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의 평화모니] 달마가 동쪽에 온 까닭은?

2017-06-15     윤구병

달마가 동쪽에 온 까닭은?

윤구병

달마가 동쪽에 온 까닭은? 서쪽에서 살기 힘들어서. 동쪽은 중국이고 서쪽은 인도다. 달마는 서쪽 나라에 발붙이고 살 수 없었다. (내 생각이다.) 왜? 경전에 적힌 부처님 말씀과 다른 말을 해서. 왜 그랬을까? 이미 인도에서는 승려들이 왕권과 결탁해서 글을 배운 유식한 특권층 종교로 탈바꿈해 있었다. 경전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중노릇도 할 수 없었다. 까막눈이 절집 언저리에 기웃거린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승려들은 힘 있는 놈들이 힘없는 사람들에게서 뺏어다 준 것들에 기대 살면서 그것들이 벌이는 침략 전쟁, 약탈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이념을 부처님 말씀으로 제공했다. 산스크리트어든 팔리어든 글로 되어 있는 ‘경전’은 교양 있는 특권 계급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중생들은 그이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모두 부처님 말씀으로 곧이들을 수밖에 없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에 딴지를 걸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이 생지옥이 염라대왕을 만들고 ‘화탕지옥’과 ‘칼산지옥’을 빚어냈다.

“그게 아냐. 부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스스로 그렇게 말씀하셨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죽을 때 꽃 한 송이 들어 보였을 뿐이야. 그걸 보고 가섭이 몰래 웃었지. 마음에서 마음으로(以心傳心). ‘내 마음만 받아라.’ ‘예.’ ‘가난한 할미가 켜든 등불 보았지?’ ‘예.’ 부처님 내세워 창칼 들고 나가서 싸우다 죽으라는 말 다 개소리야.” 이따위 말이나 씨부리면서 거룩한 부처님 말씀이 적힌 경전을 개무시하니 곱게 보이겠어? 언제 언놈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 모르는 판에 달마의 말 그럴싸하게 듣고 따르던 이들 가운데 뱃놈도 끼어 있어서 달마를 동쪽으로 실어 날랐다. 황당한가? 내친 김에 더 어이없을 말을 덧붙이자.

여기는 그래도 서쪽과는 달리 부처님 말씀 제대로 알아들어 평화롭게들 살고 있으려니 하고 내려보니, 동쪽도 매 마찬가지였다. 양나라 무제라는 사람도 겉으로는 불제자 행세를 하면서 부처 팔아 전쟁을 일삼는 전쟁광이었다. ‘내가 부처님 말씀 따라 백성들을 불국토에 살게 하려고 이런 이런 일을 하고 있노라.’고 자랑질을 하는데, 듣다 보니, 사람들을 싸움판에 총칼받이로 몰아대서 죽이는 것으로 ‘열반’에 들게 하는 게 그자가 일삼는 짓이었다. 북녘으로 달아났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보지 말자.’ 어차피 동쪽(중국) 말은 알아듣기도 힘들었고, 입 밖에 내는 것도 더듬거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걸핏하면 총칼 든 도둑놈들이 절집까지 쳐들어와 애써 지어놓은 먹을 것 죄다 앗아가기 일쑤였다. ‘제 몸 제가 지키고, 우리 살림 우리 힘으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 소림사 무술은 이렇게 생겨났다. ‘면벽참선’과 ‘무예 수련’.

한겨울에 혜가가 찾아왔다. 외팔이였다. 싸우다 쫓겨 왔겠지. ‘팔 하나로 무얼 하겠노? 여기서 살자.’ 달마의 ‘법통’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머리 쓰지 않아도 살 곳이 있다.’ ‘경전 몰라도 마음 놓을 데가 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염불하고.’ 한 입 건너고 두 입 건너 소문이 널리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묵조선’과 ‘간화선’이 하나였다. 마음 주고 받을 길만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먹물’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조직이 갖추어지면 위계질서가 생겨나는 것은 나라나 절집이나 ‘조폭’ 세계나 마찬가지. 조직이 생기면 우두머리가 나타나고, 그 밑에 참모가 따른다. 참모들은 머리를 써야 한다. 이 참모들이 ‘조직 운영상’ 필요한 계율을 만들어내려고 경전을 파고든다. 이 ‘경전’이 왕권과 결탁해서(우리말로 하면 ‘짬짜미’다.) 엮이는 동안 부처님이 거지왕초 노릇을 하는 동안 더러 한 이야기를 뼈대 삼아 이런저런 ‘계율’이라는 것을 빚어냈는데, 번거롭기 짝이 없어서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부처가 되려면 아예 사람 탈을 벗어 던져야 할 만큼. 그래서 선불교 5조인 홍인에 이르러서는 ‘북종’이라는 종파불교가 자리를 잡는다. 홍인 다음으로 예약된 우두머리가 신수다.

잘 나가는 판에 혜능이라는 까막눈이 끼어든다. ‘일자무식’이다. (혜능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한차례 너스레를 푼 적이 있다.) 온갖 구박을 해서 떨쳐내려고 하지만 돌확(절구통)까지 패고 방아를 찧으면서 죽기 살기로 덤비는 ‘육조六祖’(나중에 ‘법통’이 그쪽으로 이어졌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부르는 이른바 ‘추증’이다.)가 쫓겨나면서 ‘아, 나 같은 무지렁이 마음도 몰라주는 니네들, 그 잘난 머리로 빈 거울이나 부지런히 닦으면서 잘 먹고 잘 살아.’ 하고 투덜거린다. 마음은 콩밭에 놓아두고 ‘강경급제’라도 할 것처럼 도끼로 콩알 쪼개고 있는 무리들 틈에 ‘혜능 말이 맞어. 유식허고 교양 있는 놈만 부처님 말씀 알아들을 수 있다면 백에 아흔아홉이 까막눈인 세상에서 부처될 놈 몇이나 나오겠어. 우리가 알기로는 부처님 첫 제자 다섯 가운데 경전 읽었다는 놈 하나도 없어. 부처님이 경전 보고 설법했간디?’ 수군거리는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8~9세기에 이르러 이들이 중국 선불교의 대세를 이룬다.

이제 달마는 한반도(조선반도)라는 땅 끝에서 대롱거리고 있다.(섬마을인 일본 빼고) 더 밀리면 죽음이다. 그런데 ‘불자’라는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는가? 나 같은 무지렁이 중생이 무엇을 알랴마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져 온다는 부처님 말씀이 뭇산이(중생)들 가슴에 제대로 새겨지려면 이이들이 ‘마음’이라는 말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다.’ ‘마음(에) 있다.’ ‘ 마음(에) 없다.’ ‘마음에 찬다.’ ‘마음(을) 놓는다.’ ‘마음(을) 붙인다.’ ‘마음(을) 쓴다.’ ‘마음(으로) 삭인다.’ ‘마음을 썩인다.’ ‘마음(을) 푼다.’ ‘마음 움직인다.’ ‘마음이 통한다.’ ‘마음을 튼다.’ ‘마음이 풀린다.’ (이것은 남영신이라는 국어학자가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에 담은 ‘마음’ 항목에서 추린 말이다.)

이밖에도 ‘마음’을 나타내는 말은 여럿 있을 게다. 불교와 연관되는 속담도 있다. ‘마음에 없는 염불.’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젯밥에만 마음이 있다.’ 마음은 오가기도 한다. 오는 마음도 있고 가는 마음도 있다. ‘마음이 편해야 먹은 것이 살로 간다.’는 말도 흔히 들을 수 있고, ‘마음처럼 간사한 건 없다.’는 푸념도 있다.

부처님이 전해준 마음은 이 가운데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릴 것 없어 그거 모두야.’ (내 마음의 속삭임이다.) 부처님이 마음에 없는 말을 했을까? 아니겠지. 따지고 보면 팔만사천 경문이 모두 부처님의 마음 자락을 드러낸 말이겠지. 만일에 ‘중생이 곧 부처’라면 뭇산이 말 가운데 하나도 버릴 것이 없겠지. 모두 귀담아들어야겠지. 입 열기 앞서 먼저 귀를 열어야겠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그러지 않던가? 귀가 열린 지 한 해쯤 뒤에나 입이 열리지 않던가?

말은 왜 하는가? 혼자 살 수 없어서 하는 게 아닌가? 함께 살자고, 일손도 나누고 마음도 나누자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남의 말 듣지 않고 제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떠들어대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야말로 ‘공염불’이다. 절집이라고 다른가? 안 그런 것 같다. 저마다 말하기 좋아하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달마는 말을 아낀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혼잣말을 웅얼거리지는 않았다.(내가 보기에 글로 쓰인 것은 모두 혼잣말이다. 부처님 경전이라고 해서 주고받는 말이라고 할 수 없다.) 불교, 특히 선불교에서 ‘사조의 전통’이라는 것은 마음을 주고받는 말,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가끔 ‘독각승’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것도 누군가와 주고받은 말끝에 깨우친 중이라는 뜻이지. 스승 없이 홀로 깨친 이라는 말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지금 끼적이는 것도 혼잣말이다. 스승이 없어서 이 짓을 하고 있다. 그 사이에 스승 복이 많아서 많은 어른들에게 배웠지만 그 배움이 뭇산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 마음 놓고 살 세상 이루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하릴없이 늙어 꼬부라져 이제 어렵게 살기도 힘든 사람들의 등에 업혀 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성철 스님 말마따나 이 허물 하늘을 덮고 남음이 있다.

뒤늦게 뉘우친들 무얼 하나. 그래도 한 가닥 바람이 있다면, 나처럼 마음 졸이고 살지 말고, 젊은이들이, 어린 것들이 마음 놓고 살 세상이 왔으면….

 

윤구병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5년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해 20여 가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이 전문 출판사인 보리출판사를 설립해 많은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