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어떤 천벌이라도 달게 받아야지요”

자비의 손길

2007-09-14     관리자

어떤 운명을 타고 났기에 이다지도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 이기임(88세) 할머니와 아들 김장호(63세) 씨를 만나고 돌아오려는데, 안쓰러움에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김장호 씨는 6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기관차 조수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동료가 철로에서 불발탄 지뢰를 주워 장난을 치다가, 갑작스럽게 폭발하여 옆에 있던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후로 고생길은 눈에 안 봐도 훤하다. 어머니가 식모살이를 나가면 3살, 5살 터울인 두 동생은 김장호 씨 몫이었다. 15살 때부터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버스 차장으로 일했다. 열심히 돈을 벌어 동생들은 공부를 많이 시키고 싶었지만, 그 꿈은 23살 때 접어야만 했다. 결핵성 척추염으로 관절이 굳어버려 하체에 마비가 온 것이다. 그 이후로 김장호 씨는 다시는 두 발로 걷지 못하게 되었다.
“죽지 못해 근근이 버텨온 삶입니다. 한창 젊은 혈기에 몸을 못 쓰게 되니, 처음에는 세상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워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가장으로서 집안을 일으키지는 못할망정, 평생 버리지도 못할 무거운 짐이 되었어요.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편히 있어도 병이 나실 연세에 아직도 제 병수발을 들게 하니, 죽어서 어떤 천벌이라도 달게 받아야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장호 씨는 10년 전에 중풍이 와서, 왼팔마저 쓰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난 해 추석 때 중풍이 재발되어 병세가 더욱 심각해졌다. 오른팔만 감각이 있어 움직일 뿐 자신의 의지로는 일체 몸을 쓸 수가 없다. 하루 24시간 꼬박 침대에 누워 보낸다.
용변은 침대 밑을 뚫는 장치를 해서 해결하고, 목욕은 자원봉사 도우미들이 침대에 비닐을 깔고 시켜준다. 얼마 전 등에 욕창이 나서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기에, 틈틈이 몸을 들어주고 자세를 바꿔줘야 한다. 연로한 어머니가 가장 힘들어하시는 일이다.
이기임 할머니는 자연적인 노화현상으로, 현재 정신이 깜빡깜빡하며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신다. 8년 전 심근경색이 오고부터는 숨이 차서 할동도 제대로 못하신다. 할머니는 오래된 사진 속의 인물처럼, 움직임도 없이 계신 듯 안 계신 듯 조용하시다. 손을 잡아드리자 처음으로 말문을 떼신다. “내 손이 미워. 못 생겼어. 일제 때 공출하느라, 가마니를 많이 짜서 까칠해졌어. 많이 못 짜면 잡혀갔어.”
지난 해 2월, 전에 살던 서울 상계동의 집(전세 2,000만원)이 철거되고 재개발되면서 이곳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런데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탈 줄 모르는 할머니는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의 병수발을 들지 않을 때면, 문 밖에 의자를 놓고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앉아 계신다고 한다.
“밤이 문제예요. 몸이 견딜 수 없이 아플 때 어머니가 다리라도 좀 들어주셔야 합니다. 귀까지 어두우신데 주무시고 계시면 큰일이에요. 어머니를 큰소리로 불러야 합니다. 한바탕 소란을 피워야 어머니가 오세요. 그러니 이웃 주민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칩니다. 제발 잠 좀 자자구요. 제가 오죽하면 한밤중에 큰소리로 떠들어대겠습니까?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몸이 워낙 아프다보니….”
김장호 씨가 복받쳐오는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굵은 눈물을 흘린다. 할머니의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진다. 그만 일어나려고 하니, 할머니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신다. “더 놀다가. 또 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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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 씨가 누워있는 발 밑에는 전동휠체어가 있습니다. 중풍 재발로 쓰러지기 전까지 바깥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두 발이자,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김장호 씨는 “제 차예요. 저 놈을 타고 동네를 누빌 때가 좋았어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매일 바라보면서, 다시 저 차를 타고 다니는 꿈을 꾸게 됩니다.”라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치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병을 방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 해 이사오면서 1,000만원까지 대출받았으니 치료는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의 작은 정성과 관심으로 김장호 씨의 작은 희망이 꼭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사회에서 소외된 채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웃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저희 월간 「불광」에서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이웃을 소개하여 그들의 힘만으로는 버거운 고된 삶의 짐을 함께 하려 합니다. 주위에 무의탁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이웃 등 힘든 삶을 꾸려나가시는 분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고 그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후원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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