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두 얼굴

현대인의 정신위생

2007-09-14     관리자

  어머니를 찾는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지냈다가 세상에 나와서는 다시 어머니의 품 안에서 젖을 먹고 오랜 세월 보살핌을 받고서야 어른이 된다. 서양 사람들이 급할 때 하나님을 찾는데 비해서 우리는 어머니를 찾는다. 그만큼 우리는 전통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도 어머니의 보살핌을 더욱 극진히 받으면서 살아 왔었다.
  전에 어떤 젊은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분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계모 밑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는데 밤 깊어 잠자리에 누우면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을 떠올려야 비로소 잠이 온다고 한다.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찾는 것도 위와 같은 심리로 생각된다.
  요사이 서양에서도 태교(胎敎)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태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기 때문이다. 태교에 의하면 사람은 출생 이후 어머니의 보살핌이 절대 필요한 만 여섯 살, 특히 만 세 살까지의 상태가 어떠했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한다.
  정신 분석의 창시자 프로이드는 만 두 살까지 어머니의 건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어린이에게 처음에는 어머니의 젖꼭지가, 나중에는 어머니가 전 우주이며 세상이다. 만 한 살까지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생긴다.
젖을 적절하게 주는가, 잠을 깊이 자는가, 위장의 이완이 잘 되는가, 속이 편한가 등에 따라서 신뢰감이 생기기도 하고 불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어머니는 좋으면 하느님이고 천사고 성모 마리아고 관세음보살님이지만 그의 보살핌이 좋지 못하면 아기를 잡아먹으려는 악마적 존재가 된다. 아기에게 있어선 어머니의 보살핌에 따라 느낌은 그토록 상반적이다.
  큰 아이들도 어머니를 찾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밖에서 잘 놀다가도 가끔 어머니가 있나 하고 확인해보고 다시 나가 논다. 해가 서산에 기울기 시작하면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집에 돌아와 찾아 본다. 대학생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선 어머니를 찾으며 만일 어머니가 없다면 아버지를 찾는다. 그리고 두 분이 다 없게 되어 쓸쓸하면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특히 정신과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인간에게 어머니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

  어머니의 영향

  몇 해 전에 미국에서 국제적인 모임이 있었는데,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랭(그는 인도에서 2년간 도를 닦았다고 한다)이란 사람은 잡담식으로 강연을 하던 중 어머니는 영원히 저주받을 존재라는 말을 했었다.
  그는 주로 정신 분열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모금 운동도 하는 사람이었는데, 정신병은 선량한 사람이 병든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희생되는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성장한다해도 제일 착한 아이가 정신병을 앓는 경우가 많음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30년 전 세계 평화를 위해서 마련된 파리의 유네스코 회의에 참석 중 급사한 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살리반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정신과 의사인 그는 정신 분열병을 연구하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커다란 암거미가 그의 몸을 거미줄로 감고 그를 잡아 먹으려고 하길래 깜짝 놀라서 깨어났다. 그런데 전등을 환히 켰는데 하얀 시트 위에 여전히 거미가 기어다는 게 보였던 것이다. 그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곧 정신 분석의를 찾아가서 몇 해 동안 분석치료를 받았다.
  그가 급사한지 몇 해 안되어 정신분석 연구소에서 정신 분석의 역사에 관한 세미나가 있었다. 거기에 참가한 학생들이 살리반을 분석한 클라라 톰슨에게 그에 관한 질문을 했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살리반은 자기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고 회고하면서 그가 적어도 청년기에는 정신병적 상태였다고 분석했다.
  살리반은 뉴욕주 북부의 가난한 아일랜드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말이 거의 없었고 어머니는 만성병으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대화의 상대가 없었다. 농장의 동물들이 유일한 대화의 상대였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없었기에 모성적 감정이 풍부한 정신 분석의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분석자로 하여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정신 분석 치료를 받아도 여성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일어나질 않았다. 그래서 여자 환자에게는 진찰만 했지 치료를 하진 못했다. 나중에 그는 결혼까지 포기하고 말았다. 그가 한참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응석을 부리려고 할 때, 그에게는 그의 어머니가 어떤 악마적인 존재로 보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의사로서 분열병 환자를 치료하다가 그 환자의 어머니를 보면 간혹 악마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자라서 미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랄 때 생기는 증오심이 항상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어머니를 보면 안다

  6.25사변 때 지방으로 피난가서의 일이다. 해방 전부터 잘 아는 부인이 정신 분열 환자가 된 여대생 딸을 데리고 왔다. 그 딸의 말이 자기는 아픈 사람만 보면 뱀같이 여겨진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녀는 네 살 때부터 아파서 누워있는 어머니의 약을 달이거나 어머니의 대신으로 밥을 하곤 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심정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한창 재롱과 응석을 부리고 싶을 때, 친구들이 그들의 어머니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을 때, 남들은 즐겁게 놀고 있을 때, 그녀는 누워있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돌봐드리면서 느낀 감정이 바로 뱀같다고 한 것이다.
  그 환자의 어머니는 말과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그때 이미 착하고 공부 잘 하던 아들이 정신 분열병에 걸려 있었고 또 큰 아들은 밤낮 아버지에게 상욕을 하면서 대든다는 소문이 있었다. 결국 십여 년 후에 큰 아들도 피해 망상증을 일으켜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렇듯 어머니가 아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 자신의 병적인 감정에 지배되어 병이나 다른 사정으로 제대로 어머니 노릇을 하지 못하면 어린이의 마음에는 자기를 해치거나 잡아먹으려는 악마로 느껴진다.
  어떤 집 형제들에게 사람과 집을 그려 보라고 했더니 큰 아들만 빼놓고 다들 이상하게 그렸다. 큰 아들은 뜰에 풀과 나무와 길이 있고 초가집에 알맞은 문에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마당 한가운데 제대로 옷을 입은 사나이가 서있는 그림을 그렸다. 이 아이는 누가 길렀느냐고 물어봤더니 그 어머니 말이 집에 있던 성격이 좋은 할머니가 길렀다고 한다. 그 어머니가 기른 다른 아이들은 모두 조금씩 어딘가 이상했다. 결국 남이라 할지라도 건강한 사람이 기른 아이가 그 중에서 제일 건강하게 된 것이다.
  옛날 서양에서는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정신이 안 좋은 사람들을 마귀라고 불에 태워 죽이는 일이 있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정신이 불건강한 것을 마귀라고 느끼는 심리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해소되지 않는 적개심이 어린이에게는 마귀 같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즉 아이들을 잘 보살피지 않는 어머니들은 마귀 같은 존재가 되기 쉽다. 그 실례로 최근 어느 국민학교 5학년인 어린이가 그이 어머니에게 자기 친구인 아무개 엄마는 마귀라고 했던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어머니는 천사와 마귀의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음을 요새 어머니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어린이는 잠자기 전에 어머니를 찾는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는 분명히 마귀의 일종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