. 서양 종은 몸통을 흔든 상태에서 내부 추를 충돌시킨다. 움직임이 요란하며 소리는 높고 빠르고 가볍다. 종에는 종교별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

범종 제작의 1인자는 진천 성종사의 원광식 씨이다. 20세 때 생계를 위해 종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몇 년 후 쇳물을 붓다가 형틀이 폭발, 오른쪽 눈을 잃었다. 그 사건이 종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 수덕사 종을 만든 후 입소문이 났고 주문이 이어졌다. 원 종장은 맥이 끊겼던 밀랍주조기법을 되살려냈다. 섬세한 문양과 미세한 두께 조절이 강점이다. 공대 교수들이 이론과 정밀기기를 동원해 부분적으로 도움을 준다. 그의 경험과 감각을 투입해야 원하는 소리가 만들어진다.

종 만드는 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다. 돈에 신경 써서 입문을 꺼리며 중도하차가 많다. 봉은사 종을 만들 때 당시 주지가 근처 땅을 사라고 권했었다. 평당 만 원 정도였는데 사지를 않았다. 나중에 주지는 “그 때 땅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종을 만들고 있구나.”라고 했다. 스님들의 경제 형편에 따라 종 값을 받는다. 돈이 많아 보이면 비싸게 매기고, 가난하면 공짜로 해준다.

원 종장은 국민들이 성금을 기탁한 보신각종을 만들었다. 낙산사 종이 화재로 소실되자 실측 자료를 근거로 다시 제작을 했다. 작년에는 균열이 생긴 에밀레종을 복원해서 경주시에 납품했다. 중심 진동수 64헤르츠로 최고의 소리를 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분당 60회 남짓의 심장 박동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동수 조합이 절묘해서 맥놀이가 좋고 울림 시간이 길다. 쇳덩이의 미세한 불협화로 천상의 소리를 낸다. 부딪치는 쟁諍이 어울리는 화和를 만들어 내는 화쟁의 이치이다.

그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등 종 제작 분야에서 지존에 올랐다. 범종 회사의 상당수가 제자들이 독립해 세운 것들이다. 아들은 금속공학을 전공해서 회사 일을 거들고 있다. 딸은 불교미술을 공부해서 종 박물관에서 근무한다. 박물관은 옛 종들을 복원하고 외국 종들을 수집해서 만들었다. 장인정신으로 평생 매진해서 돈 안 되는 일로 먹고살았으며 일가도 이루었다.

전통예술 분야는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다. 전통과 예술 모두 돈이 안 되며 그 둘이 합쳐지면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현대와 물질에 쏠려 있는 탓이다. 탐욕이 돈을 끌어당기고 무명은 그것을 바로잡지 못한다. 그래서 돈 안 되는 일이 뒷전에 밀리고 돈 되는 일이 위세를 떨친다. 돈 되는 일만 왕성한 세상은 스트레스 덩어리이다.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리는 바보스런 이들이 있어 그나마 세상 균형이 유지된다.

불교의 수행과 보살행은 전형적인 돈 안 되는 일이다. 본질은 돈을 초월하고 행태는 돈과 거리를 둔다. 세상에 꼭 필요한 근본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어 수천 년 이어져왔다. 근래 돈의 위력이 거세지면서 불교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돈과 담을 쌓거나 물들어서는 곤란하다. 부딪혀도 여린 쪽이 상처를 받는다. 돈에 스며들어 하나가 되어 세상을 부드럽게 바꾸어야 한다. 불교는 돈에 미친 세상을 향해 무슨 사자후를 토해야 할까. 어떤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까.

 

| 돈이 안 되지만 가치 있는 일들을 지켜나가야

사람은 일을 해서 주위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먹고산다. 이것이 세상살이의 기준점이다. 열심히 해도 어렵게 살면 모자라며, 놀면서 호의호식하면 넘친다. 모자람과 넘침이 상극하면 개인은 불행하고 사회는 불안정하다. 돈 되는 일에만 몰리면 불평등이 분노를 부른다. 돈에 정신이 팔려 일의 가치를 무시하고 왜곡시킨다. 각자의 마음이 사회구조로 굳어지면 고치기 힘들다.

돈 안 되는 일은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 돈이 넘쳐나지만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집착이 돈 흐름을 가로막아 쏠림을 유발한다. 과거에는 권력과 신분이, 지금은 조직과 기술이 제도적으로 집착을 보호한다. 여기에 중생의 어리석음까지 가세한다. 결과는 사양산업, 수요 감소, 경쟁격화, 가치 외면 등등. 보는 눈이 없고 관점이 삐뚤어져 있으니 어리석음의 문제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직업이 평등하게 귀하다. 직업을 수행과 보살행을 실천하는 현장으로 바라본다. 중생은 본래 자리가 귀한 줄 모르고 잘못 행동해서 비천卑賤을 자초한다. 중소기업에 입사하려는 청년실업자에게 모친이 말했다고 한다. “남들 눈이 있지. 생활비 대줄 테니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공무원이 된 자녀는 중소기업을 천하게 볼 것이다. 사농공상 적폐를 없애야 돈 안 되는 일이 본래 자리를 찾는다.

독일어로 직업은 Beruf, 소명을 뜻한다. 먹고사는 일을 돈벌이가 아닌 고귀한 사명으로 여긴다. 독일에서는 뛰어난 장인에게 마이스터 칭호를 붙여주어 존경을 표한다. 지역 행사에서 시장이나 사장을 소개하지 않는 경우에도 마이스터의 이름을 불러준다. 마이스터는 자기 사업을 하고 남을 가르치는 데서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명장 제도가 있다. 자긍심과 사회적 존중이 약한 상태에서 명맥만 이어가는 중이다. 방송에 뜨는 생활의 달인들은 대박과 음식에 치우쳐 있다.

돈 안 되는 일에 대해 거부와 수용, 중도의 세 길이 있다. 거부는 돈 되는 일을 찾아 떠나는 것. 영화 ‘서편제’에서 동호는 판소리를 포기하고 한약재 장사에 나선다. 돈을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못 벌면 불만이 생긴다. 돈에 집착하니 불행하고 외면하면 생계가 위협받는다. 수용은 돈 안 되는 일로 먹고사는 것. 원광식 종장은 한쪽 눈이 멀고 나서 종 제작에 본격 매달렸다. 역설적으로 장인은 생계가 어려울 때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보왕삼매경 식으로 표현하면, 돈 없음을 양약으로 삼아 천직에 매진하는 것이다. 음악가 길옥윤은 “5년 더듬고, 10년 흉내 내고, 다음 20년을 해야 예술이다.”고 말했다.

불법은 중도로 돈을 넘어선다. 돈 없는 일을 해서 길 없는 길을 간다. 일본 한 중소기업 사장의 아들이 연극에 미쳐 회사 일을 소홀히 했다. 해고를 당하자 동료 연극단원들을 규합해서 미라이공업을 설립했다. 배우 출신답게 괴팍하게 경영을 해서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직원 인사서류를 선풍기 바람으로 날려서 멀리 간 순서대로 승진시키는 식이다. 사장실에는 연극포스터가 붙어 있고 이익의 일부로 후배 연극단을 지원한다. 돈을 무애하게 벌고 써서 돈과 예술이 중도로 모아졌다.

 

| 불교가 돈 없는 것으로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야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워싱턴 지하철에서 깜짝 연주를 한 적이 있다. 행인들이 클래식에 귀를 기울이는가를 알아보려고. 대다수가 무심으로 지나쳤고 몇몇은 동전을 던져 주었다. 뉴욕에서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풀숲에서 나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 자신을 빼고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부러 동전 한 개를 떨어뜨렸더니 즉시 고개들을 돌렸다. 돈에 눈이 멀어 예술과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례들이다. 사람과 돈의 주객이 바뀌니 전도顚倒, 상相의 환幻인 돈에 홀리니 몽상夢想이다.

깨닫기 어렵다지만 세속 돈벌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정말 죽지 못해 돈 안 되는 일에 매달린다. 돈 안 되는 일 하는 사람들까지 해외 명품, 대기업 제품을 사고 대형마트에 가는 탓이 크다. 돈 버는 마음과 돈 쓰는 마음이 서로 만나서 올바른 거래가 생겨나야 한다. 만남과 생겨남, 바로 연기가 아닌가. 수행과 보살행은 따로 멀리 있지 않다. 돈 벌고 쓰기를 생각하면 수행, 행동하면 보살행이다. 물건을 만드는 것은 수행, 고객이 사용하는 것은 보살행이다.

불교가 세상살이에 대한 마음의 눈을 뜨게 해야 한다. 불상은 점안으로 물질에서 신상神像으로 거듭 난다. 물질의 응집체인 돈에 심안을 새기면 세상 고통을 치유하는 여의주가 된다. 돈의 능력이 크고 고통이 심한 만큼 불법의 영험이 빠르고 클 것이다. 불교가 지혜를 전하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겠다. 장인이 보이는 것을 보여준다면 수행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드러낸다. 수행자는 돈 없는 일로 세속의 먹고사는 고통을 치유해야겠다.

가치 있는 일이 돈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돈을 쫓느라 잃어버린 가치도 다시 찾아야겠다. 무명이 습관으로 굳어 있어 절실한 행원과 끈질긴 실천이 요구된다. 조급하면 지치고 느슨하면 바뀌지 않는다. 참선 호흡하듯이 천천히 깊게 오랫동안 지속해야 한다. 원광식 종장의 경주 에밀레종은 원전 방폐장의 보상금과 몇 단계 연기로 이어져 있다. 돈이 다리를 놓아 위험한 핵폐기물이 장엄한 범종 소리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돈은 사람이 쓰기 나름이다. 돈 안 되는 일로 가치 있게 사는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