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여성의 절 나들이

삶의 여성학

2007-09-13     관리자

휴일을 맞아 사찰에 들릴 때면 어릴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갔던 즐거운 기억이 고향생각과 함께 떠오르곤 한다. 요즈음은 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서 먼 곳에 위치한 절에 가는 것이 쉬운 일이 되었지만 교통수단이 없던 당시에는 걸어서 갈 수밖에 없으므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절에 가는 일은 별러서 갈 수 있는 큰 일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가 절에 가시는 것도 일년에 몇 번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법회가 열렸던 것도 아니지만 설령 법회가 있다고 해도 거리 상으로 참석하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층층시하에서 집안 일에 매어 있는 며느리가 집나서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초파일이라든가 집안 일을 위해 마지를 올려야 할 일이 생가면 친척 아주머니와 함께 절에 갔었는데 당시 필자가 느낀 절과 관련된 느낌은 어머니를 따라 나설 수 있다는 설레임과 더불어 사람이 많이 모이고 음식도 푸짐한 잔치집 같은 즐거운 분위기였다. 이런 설레는 분위기는 어머니가 목욕재계하고 머리를 감는 것이라든지 떡을 찌고 쌀을 준비하고 제일 좋은 옷으로 곱게 차려 입고 하얀 고무신을 신고 서둘러 나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게 아닌가 한다.
여자들이 절에 가는 것은 집안을 위해 빌러 가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남자들이 제사 같은 공식적인 집안의 길흉사를 빌고, 양밥을 하는 일은 여자들의 몫이었고 삼신에게도 빌고, 조왕신에게도 빌고 때에 따라서는 천지신명에게도 빌고 하는 식으로 급하면 여자들이 집안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비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정성껏 비는 것은 여자의 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일도 아니고 절에 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떳떳하고 당연한 일을 하러 가는 것이었고 따라서 절 나들이는 엄격한 시집구조에서 며느리가 떳떳하게 외출을 허락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친정나들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에 집안의 평안을 빌러 가는 대임을 띠고 절에 가는 일은 어쩌면 종교적인 목적 외에 여성에게는 '나들이'의 의미가 더 컸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곱게 차려 입고 간섭 없이 자유롭게 집에서 해방되는 기회가 그렇게 자주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가족에서 보면 제사 같은 공식적인 의례는 남자들의 몫으로 으레 남자만이 참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집안에 병자가 생긴다든지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정성을 들이고 잘 되도록 비는 역할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여성들은 아들과 안전한 출산을 위해 삼신에게 빌고, 터줏대감에게, 또는 조왕신에게 집안의 길흉을 해결하고자 빌어 왔다.
여성들은 정초에도 초파일에도 절에 가서 가족을 위해 부처님께 빌어 왔고 그러한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입시 때가 되면 법당이 기도하는 입시생 어머니들로 가득 차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되는 일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교회나 절 등에 가는 것은 의심받지 않는 공인된 외출통로였다고 보여진다.
절에 간다고 하면 남편도 시어머니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집안을 위해 부처님께 빌러 간다는데 싫어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한국은 대종교 사회라고 하고 종교가 성하다고 한다. 종교의 신자 남녀구성비를 보면 여성들이 단연 우세하고 특히 불교에도 여자 신도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의 여성들이 유독 종교심이 깊은 탓일까? 아니면 옛날 어머니들이 숨통을 틀 자유가 있는 곳이 절 나들이였던 것처럼 현대에도 여성들이 자유로운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종교 쪽 밖에는 없는 것일까? 여성들의 가족생활이나 결혼생활을 둘러싼 가치관과 신화, 여성 억압적인 가족구조와 여성들의 절(교회) 나들이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직까지는 절에 가는 것에 '나들이'의 의미 역시 큰 것처럼 보이며 육체적 나들이보다는 정신적인 '나들이'의 의미가 꽤 크다는 생각이 든다. 절에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것보다 나들이에 뜻을 두는 여성신자가 많다면 여성들의 삶이 아직도 한에 눌려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 왠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