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견문록] 정목 스님과 함께하는 자비도량참법 기도

기도는 모든 존재가 평등함을 바르게 보기 위한 것

2017-04-20     문현선

기도는 모든 존재가 평등함을 바르게 보기 위한 것
정목 스님과 함께하는 자비도량참법 기도

이 기사를 쓰는 도중, 정목 스님의 방송을 보았다. 세트장에 홀로 앉아 책을 읽어주신다. 평정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 양력 1월 1일 저물녘, 정목 스님이 주지로 계신 절을 찾았다. 성북구 삼선교에서 이어지는 골목골목을 기웃거린 끝에 정각사에 닿았다. 도량은 고요했다. 매달 『금강경』 기도가 있고 일 년에 한 번, 정초에 하는 ‘자비도량참법 기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며 독송 기도야말로 수행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간 하는 자비도량참법 기도에 참여하기로 했다.

 

|    스승이라는 숨은 달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월 30일 아침. 부지런히 다시 언덕을 올랐다. 옛 동네를 연상시키는 골목들은 빙판길로 변해 있었다. 길가엔 눈이 쌓여 있고 길이 미끄러웠다. 걸음이 더뎌졌다. 맹추위에 사람들이 많이 왔을까? 대웅전에 들어가니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붓다홀’까지 합하면 대략 100여 명에 이르렀다. 경남에서 오신 분들은 새벽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뒤쪽에는 의자가 몇 개 놓여 있고 몇 분이 앉아 있었다. 87세 노 보살님도 동참하셨다. 이곳 정각사에서 기도한 지 45년째다.

인사를 드리려고 절 마당에서 스님을 기다렸다. 폭신한 흰 털모자를 머리 위에 얹고 오는 정목 스님이 보였다. 오늘도 정갈한 차림, 환한 얼굴이다.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집전한 것은 주지 소임을 맡고부터니까 10년째다. 그러나 은사스님 곁에서 이 기도를 함께 했었으니, 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다.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기도인 셈이다. 93세 되신 ‘광우 스님’은 지금도 이 도량 안에 계신다.

정각사에서 사람들을 만나 알게 된 사실은, 정목 스님의 은사스님의 존재다. 절의 오랜 신도들과 대화를 나누면 광우 스님에 대한 공경심이 느껴졌다. 선지식 광우 스님은 비구니계의 원로다. 1958년, 정각사를 세웠다. 주위에 주택도 거의 없고 서울성곽뿐이던 당시, 보기 드문 포교당이었다. 우담바라회 결성을 주도했고, 전국비구니회 회장이 되어 수행자들을 이끌었다. 전국비구니회관 건립에도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어떤 굵직한 이력보다 더 그 분의 성취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제자의 모습 아닐까. 그 제자는 다시, 스승이 된다.

 

|    발심, 연꽃을 피우다

자비도량참법 기도는 방대하고 대승적이다. 산 사람뿐 아니라, 유주무주有住無住 모든 중생의 죄업을 참회하기 때문이다. 세세생생 수미산 같은 죄장罪障을 청소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기도에 앞서, 정목 스님은 이 기도의 열 가지 공덕을 소개했다. 요약하면, 수십 겁 동안의 무지와 업장을 한순간에 깨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기도는 1년을 살아갈 자산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저한테도 의미 깊고, 불자들에게도 의미가 있지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홍한기(69) 씨는 1995년, 정목 스님이 동행한 봉정암 기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육근六根에 대한 법문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 지금은 울력에도 중요한 몫을 한다. 이유는 “신심이 우러나서”다. 표정에서 행복감이 엿보인다. 김성연(80) 씨는 45년째 정각사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계속해왔다. 함께 오던 도반들이 돌아가시고 몇 사람 남지 않았다. 이 기도를 하면 “확 트이는 느낌이 든다.”라고 했다. 사바세계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업을 쌓는다. 참회해도 또다시, 참회할 일이 꼬리를 문다. 엎드려 울고 싶다.

기도 방법은 『자비도량참법』 책을 읽어나가면서, 합송하고 절하는 것이다. 두꺼운 책 한 권이지만, 내용상으론 총 열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날 1~4권을 하고, 둘째 날 5~9권, 마지막 날 10권을 나간다. 이 기도가 어떤 인연으로 유래했는지가 먼저 나온다. 「발문」에도 등장하듯이 양 무제와 죽은 황후의 사연으로 인해 양황참梁皇懺 기도라고도 불린다. 기도가 시작되자, 스님이 나뭇잎을 물에 적셔 사람들에게 뿌려준다. ‘버들가지 청정한 물, 삼천세계에 두루 뿌려….’ 라는 부분이다. 미끄러지듯이 빠른 속도로 다 같이 진언을 반복한다. 그런 다음, 스님이 꽃잎을 흩뿌린다. 기도가 진행됨에 따라 향, 등불, 유미죽, 가사에 이르기까지 공양이 하나씩 더해진다. 이어서 ‘자비도량’의 뜻이 나온다. 자비하신 미륵불의 현몽現夢으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도량道場은 ‘불도를 닦는 곳’이다. 그러니 자비도량이 꼭 사찰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리라.

 

|    참회, 내려놓고 가벼워져라

무엇을 참회할 것인가. 알고 지은 악업, 모르고 지은 허물, 깨어있지 못해 범한 무례에서부터 큰 잘못에 이르기까지. 거듭되는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부분은 스님이 독송한다. 엄청난 속도임에도, 발음이 명확해서 내용이 귀에 들어온다. 이제는 정목 스님의 위안을 주는 목소리에 감탄하는 것이 새삼스럽지만, 그 파장에 끌리듯이 조율된다.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삼보三寶를 찬탄한 데서 온다고 한다. ‘지심귀명례’ 하고 무수한 불보살들의 명호가 나오면, 절할 순서다. 이번에도 놀라운 속도다. 하나같이 ‘간절하게 오체투지’ 하고 일구월심日久月深, 지성으로 절을 올린다. “불보살께 다가간다는 생각으로, 사생육도 윤회하며 인연 맺은 일체중생에 온몸을 던져보세요.” 무릎 뒤와 등이 땀에 젖는다. 탄력이 붙으니 생각보다 힘들진 않다. 도량이 햇살에 녹아내린다.

스님은 둘째 날을 ‘깔딱 고개’에 비유했다. 산 정상 직전에 있는 고비. 그만큼 절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첫날보다 편안했다. 붓다홀에서도 스크린을 보며 동시에 기도가 진행된다. “저 언덕으로 가기가 녹록치 않죠?” 정목 스님이, 일념삼매로 집중하면 내용이 새겨질 거라고 대중에게 일러준다. 기도를 해나갈수록, 이 많은 내용을 알아듣기 쉬운 우리말로 번역한 운허(1892~1980) 스님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공空한 법을 되새기고 보리심을 서원한다. 원한을 푸는 부분도 있다. ‘무량한 원결을 오늘 참회하여 제멸하기를.’ 그럼으로써 자신도 놓여난다.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 또한 참회한다. ‘뼈가 닳도록 참으면서 참회를 하였는가.’ 정말 무릎이 깨져나가도 괜찮다고 각오한 듯, 다들 몸을 아끼지 않는다. 밖은 영하 11도다.

이날 장영숙(80) 씨는 환희에 차,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기도를 10년 했는데 이제야 가슴에 하나하나 와닿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내용이 주는 깊이가 잘 안 들어왔는데 이번엔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광우 스님 때부터 『법화경』 등을 공부해왔다. 그것이 쌓여서 비로소 흡수되는 것 같다고 했다. 모든 중생을 아울러 참회한다는 사실이 특히 감사하다.

 

|    회향, 기도는 정견이다

시간이 갈수록 절을 많이 했다. 한두 구절 읽고 나면, 또 휘몰아치듯 절할 때가 돌아온다. 수백 배拜씩이다. 신음이 새어나온다. 마침내 2월 1일. “더 하고 싶지 않아요?” 스님의 농담에 대중은 웃음을 터뜨린다. “여러분, ‘미륵불’ 보이면 한숨 나고 ‘관세음보살’ 나오면 반갑지요?” 절하는 부분이 대개 미륵불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 관세음보살로 끝맺기 때문. 스님도 웃는다. 기도 내내 대웅전 앞쪽에는 색실을 꼰 끈이 놓여 있었다. 인도에서 티베트 린포체 일곱 분이 축원을 담아 보내온 것이다. 입재 날 예고한 대로, 기도를 원만히 마친 이들에게 귀한 선물이 주어졌다. 스님들이 그 가피 끈을 목에 걸어준다. 김두계(80) 씨는 이 기도를 하니 “1년 할 일을 다 한 듯하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뒤이은 정목 스님의 법문. 기도를 하는 이유는 ‘바르게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모든 불교수행의 본질이 정견正見이에요. 팔정도 중에서 맨 처음인 까닭도 그 때문이지요. 깨어서 바르게 보면, 나은 길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어요. 그게 참회하는 이유입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놓아지고, 그러면 차별이 없어진다고 했다. 관계가 다 사라져, 평등한 존재로 보인다. 자비의 눈으로 보니 배려하게 된다. “(돈을 줘도) 존재의 존엄성을 살 수는 없어요. 갑질이 바로 악업입니다.” 

사회성 있는 주제임에도, 무겁지 않은 어조다. “우리가 잡아먹는 생명들이 내 가족 아니었던 적이 없어요. 그러다보니 나 또한 뜯어 먹히고, 나도 다른 사람을 뜯어 먹고.” 기도 첫날부터 기자는 ‘이 기도를 여기서 할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모여서 해야 하는데!’ 하는 소망이 생겼다. 법문을 듣고 그 상상은 발원이 되었다. 우리나라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참회가 절실하다. 자정기의自淨其意, 스스로 바로잡을 기회다.

법문 뒤에 천도재를 지냈다. 영가에게 올리는 공양이다. 그 후 마당에 나가 탑돌이와 소전燒錢 의식을 했다. 오래된 탑 뒤엔 ‘미래탑’이 있다. 모두 촛불을 받아든다. 기도 중 이런 내용이 자주 나온다. ‘다 같이 정각에 오르게 하여지이다.’ 또 스님은 후원에서 수년째 뒷바라지 해온 봉사자들을 기자에게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법당에서 하는 기도만 기도가 아니었다. “기도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수많은 도움 속에서 하고, 다른 사람이 기도하는 걸 보면서 하죠.”

보통 1주일 이상 하는 이 기도를 정각사에서는 단 3일에 하는 이유는, 다 못 오는 사람이 많아서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고단함과 무관하지 않다. 모든 이의 바쁜 마음이 쉬어지기를. 스님은 삶 속에서 얼룩진 무늬가 씻겨나간 상태가 흰 색이라고 표현하셨다. 나는 조금, 하얘졌을까. 함께한 절이 몇 배인지 차마 하나하나 쌀알을 세어보진 못했다. 그러나 그날의 음조는 귓가에 생생하다. 지심귀명례 관세음보오살. 내년 정초가 기다려진다. 아, 『금강경』 기도가 있다!      

 

 

문현선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문화관련 기획자로 활동했다. 지금은 더디게 수행을 이어가고 있으며, 느리게 해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