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화가의 붓다의 마음] 물질과 허공에 관한 명상

2017-04-20     황주리

마카오 여행을 갔던 건 카지노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니 나는 고스톱도 칠 줄을 모른다. 오래전 라스베이거스 여행에서 마치 우주선을 타고 다른 혹성에 가보았던 것 같은 신기한 느낌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마카오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유럽의 모나코와 함께 세계적인 도박의 나라다. 국민의 다수가 도박장이나 호텔에서 일하며 생업을 이어나간다.

계속 새로 생겨나는 눈부시고 화려한 호텔들은 육지가 아닌 바다를 매립한 땅 위에 지어진 인공의 왕국들 같다. 마카오에 도착하면, 마카오에서 가장 부자인 스탠리 호(95) 회장 소유의 리스보아 호텔이 가장 먼저 눈에 띤다. 새장 모양을 한 형상적 의미는 일단 호텔 카지노에 들어오면 갇혀서 돈을 다 잃을 때까지 나가지 못한다는 뜻이라 한다. 로비에 들어서면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와 순금으로 만든 풍경 조각이 놓여 있다. 밖에서는 밤새 분수 쇼가 펼쳐지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007 영화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너무도 다른 콘셉트의 각기 다른 눈부시고 화려한 호텔들을 돌다보면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으로 연결된 낯선 우주에 떨어진 기분이다. 가는 곳마다 가득 쌓인 세상의 명품들을 매일 지나치다 보면 그것들이 명품도 무엇도 아닌 무의미한 사물들로 보인다. 저 수많은 명품들에 현혹되거나 카지노에 돈과 영혼을 쏟아붓지도 않으면서 유유자적 구경하는 인생도 좋지 않은가? 집착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고 쓸데없는 환영에 휩쓸리지도 않으며, 걷는 도중 배고픈 사람을 만나면 밥도 사주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을 만나면 짐도 같이 들어주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그 물질의 세계 한복판에서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고, 허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다는  『반야심경』의 구절을 떠올렸다.

                                                                         

황주리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