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우유팩은 버리지 마"

빛의 샘·자연사랑, 환경 살리기

2007-09-14     관리자


나에게는 아주 귀여운 장난꾸러기 조카녀석이 있다. 이름은 재홍이, 집안에 어린이가 하나뿐이라 무척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지금은 유치원을 다니는 재홍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몹시도 분주하고 부지런했다.
내가 이렇게 조카녀석 얘기를 하는 것은 얼마 전 그 녀석에게서 톡톡히 망신을 당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성격이 좀 게으른 편이라 꼼꼼히 정리정돈하는 것보다는 필요없는 건 버리고 대충 편하게 살자는 주의이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그런 탓도 있지만 '시간이 돈이다.'라는 게 내 생활신조나 마친가지이다.
그런데 지난 겨울이었다. 언니 집에 오랜만에 놀러가 재홍이의 유치원에서 배운 재롱도 보고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언니 설거지도 도울 겸 내가 뒷정리를 같이 해 주었다. 우유를 마시고 남은 빈 우유팩이 있길래 평소 습관대로 무심코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재홍이 녀석이 갑자기 우유팩을 찾는 게 아닌가! 나는 "빈통이라 이모가 휴지통에 버렸다"라고 이실직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녀석이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재홍이를 달랬다. 이모가 잘못했다고. 하지만 속으로 뭐가 잘못됐나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에야 울음을 그친 재홍이는 여전히 울먹거리면서 "이모, 이제는 우유팩 같은 건 버리지 마. 버리지 말고 모아서 나를 달란 말이야"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언니가 보충설명을 해준다. 요즘 재홍이네 유치원에서는 우유팩을 모아오라고 한다고. 그래서 언니집에서는 우유통은 전부 재홍이 담당이란다. 그 녀석이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걸 말려서 편편하게 펴서 유치원에 가지고 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울음을 그친 재홍이가 제 방으로 뛰어가더니 그림을 한 장 가지고 와서 내 눈에 펴 보이는 게 아닌가?
"이모처럼 아무거나 함부로 버리면 우리 강이 이렇게 된다 말이야." 유치원에서 재홍이가 그렸다는 그 그림은 환경포스터 같은 것이었는데 강물이 시꺼멓게 칠해져 있고 물고기가 물위에 둥둥 떠 있는 그림이었다. 순간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더니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매일 같이 접하는 쓰레기로 넘쳐나는 지구를 나타내는 환경포스터들. 그런걸 무심코 지나쳐 버렸지만 재홍이가 그린 이 그림은 그 어느 포스터보다 더 선명하게 나의 뇌리에 박히는 것 같았다. 이런 아이들에게 쓰레기더미에 묻히는 지구를 넘겨주는 것은 너무나 큰 죄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나는 시간을 조금만 투자하면 훨씬 얻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먼저 언론기관에서 배포한 환경 지키기 지침을 예쁘게 오려서 냉장고에 붙였다. 그리고 매일 우유팩을 열심히 씻어서 말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그것을 잘라서 편 후 모아둔다. 우리 귀여운 재홍이를 위해서 또 지침에 쓰인 대로 생활해서 비교적 실천하기 쉬운 것들만 우선 실천한다. 맥주 같은 술이 남았을 때 그걸 모아서 화초에 준다거나 튀김을 하고 기름이 남았을 때는 모아서 다시 사용하고 나중에 휴지로 깨끗이 닦아내고 씻는 것 등이다.
직장에서는 요즘 종이컵 안 버리기 운동(?)을 벌인다. 자판기에서 뽑은 일회용 커피잔을 함부로 버리는 것이 너무 낭비가 심한 것 같아서 머그잔을 따로 준비해서 계속 사용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종이컵 사용 자재를 권유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열심히 내 생활 구석구석을 점검해본다. 귀여운 재홍이가 무럭 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때도 맑은 하늘과 투명한 강물을 볼 수 있게 하려면 지금 내가 휴지 하나 덜 버리고 생활 쓰레기 하나 줄이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믿으면서….

김경선 님은 '69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91년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그 해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였다. 현재 노동부 국제협력과에 근무하고 있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