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신적 고향은 백양사

불자가정만들기, 김병조.김현숙 씨 가정

2007-09-14     관리자


상춘객 의 옷차림이 경쾌하게만 느껴지는 일요일 오전, 인기 코미디언 김병조 씨 댁을 방문하는 기자의 마음은 마냥 설레인다.
월계역에서 내려 전화를 걸자 직접 골목으로 나와 불광에 각별한 애정을 표하며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유명 방송인의 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산층보다 더 평범하게 사는 것 같아 조금 놀랬지만 금방 시골 친척집에 온 것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불교방송국의 문화센터 다도강좌 선생님이기도 한 김현숙(자월행, 41)보살과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딸 지현(보현행, 17) 양, 중학교 2학년인 아들 형주(운송, 15) 군 이렇게 네 식구는 비록 집과 터는 작아도 따뜻한 애정과 훈기가 감도는 곳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다.
자리에 앉아 방문에 직접 써서 붙힌 붓글씨 몇 점이 눈에 띄어 말을 먼저 건네자, "좋아해요! 그저 옛날 분위기가 좋아서 써본 것이지요."했다.
기자의 눈에 보기도 썩 잘 쓴 글씨가 좋아보인다고 하자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틀리다며 겸손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조용해서 이 동네에 살아요. 결혼하고 셋방 살다가 처음 장만한 집인데 13년 째 살고 있어요. 바로 뒤에 산이 있고 인심도 좋고,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는 동네예요! 가끔 좋은 일이 있으면 서로 왕래도 하며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지요."
이웃사촌은 옛날 얘기고 먼 곳에 있는 친척은 남이 되어 가고 있는 요즈음인지라 시골 면장님댁처럼 구수한 정취가 와 닿았다.
김병조 씨 가족은 바쁜 방송 스케줄이지만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 5박6일정도 휴가를 내어 지역별로 문화권을 정해서 전국으로 사찰순례를 다닌다. 절을 참배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다닌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혹은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부인 김현숙 씨는 "요즘은 아버지도 바쁘고 엄마도 바쁘잖아요. 우리 네 식구는 사찰순례를 하면서 함께 절도 참배하고 문화유적도 꼭 들렀다 와요. 아이들한테 일부러 불교가 어떻다고 말하고 강조할 필요없이 은연중에 몸에 배이게 되어 좋아요!"라며 덧붙인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절 쪽으로 흘렀다. 김병조 씨는 아버님이 선비이시다 보니 참 어렵게 자랐다며, 자신의 인연담을 들려 준다.
"저는 부처님보다 하루 일찍 태어났어요. 그것은 생일이 음력으로 사월 초이레이기 때문이지요. 어머님께서 16세에 시집을 오시어 10년이 넘도록 장손을 못 보자 절에 가서 갖은 지성과 불공을 드린 후에 저를 잉태하셨고, 지금도 백양사 그 먼 거리를 꼭 쌀을 이고 가시어 자식들을 위해 사천왕불공(四天王佛供)을 하고 계시지요."
말을 듣고 있으니 어머님을 생각하는 효심(孝心)이 각별해 보였다.
어머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네 정신적인 고향은 백양사이니 항상 그곳을 향해 경배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김병조 씨는 항상 어머님의 이 말씀을 새기며 자랐다고.
국민학교 3학년 무렵쯤이었다. 농사일이 바쁘고 절이 40리나 떨어져 있어 절에 자주 갈 수 없는 처지라 어머님께서는 근처 무당집에 이름을 팔고 잘 봐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린 김병조 씨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어머니께 "나는 큰 인물인데 왜 이런 조그만 무당집에 이름을 달아요. 백양사에다 해 주세요!"하고 말하는 영특함을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6학년 떄는 종손인 자기를 그리도 사랑해 주시던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생로병사의 허무함을 보았고 그 기억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가끔은 후배들한테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生老病死 諸行無常)"는 말을 해주기도 한단다.
BBS 불교방송국 개국맴버이기도 한 김병조 씨는 녹화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불교방송국이지만 절에 가는 기분으로 간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법구경'을 보면 그 글을 읽는 순간만은 착해지는 것 같은 감흥에 빠져든다고…. 어떨 땐 경구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신경질이 난다며 의미있는 웃음을 짓는다.
지난 연말연시에는 SBS의 생방송 프로 94.5년 재야의 종소리가 밝았습니다.를 진행한 후 네 식구가 새벽에 도선사 석불전에 같이 갔다왔다고 한다.
부처님 전에 꿇어 앉아 자비가 우리 말로 무러까를 생각해 봤는데 '안쓰러워 하는 마음' 같다고 하자 옆에서 부인이 "그 말은 전라도 사투리로 '짠하다'고 표현한다"고 했다.
김병조 씨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짠하게 안쓰러워하며 서로를 위하는 잉꼬부부처럼 다정해보였다. 정말 부부가 서로에게 화답하며 부처님 대하듯 안쓰러워하고 위해준다면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 아닐런지.
"지금 세상은 남자가 여자 따라가게 되잖아요. 내가 아무리 이렇게 살고 싶은데도 여자가 싫어하면 안 되거든요. 집사람이 책을 좋아하고 다도, 사군자, 박물관 대학을 다니느 것이 나하고 딱 맞아요. 부부가 취향·취미가 같아야 별 문제가 없지요." 김병조씨는 김현숙 보살에게 고마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란다. 그러자 "서로 고마운거죠!" 라며 부인이 맞받는다.
김병조 씨는 많은 방송활동 중에서 유선방송 마이 TV에서 진행하고 있는 「김병조의 생활한자」를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예절이란 게 알고 보면 편해요. 예절은 지켜버리면 끝이잖아요.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돼요! 모범을."
그래서 가능하면 자식들에게 전통적인 교육방식으로 하려고 하고 가끔 목욕탕도 같이 다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하고 같이 대화도 나누고 잔다고…. 우리가 몰랐던 다정다감한 뽀병이 아저씨의 또다른 일면을 보여 준다.
"대개 사람들은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일 소중한 것이 가정이고 가족이에요,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모든 걸 사랑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가정이 제일 먼저라고 생각해요!" 가정이 사회의 기초 단위이듯이, 엄격한 훈장님처럼 가정의 중요성을 잔잔히 일깨운다.
옛말에 윗사람이 하는 것을 아랫사람이 본받는다는 뜻으로 상행하효(上行下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누나가 학원에 갔기 때문에 기사에 자신만 들어가고 누나가 안 나오면 섭섭해 한다고 자기방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는 형주군이 더욱 미덥게 느껴졌다.
김병조 씨는 지나간 일이지만 87년 대선당시의 발언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종교가 불교였지 그리고 신심(信心)이 깊지 못했는데, 그때 개심사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108배도 하고 개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님 49재 후 서웅 스님을 친견할 기회가 있었다는데 "인생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는 말씀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을 수가 없었다고. 그래서 불교와 한층 가까워졌고 자신보다 더 불심이 깊은 아내와 아이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고 한다.
법명이 환희장이기도 한 그는 이젠 불교도 포교나 복지사업에 적극적이어서 현대적으로 깨어나야 한다고 불교 사랑을 내비친다.
청산유수로 쏟아지는 설법(?)을 듣다보니 더이상 묻고 싶은 말조차 없어졌다. 하기야 TV를 통해 보는 김병조의 모습에서도 그 사람의 모든 걸 알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부인 김현숙 보살은 조그마한 마당이지만 직접 심은 야생화가 백 가지는 넘는다고 "꽃이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는데 어떻게 이사를 가요. 앞으로도 꽃들 때문에 이 집에서 이사 못 갈 거예요."라며 대문을 나서는 기자에게 화사하게 웃어 보인다.
방송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진한 향기가 느껴져 왔다. 정말 모범적인 불자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에 가득 넘치는 향훈(香薰)이 며칠은 계속될 듯 싶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