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의 길

보현행자의 목소리

2007-09-14     관리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하여 인고토(忍苦土)라고도 한다.
이곳이 고통의 세계이므로 그 고통을 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고(苦)를 싫어하고 낙(樂)을 좋아하는 유정중생(有情衆生)인 까닭으로 만약 참지 않으면 고가 더욱 기세(氣勢)져서 고통은 더욱 심해지는 연고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인과 연의 상관성, 상의성으로서 생성, 존립되는 원리의 당연함을 모르는 우리 중생에게 이미 지혜는 없어서 어리석음의 노예가 되어 하는 말, 하는 행위, 하는 생각이 어리석음을 좇아가는데 어찌 생로병사의 당연함과 순응해질 수 있으며, 부귀영화의 괴멸의 당연한 진리에 어찌 부당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당연함을 당연함으로 알고 행함에는 당연한 보(報)를 받고, 당연함을 부당연함으로 알고 행동함에는 부당연한 보를 받는 것이 연연과보(因緣果報)의 법칙일 것이다.
비가 내리는 것은 내릴 만한 인연이 모여져 내리는, 비의 당연한 모습이지만 욕심에 집착된 사람에 의해서 당연함의 비내림은 좋은 비, 나쁜 비로 강제분별 되어져 희로애락의 원인이 된다.
또 타인의 언행이 그러한 것도 그럴만한 인연이 모여진 심성이 있기 때문이며, 그 DS행은 심성의 모습일 뿐으로 당연함인데도 사람의 욕심이 그 당연함에 울고 웃고 성내게 되는 어리석음의 과보로서 이 세계가 인고토가 되는 과보를 받는 것이다.
타인의 어떠한 언행도 당연한 것이므로 그 당연함에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희로애락일 것도 없다.
굳이 허물을 말하자면 그가 곰의 짓거리를 하였다면 그가 곰인 것이 허물이 되겠고, 또 당연함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이 있을 뿐이지 결코 허물이 곰의 짓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짓거리에 하자(瑕疵)가 없다면 그 허물은 성낸 나에게 있으므로 내가 그 허물의 과보를 받을 것은 당연한 귀결이 될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곰인 것인데 이것도 왜 곰이냐고 성낼 일이 아니며, 이때 참다운 불자라면 이제까지 똑같은 사람인 줄 알았던 그가 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참괴심(慙愧心)과 참회심(懺悔心)이 절로 생겨나 더욱 수행정진을 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떠한 행위에 대하여, 성을 내야 하는 경우와 성을 내지 않아야 하는 경우를 아는 지혜를 얻어야 하며 이 지혜야말로 자비심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이 사바세계에는 고가 난무하는데 무한정 참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며 더욱이 기복(祇伏) 따위의 행위는 더욱 아닐 것이다.
지혜로써 고의 원인을 바르게 파악하여 원인 제거를 하여야만 이고득락(離苦得樂)에 부합되는 것일진대 언제까지 빌기만 할 것이며 언제까지 방편에 묶여 참기만 할 것인가.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고 하였듯이 삼독심인 탐진치(貪瞋痴)로써 악업을 짓지 말고 지혜의 자비로서 선업을 지으며 생활하는 참된 불자가 되어야 하겠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