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화가의 붓다의 마음] 인생을 낭비한 죄

2017-06-15     황주리

나는 라디오를 켜놓은 채 잠이 드는 습관이 있다. 어느새 잠이 들어버리긴 하지만 이야기는 귀로만 들리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잠이 들어 못 들을 뿐이지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소리는 어딘가 저장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로 불교방송을 틀어놓은 채 자다가 깨면 불경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다시 잠깐 잠들어 붓다에 관한 꿈을 꾸기도 한다. 오늘은 어느 스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대목이 귓속에 멈춰 사라지지 않고 하루 종일 맴돌았다. 전생의 억겁의 노력으로 이생에 태어났으므로 우리는 한시도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문득 내 인생의 낭비 항목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낭비가 심했던 날들은 이십대의 젊은 시절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좋은 날에 우리는 불안과 초조로 점철된 젊음의 시간을 낭비 못해 매일 안달을 한다.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이에 낭비의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간다. 낭비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서 최고의 지위인 대통령이 된다 한들 그들의 삶이 낭비가 아니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걸 일찌감치 깨달은 분이 바로 붓다가 아닐 수 없다. 

무슨 일로 밥을 먹으며 살든, 자기 자신에게 점수를 주는 일이 박한 사람에게 살아온 인생은 좀 더 아껴 써야 했을 낭비의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아니 속속들이 알차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한들 자기만을 위해 살아온 생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만 잘 먹고 잘 살아온 삶이야말로 낭비 그 자체였을 것이다. 꽃들이 한꺼번에 확 피었다가 확 져버리는 아름답고 슬픈 봄날에 ‘인생의 낭비’라는 화두에 답해 본다.     

 

황주리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