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교도소에서 온 편지

2007-09-14     관리자

삼보에 귀의하옵고, 무명(無明)으로 허황된 욕심에 사로잡혀 노력도 없이 일확천금을 좇아 악행으로 천만 가지 죄업을 짓고, 삼계의 고통 속에서도 탐·진·치 삼독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씻을 수 없는 너무도 큰 죄를 짓고 수인의 몸이 되어 십오척 담장 안에서 살아온 지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혼, 그리고 아버님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의 인연들과 단절된 채, 자책감으로 원망과 회한 속에 어리석은 지난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삶의 목적도 희망도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의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욕심에 여느 타종교보다 친숙한 불교를 선택하였습니다. 이곳을 도량으로 삼아 수행하라는 스님의 말씀을 따라 정근 염불과 참선 수행을 한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자신이 만든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변화이고 또한 자신을 변명하고 위안 받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자신의 죄업으로 고통 받은 사람을 위하여 참회하고 참괴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처님을 찾고 나만 위한 기도를 하는 이기심만 가득하였습니다. 인과법을 알지 못하고, 지금의 고통이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의 모습이 전생과 현생에서의 어리석은 습으로 지은 업인 것을 깨닫지 못한 채, 화택(火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새 마흔이라는 나이를 넘겨버렸습니다.
그러던 차에 미망에서 벗어나는 부처님법을 깨닫게 되는 인연을 얻게 되었습니다. 재소불자들 교리공부를 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오시는 우룡 스님을 처음 뵙게 되었는데, 업장소멸을 위하여 참회기도를 열심히 하라며 ‘자비도량참법’이라는 두꺼운 경전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공양물이나 많이 가져오시면 뱃속이나 든든하게 넣어가지 무겁게 읽지도 않고 짐만 되는 것을 주신다고, 참으로 어이없는 생각만 가득한 저에게 스님의 법문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였습니다.
다음 달 교리시간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여 스님과 함께 ‘자비도량참법’ 독송을 하는데, 혼자 멍청히 있기에는 민망하여 건성이지만 법우들을 따라 독송을 시작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합장한 두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일심이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순간 몸 속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오는 슬픔으로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깜짝 놀라, 법우들이 알면 창피한 마음에 얼른 눈물을 훔쳤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근원을 알 수 없이 생긴 감정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른 채 하루일과를 끝마쳤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인한 답답함에, 다시 ‘자비도량참법’을 꺼내 놓고 독송을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쑤셔왔지만, 매번 용두사미격인 제 성격에 대한 오기도 생기고 또 한편으로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없어 6시간에 걸친 독송을 끝냈습니다. 마지막 삼배를 하는 순간, 환희와 행복이 온몸 가득히 퍼지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 빛나는 한 줄기 빛처럼 미혹에 빠진 저에게 새로운 희망과 목표가 생겼습니다. 한량없는 부처님법을 배워 무명에서 벗어나 참된 삶의 살아가자는 서원을 세우고 매일 참회기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올라오는 욕심을 관찰하게 되면서 이곳이 진정한 도량이고 행복도 불행도 내 자신에 달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더 많은 부처님법을 배우고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고픈 욕심에,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공부를 할 수 없을까 궁리를 하던 중에,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월간 「불광」에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한량없는 부처님법을 위하여 문서포교와 법보시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애쓰시는 불광가족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가득하지만, 지금의 제 처지에서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불광의 무궁한 발전과 노력들이 불자들의 복전이 되기를 바라며….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