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경영] 미세한 것들이 서로 의지해 존재하다

2017-04-20     이언오

|    작은 것들로 아름다운 불교경제  

이언오

문경 면 소재지에 찹쌀떡으로 유명한 뉴욕제과가 있다. 배운현 씨(62) 부부, 사위, 동네 아주머니 몇 명이 꾸려가는 작은 가게이다. 배 씨는 누님 제과점에서 빵 만드는 법을 배웠다. 30년 전 고향인 지금의 자리에 빵집을 열었다. 누님 제과점 상호를 그냥 가져다 썼다. 비슷한 시기 출발했던 서울 강남의 뉴욕제과는 얼마 전 문을 닫았다. 건물 임대료가 제과점보다 수입이 많다는 이유로.  

초기에는 초·중·고 학생들이 주로 이용했다. 학생 수가 점차 감소했으나 농사일 새참 등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입소문이 나던 차에 인터넷을 통해 본격 알려지기 시작했다. ‘생활의 달인’ PD가 3년을 섭외했지만 출연을 거부했다. 본인이 별로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2015년 8월 TV 방송이 나가자마자 대박이 터졌다. 전화가 불통이 되고 전국에서 손님들이 몰려왔다. 

찹쌀은 직접 농사를 짓고 팥은 이웃 농가에서 구입한다. 아침 6시 출근해서 주문받은 양만큼 만들며 다 팔리면 문을 닫는다. 반죽은 찹쌀을 빻아 달걀흰자를 넣고 얼음 위에서 숙성시킨다. 찌지 않고 삶는 탓에 외피가 부드러우면서 촉촉하다. 팥은 연탄불에 대여섯 시간 은근히 삶는다. 팥소가 달지 않고 알맹이가 씹힌다. 특별한 비법 없이 수작업으로 옛 맛을 고수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1주일 치 예약을 받아 직접 찾는 손님에게 판매한다. 떡이 상자에 달라붙는다며 택배를 하지 않는다. 찹쌀떡 하나에 500원, 서민들이 부담 없이 먹으라고 인상을 자제한다. 인근 사찰의 신도들이 스님께 공양거리로 사들고 간다. 먹거리마저 글로벌 기업의 돈벌이로 전락한 지 오래다. 뉴욕제과는 오늘도 외진 시골에서 작지만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 

아이와 씨앗은 작게 태어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라며 다양한 크기로 어울려 산다. 죽어서 다시 작아지고 흩어져 공으로 돌아간다. 크고 작음의 상입상즉相入相卽. 기업은 규모가 클수록 약육강식에서 유리하다. 그래서 다들 탐욕을 에너지로 폭력을 수단으로 삼아 덩치를 키우려 한다. 큰 기업이 작은 기업에게 고통 주고 그 업보로 자신도 고통 받는다. 크기에 집착하고 커져서 고통받으니 어리석다 하겠다.  

슈마허는 1973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큰 기업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규모가 커지면 이해와 통제가 어렵다고 보았다. 적절한 크기라야 인간적·민주적이 되며 사회·자연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불교정신을 경제에 접목한 미얀마를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했다. 작은 기업의 의미와 가능성을 불교경제에서 발견한 것은 탁견이었다. 미얀마는 아직 후진국에 머물러 있고 작은 기업들의 형편은 그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기업은 가야 할 길이다. 

 

|    작은 기업들이 살아나야 먹고사는 것이 조화롭다

요즘 결혼식에서 피라미드로 잔을 쌓고 술을 따르는 이벤트를 한다. 낙수효과로 윗부분에서 넘쳐나 아래 잔에 채워진다. 현실은 꼭대기 잔들이 너무 커서 술이 아래로 흐르질 않는다. 위가 무거워 중심이 불안하고 흐름이 끊겨 바닥이 메마른다. 이처럼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밀어내고 홀대하고 있다. 큰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생각이 오만하고 행동은 권위적이 된다. 

포드는 소 도살장의 자동설비에서 힌트를 얻어 자동차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대형마트는 판매원과 손님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도록 설계를 한다. 조직 규모가 커지면 부서 간 장벽이 생기며 구성원이 무소신으로 일하는 경향이 있다. 규모의 경제로 늘어난 이익은 주주와 경영진에게 과도하게 배분된다. 마음의 탐·진·치가 큰 기업에서 증폭되어 고통으로 나타난다.  

유아독존唯我獨尊, 크든 작든 모두 부처될 씨앗을 갖고 있다. 수행자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간다. 전법은 최소한의 인원이 팀을 이뤄 미지의 험한 길로 떠난다. 승단은 부처님과 다섯 제자로 소박하게 출발했다. 도력과 원력의 높이만큼 수행·보살행의 집단이 커진다. 화엄세계는 미세한 것들이 서로 의지해 존재해서 장엄하다. 기업 크기는 항상 변하는 실체 없는 연기의 모습, 본성은 일체평등하다. 마땅히 작은 기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작은 기업은 경쟁에서 불리하다. 역량 부족도 있지만 여건이 척박한 탓이 더 크다. 작은 기업은 숨어서 살아남고 드러나면 지략·스피드로 승부해야 한다. 생존에 고마워하며 빈자일등貧者一燈처럼 신심을 갖고 오래 버텨야 한다. 일본 시골의 한 반찬가게는 정성과 손맛으로 명성이 높다. 주변 마트가 아닌 전국의 주부들을 경쟁상대로 삼는다. 가족이 먹고살고 직원을 고용하며 주변 농가에게 도움을 준다. 일심으로 정명正命을 실천하니 각행원만覺行圓滿이다. 

작은 기업은 연대가 살 길이다. 덩치 키우기는 한계가 있고 필살기도 마땅찮기 때문이다. 세렝게티Serengeti에서 누는 냄새에 예민하며 얼룩말은 멀리 본다. 전문성으로 취약점을 서로 보완한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 들고 미소 짓는 행동을 통해 법이 전해졌다. 연대도 의화동사意和同事의 행동들이 쌓여서 확산된다. 뜻을 모으고 먼저 희생하며 경계를 없애야 연대가 용이해진다. 

큰 기업은 탐욕과 권력의 덩어리이기 쉽다. 전일적全一的이지 않아 마음·개인·사회·자연과 통섭하지 못한다. 효율·통제 지향의 조직이 자율화·수평화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무상·무아의 이치를 체득해야 큰 기업이 무애자재할 수 있다. 겸손하게 혁신하고 혁신을 통해 겸손을 배워야 한다. 대승, 대덕, 큰 바위 얼굴에서 보듯이 진정한 크기는 비전·도덕·경륜의 높은 수준이다. 큰 기업이 바르게 경영하면 규모는 비난이 아닌 존중의 대상이 된다. 큰 기업이 변하면 세상이 크게 빨리 좋아진다. 

우리는 실력과 그릇이 모자라면서 유독 큰 것에 집착한다. 약소국인데도 나라 이름에 큰 대大 자가 들어 있다. 대기업과 대도시에 들어가려고 치열하게 다툰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끼리 부딪치며 자존감이 빈약하다. 작은 사람들이 쌓인 울화를 풀 데가 없으니 나라가 시끄럽다. 큰 것을 좋아하는 풍토, 큰 것에 유리한 제도로 인해 작은 기업들의 어려움이 초래되었다. 작은 겨자씨 속에 큰 수미산이 들어 있다. 작은 기업의 씨앗을 퍼뜨리고 가꾸어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    작은 기업은 약육강식에 대항하는 의로운 전사

작은 기업은 약육강식에 대항하는 의로운 전사이다. 항산항심恒産恒心, 먹고 살면서 수행·보살행하는 길이다. 영화 ‘명량’에 스님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적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살생의 작은 계율을 범해 백성을 살리는 큰 자비를 베푼다. 작은 기업은 큰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 탐욕·폭력을 제어해야겠다. 근본 가치 바탕 위에서 전략은 지혜롭고 의지는 하늘을 뚫어야 한다. 

대기업, 소비자, 정부는 작은 기업을 진정으로 위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고집하고 이기적이며 나태해서이다. 작은 기업 스스로 살 길을 찾고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어려울수록 신심을 갖고 정진·보시해야 한다. 벼랑 끝이니 좋아질 수밖에 없고 옳은 일이니 공명이 기대된다. 수행으로 물건을 만들고 보살행으로 손님과 종업원을 섬겨야 한다. 잘되는 원인을 만들어 가면 결과는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 

불교의 강점은 개인의 신행, 계율 준수, 느슨한 열린 공동체이다. 철저하게 작은 것 중심이다. 부처님부터 승가를 관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수행자들은 자신에 대한 자긍심, 홀로서기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신도조직도 자발성·자율성의 힘으로 생명력을 확보했다. 불교가 조직, 권력, 영리와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이처럼 오래 유지되었다. 불교의 작은 것에 대한 지혜를 세속에 전해야 한다. 작은 기업과 끽다거, 차 한 잔 마시면 어떨까. 기업가는 작은 만남에서 깨달음을 얻어 돌아갈 것이다. 

부처님은 탁월한 경영자이셨다. 1인 창업을 했고 작게 출발해서 큰 조직으로 키워냈다. 불법과 조직원리 모두 뛰어나 2,600년을 거뜬히 이어왔다. 하지만 요즘 불교는 크기에 대한 집착·미망에 빠져 있다. 건물과 불상은 커지는데 수행과 신행의 열기는 답보 상태이다. 종단과 신도는 조직화되었는데 대덕과 대보살은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신도 감소 뉴스는 잠에서 깨어나라고 경책하는 죽비 소리이다. 근본이 큰 종교란 무엇인지 각성해야 한다. 수행자와 신도 개개인이 주인이며 작은 암자·포교당이 기반이다. 하나의 초점에서 불씨가 시작되고 그 빛은 널리 퍼져간다. 

금년은 명량대첩 420주년이다. 이순신의 장군선 한 척이 명량 물목을 지켜냈다. 장군은 백성에 대한 자비심에서 작은 배를 갖고 싸움에 임했다. 지금 명량해협과 같은 전장이 도처에 널려 있다. 작은 기업들은 각자 전장에서 필사즉생으로 싸워 이겨야 한다. 고통이 크고 힘은 부치지만 불보살이 지켜주고 중생들이 지켜본다. 한 명의 백 걸음보다 백 명의 한 걸음씩이 절실한 시점이다. 작은 기업의 굴기는 세상변화를 촉발하는 경장更張이다. 힘들면서 오래 걸리는 보살행이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