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보살행론] 죽음을 두려워하는 지혜

2017-05-30     재마스님
죽음을 두려워하는 지혜

『입보살행론』 제2장에서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은 악업을 지었기 때문이며, 이를 극복하는 일곱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째, 우리의 수명은 언제나 줄어들고 있으며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기입니다. 둘째는 두려움과 공포와 고통은 악업의 결과임을 알고, 자신의 악업을 고백합니다. 셋째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삼보께 귀의합니다. 넷째는 악업을 참회하며 불보살들께 예경을 올립니다. 다섯째는 악업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발원을 합니다. 여섯째는 모든 번뇌와 악업의 정화를 위한 약인 보리심을 일으킵니다. 일곱째는 죽음의 공포에서 우리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공덕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샨티데바 스님께서 권하시는 7가지 방법 중에 세 가지를 알아보고, 나머지는 5월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聞 - 죽는다는 사실 기억하기

죽음의 염라왕은 죄를 정화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를 불문하고 질병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언젠가 돌연히 찾아와 죽게 하니, 목숨이란 아침 이슬 같은데 어찌 믿을 수 있으리까.(2:33) 밤낮으로 끊임없이 저의 생존은 줄어만 가고 수명은 결코 늘어나는 법이 없으니… 제가 임종의 침상에 있을 때 친척이나 친구가 둘러싸고 있어도 숨이 끊어지는 죽음의 고통은 저 혼자만 겪어야 하나이다.(2:39~40)

현대사회는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 삶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삶과는 반대되는 무서운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잘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누구나 언젠가는 꼭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샨티데바 스님께서 “오늘은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안심하며 지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랴. 제가 죽게 되는 그 순간은 의심할 바 없이 찾아오게 되나이다.”(2:58)라고 노래하고 있듯이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은 언젠가 꼭 찾아옵니다. 또한 우리는 이승을 떠날 때 홀로 가야 합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친척과 친구들을 모두 남겨두고 저 혼자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데 친한 이나 친하지 않은 이가 모두 무슨 소용이 있으오리이까.”(2:61)라고 우리의 상황을 정확하게 말해줍니다. 그러면서 샨티데바 스님은 제6장에서 “악업을 지으면서 오래 사는 것보다 오늘 죽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오래 산다 하더라도 죽음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6:56)이라고 합니다. 또한 “꿈속에서 백 년 동안 행복을 누려도 깨고 나면”(6:57) 한순간의 행복이며, 죽음은 죽지 않은 것으로 절대 바뀌지 않아서 “장수하든 단명하든 두 가지 다 죽을 때에는 모든 것을 잃고(6:58)… 빈손에 맨몸으로 떠나야 한다.(6:59)”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요?

날마다 나와 타인의 늙음과 병듦과 죽음 소식을 접할 때, 그것이 저승사자에게서 온 경책임을 알아차려 봅시다.

聞 - 죄업을 고백하고 참회하기

구세자시여, 방일한 저는 이러한 두려움을 깨닫지 못하고 무상한 이 생존에 대한 집착 때문에 수많은 죄업만 지었나이다.(2:42)

샨티데바 스님은 사람들이 “무지와 집착과 성냄”(2:38)으로, “친한 이를 지키기 위해, 친하지 않은 이에게 손해를 끼치기 위해”(2:34) 죄를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무시이래로 윤회 속에 머물면서 금생과 또 다른 모든 생에서 알지 못하고 지은 죄이든 혹은 다른 이에게 시킨 죄이든(2:28), 무지의 미혹에 이끌려 저지른 것 혹 다른 이가 악업을 짓는 것을 보고 기뻐한 것”들에 대해 이러한 “모든 허물들을 눈앞에 있는 듯 바라보면서 깊은 마음으로”(2:29) 참회하라고 설하십니다. 또한 당신도 “공덕의 터전인 삼보님과 부모와 스승과 그 밖의 분들에게 번뇌에 의해 몸과 말과 마음으로 해를 끼친 모든 것”(2:30), “갖가지 악업에 의한 허물을 인도자이신 부처님께 모두 참회”(2:31)한다고 고백합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저승사자 품」에서 염라대왕은 죽은 이들에게 “늙음이 첫 번째 저승사자이며, 병에 걸리는 것이 두 번째 저승사자이고, 세 번째 저승사자는 주검”이라고 말하면서 이승에 살면서 이들을 보지 못한 이유를 따지듯이 캐묻습니다. 죽은 이는 “나태함과 게으름 때문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행을 쌓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병듦과 늙음과 죽음에 대해 숙고하면서 건강과 젊음과 장수에 대한 자부심을 극복하고 선행을 쌓으라.”고 합니다.

매일 저녁 자신을 포함해서 내가 손해를 끼친 사람은 없는지, 말로 상처를 준 사람은 없는지, 부정적인 생각을 품은 적은 없는지 허물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만약 있다면 고백하고 깊이 참회하며, 나와 타인을 유익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 실천합시다.

聞 - 보호자이며 구제자인 삼보께 귀의하기

승자이신 부처님은 중생의 구제자시라 중생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위해 노력하시며 큰 위신력으로 모든 두려움을 다 제거하시니 지금 이 순간부터 진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 그분이 이해하신 다르마, 윤회의 공포를 없애주는 법과 성스러운 모임인 보살승가에도 이와 같이 진심으로 귀의하나이다. … 이제 제가 큰 두려움을 보고 나서 진심으로 당신에게 귀의하며 간청하오니 이 공포를 속히 제거해 주소서.(2:47~53)

『상윳따니까야』 「다섯 가지 증오와 두려움 경」에서는 다섯 가지 악처에 태어날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5계를 지켜서 두려움과 증오를 가라앉히고,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을 지니라고 전합니다. 『앙굿따라니까야』 「한 사람 품」에서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이유를 “세상을 연민하여 많은 신과 인간들에게 이로움이 되고, 이익과 행복이 되기 위함”이라고 전합니다. 「유학 경」에서는 부처님의 10가지 명호를,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응공(아라한)’, 바르게 완전히 스스로 깨달은 ‘정등각’, 명지와 실천을 구족하신 ‘명행족’, 피안, 최상의 행복인 열반으로 잘 가신 ‘선서’이시며, 세상과 존재의 이치를 잘 알고 계신 ‘세간해’이시며, 더 이상 견줄 수 없는 ‘무상사’,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조어장부’,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신 ‘천인사’, 깨달은 ‘불’,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세존’이라고 설합니다. 부처님의 성스러운 제자는 10가지의 이름을 부르며 부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부처님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전합니다.

부처님의 이름을 자주 기억하고, 정성스럽게 부르며, 반복해서 생각하고, 깊이 신뢰하고, 몸과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그분께 돌아가 의지하는 ‘귀의’입니다. 윤회의 공포를 없애주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을 계속 생각하고 찾으며 깊이 신뢰하고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것이 법에 대한 귀의입니다. 일체존재들의 최상의 행복을 위해 깨달음을 미루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보살들을 기억하고, 배우며, 따라 실천하는 것이 승가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중 얼마나 부처님을 생각하고 살고 있을까요? 공포와 두려움을 만나는 시간에 불보살님들을 의지하고 계신가요? 세상의 어떤 가르침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요? 자신의 문제와 괴로움에 대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법에 얼마나 의지하며 답을 구하고 있을까요?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이익보다 세상의 공동선을 우선하는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요?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올 때 부처님의 열 가지 명호를 가만히 되새겨 봅시다. 또한 지옥중생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분들께 의지하고, 그분들의 용기와 큰 원력을 배우고 따라해 봅시다. 고맙습니다.

 

재마 스님
중앙승가대학교에서 불교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움직이는 법당, 춤추는 절을 꿈꾸며, 매주 소마명상여행을 이끌고 있다. 또한 종교를 초월해 ‘마음비추기’ 피정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완화의료(암)병동에서 매주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위한 영적 돌봄 봉사를 하고 있다. 박사논문으로 「사무량심의 가치 재발견과 체화프로그램 개발연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