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돌아오는 곡우차(穀雨茶)의 계절

불교세시풍속

2007-09-14     관리자


4월의 세시(歲時)
양력으로 4월 2일이 음력 3월 3일 '삼짇날'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보은푼 박씨'를 물고 돌아오는 날이다.
하루가 다르게 날씨도 따뜻해지니 온갖 봄꽃이 산천을 물들인다.
양력으로 4월 5일이 청명(淸明), 6일이 한식(寒食), 20일이 곡우(穀雨)이니 봄이 무르익는 달이다.
'삼짇날'이면 명승대찰을 찾아 부처님께 예불하고 공양을 올리는 풍습이 있다. 특히 이 날 부처님께 차를 올림을 큰 공덕을 쌓는 신행으로 여겼다.
민간에서는 무슨 빛깔의 나비를 먼저 보냐에 따라 길흉을 점치기도 한다.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기고 흰나비를 보면 부모 상복을 입는다 했다. 한편 아녀자들은 봄볕 아래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물 흐르듯 한다해서 삼짇날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청명'은 한식 하루 전이거나 같은 날에 드는데 이 날을 기해서 봄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옛날 대궐에서는 버드나무와 느릅나무에 불을 붙여 각 관서에 나누어주었으니 불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법도라 하겠다.
'한식'은 한 해 겨울 얼었다 녹아 무너진 조상의 무덤을 손질하고 '차례'도 올린다. 지금도 한식날 무덤을 개사초(改沙草)하고 차례를 올리는 풍습이 경향간(京鄕間)에 이어져 산마다 성문객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식날에는 더운밥을 먹지 않고 찬밥을 먹었는데, 이는 중국의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불에 타 죽은 혼령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도 하지만, 실은 이 때면 바람이 심해서 성묘길에 산에서 불을 피우면 산불 날 위험이 있는데서 비롯되었으리라는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다.
'곡우'는 24절기의 하나로서 못자리를 마련하며 논농사가 시작되는 때이다. 이 때가 되면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들이 북상을 해서 충청남도의 격열비열도(格列飛列島)까지 올라오니 황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혔다. 이 때 잡히는 조기를 '곡우사리'라 해서 맛을 으뜸으로 쳤다.
이름 그대로 '춘삼월 호시절'이라 하루를 잡아 즐기는 '화류(花柳)놀이'를 빼 놓을 수 없으니 농부는 농부끼리, 부녀자는 부녀자들끼리 그리고 유생(儒生)들은 유생끼리 따로 판을 벌였었다.
향그러운 '시절음식'을 소개하자.
산에 만발한 진달래꽃을 뜯어다가 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 지져먹는 꽃지짐(花煎)은 봄을 만끽케 하는 별미 중의 별미이다. 고급스런 음식으로는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 꿀을 타고 잣을 넣어서 먹는 꽃국수(花麵)가 있다. 또 진달래꽃을 따다가 녹두가루와 함께 반죽해서 만들기도 하고, 혹은 붉게 물들여 꿀을 섞어 만드는 물국수(水麵)도 이 계절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시절음식이다.
쌉쌀하면서도 향그러운 된장을 푼 '쑥국'에 녹두로 청포묵을 쑤어 미나리와 김에 무쳐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탕평채(蕩平菜) 맛도 역시 이때이다.
봄철에 마셨던 술 가운데 그 이름이나마 전하는 것을 알아본다. '두견주(杜鵑酒)' '이강주(梨薑酒)' '도화주(桃花酒)' '과소면주(過小麵酒)' '서향주(瑞香酒)' '사마주(四馬酒)'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러한 술들은 각 가정에서 기호와 풍류에 따라 빚었던 것으로 독특한 향기를 풍기게 하기 위하여 향료를 넣거나 보신이 되게 하기 위하여 약재를 넣었다. 집집마다 주부들이 정성껏 빚은 이러한 계절주들은 봄의 흥취를 한결 높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가풍과 풍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속담에 '도랑치고 가재잡고 마른 논에 물대기'가 있다. 바로 이 계절의 얘기이다.
한 겨울 무너져 내린 도랑을 손질하며 고인 물을 빼니 물고기는 저절로 잡히며 빼낸 물은 마른 논을 적시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일과 놀이를 잘도 조화시킨 조상님네의 슬기가 속담 가득히 스며 있다. 4월 17일이 '지장재일', 23일이 '관음재일'이다.


음력3월의 기자속(祈子俗)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아들 낳기를 비는 '기자속'이 뿌리깊은데 특히 '삼짇날'로부터 '곡우날' 사이에 절을 찾거나 영험하다는 고목과 큰 바위에 치성을 올렸다.
요즘은 점차 사라져 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짇날 절에 가서 기도하면 자식을 얻는다 해서 예불하는 신도가 많았었다. 역시 없어진 풍속인데, 서울의 자하문 밖 부암동(付岩洞) 길가에는 기자암(祈子岩)이란 큰 바위가 있어 '비손'하는 아녀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었다.
아기를 원하는 부인이 이 바위를 찾아가 주먹만한 돌을 손에 쥐고, 자기 나이대로 바위를 비비며서 '비는 말씀'을 왼 후 손을 떼어서 돌이 바위에 붙으면 아들을 얻는다 했다. 이 곳을 찾는 부녀자가 하도 많아 기자암은 온통 곰보처럼 패어 있었는데 도로확장선에 걸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으뜸으로 꼽는 곡우차(穀雨茶)
우리 민족은 정이 많아서 음식이건 물건이건 별난 것이 생기면 이웃에 나누기를 좋아한다. 잔치와 명절에 음식을 나누는 '반기'가 바로 그것이요, '곡우'의 차와 '단오'의 부채가 다 그 등속에 속한다.
곡우가 되면서 봄기운을 담뿍 머금은 차잎이 흡사 참새 혀만 하게 파릇파릇 돋아난다. 이것을 정성으로 따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서 만든 것이 바로 '곡우차'이다. 일명 '작설차'로도 이르는 이 봄철의 첫 차는 차인(茶人)들 사이에 더 없는 선물이다. 특히 존경하는 선배에게 한 봉의 '곡우차'를 올림은 한 해를 시작하는 예도이기도 했다.
올 봄은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오늘에 이어 주신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지으신 『동다송(東茶頌)』을 머리맡에 함께 하였으면 싶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