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 나를 만든다

선심시심

2007-09-14     관리자


決須好伴하여 更相策發하고
결수호반 경상책발
不眠不散하여 日有基新으로
불면불산 일유기신
切磋琢磨하며 同心齊志이라.
절차탁마 동심제지

모름지기 좋은 도반을 정하여
서로 번갈아 경책하고 계발(啓發)하며
잠에 떨어지거나 마음이 흩어짐 없이
날로 다짐을 새로이 하여
힘써 도업을 닦으며
마음을 합하여 뜻을 가지런히 할지어다.

중국 수나라 때 천태지의(天台智 )에서 공부하는 학인들에게 주는 경책(警策)이다. 출가나 재가를 막론하고 수행에 있어 도반은 필수불가결의 존재로 인정되고 있다.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는 여느 종교와는 달리 섬겨야 할 어떤 절대자가 없다.
'여러 강들이 모여 바다에 이르면 오직 대해(大海)라고만 일컬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크샤트리아, 브라만,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급도 일단 출가하고 나면 오직 사문이라고만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단은 평등하여, 세속적인 계급과 신분은 완전히 불식되기 마련이다. 붓다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직 착한 벗의 한 분이었다. 길을 같이 가는 도반의 한 사람이다. 그저 길을 먼저 가본 선도자일 뿐이다.
붓다는 항상 교단의 도반들에게 '그대들은 나를 선우(善友)로 삼음으로써 늙어야 할 몸이면서도 늙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병들어야 할 몸이면서도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죽어야 할 몸이면서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괴로움과 근심을 지닌 몸이면서도 괴로움과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격려하여 주었다.
이런 평등한 교단에서 수행자는 모두 친구 관계에 있다. 여기서는 오직 좋은 벗만이 소중한 것이다.
아난이, 이 성스러운 길을 가는데 있어서 착한 벗과 착한 동지와 함께 있는 것이 절반의 구실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붓다는 절반이 아니라 전부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도 좋은 도반과 함께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가를 알 수 있다.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요, 나를 만들어 준 것은 벗이다(生我者父母, 成我者朋友)'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백장(百丈) 선사가 도업을 이루는데 있어서 친구의 역할이 얼마나 대견한가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나라 때 도오원지(道吾圓智)와 운암담성(雲巖曇成)이라는 형제가 있었다. 형 도오는 46세가 되어 비록 늦게 출가하였지만 호남(湖南)의 약산유엄(藥山惟儼)에게서 개오(開悟)한 데 비하여, 동생 운암은 출가한 지 20년이 되어도 전혀 소식이 없었다. 형제간 우의(友誼)에서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 강서(江西)의 백장의 곁을 떠나 약산에게 오도록 권유하였다.
석두시진금포(石頭是眞金鋪) 강서시잡화포(江西是雜貨鋪)란 글귀는 그 편지의 내용이다. 호남의 청원(靑原) 문하의 석두희천을 선을 순금에 비하고, 남악(南岳) 문하의 마조나 백장의 선은 잡화에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동생 운암은 백장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백장은 이 사실을 알고 운암을 약산에게로 보내기 위하여 서찰을 한 통 주어 심부름을 시켰다. 운암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약산 문하에서 대성하여 그 뒤를 잇게 되었다.
'…성아자붕우'라는 앞의 명구는 백장의 편지 내용에 있다. 자신의 문중을 모욕한 사실에도 개의치 않고 한 학인의 성공을 위하여 인연 따라 보내주는 그 금도(襟度)도 어지간하다 하겠다. 특히 벗을 따라가도록.
'무릇 불교를 배우는 사람은 도량에 들어가면 먼저 선지식을 택하고 다음엔 선우와 사귀어야 한다. 선지식은 수행자의 나갈 바른 방향을 지시하는데 필요하고 선우는 절차탁마에 귀중한 것이다.'라는 고인의 말도 있다.
춘추시대 제(齊) 나라에 관중(管中)과 포숙아(鮑叔牙) 사이의 관포지교(管鮑之交)는 너무도 유명하다. 생아자부모(生我者父母), 지아자포자(知我者鮑子)라 했다. 즉 생애를 같이 하고나서 나를 아는 이는 자기의 친구 포숙아뿐이라고 관중은 말하고 있다.
'벗은 눈앞에 없어도 거기 있고 가난해도 풍족하고, 허약해도 건강하며 죽었다 해도 살아 있다.' -키케로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