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스리랑카 2 사자바위 -시기리야

불국토 순례기, 남국의 보석 스리랑카

2007-09-13     관리자

수도 콜롬보에서 동북쪽 중앙부를 향해 약 160km, 고대 도시 아누라다푸라에서 동남쪽으로 90km 떨어진 곳에 큰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약 200m 높이의 우뚝 서 있는 바위산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시기리야(사자바위) 산이다. 스리랑카의 불교는 2,200년 이상 교육,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직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는 외람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오래 전부터 왕위 계승문제로 야기되어온 역사적 사실들은 슬프고 잘못된 부분이 있었더라도 지금에 와서는 재미있는 옛날 얘기일 수밖에 없다.

시기리야 하면 카사파 왕(King Kasyapa)의 얘기가 빠져선 안 될 것이다. 그의 부왕 다츠 세나 왕에게는 첩(천민)의 자식인 카사파와 정실 자식인 목갈란(Moggallan)이 있었는데 정실 카사파는 장남이었지만 왕위 계승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알면서도 자기가 왕으로서의 실력이 동생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항상 왕이 되기 위한 때를 노리고 있었다. 그 무렵 다츠 세나왕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군사령관이며, 왕의 동생인 미가라는 카사파의 야망을 알고 그를 부추기고 그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하여 카사파는 서기 477년에 왕이 되고 목갈란은 남인도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는데, 결국 카사파에게 붙잡혀 미가라에 의해 죽게 되었다. 이후부터 카사파는 부왕에 대한 고뇌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가 시기리야 산 위에 궁전을 세우려 했다는 얘기를 듣고 고승과 상의한 결과 그곳에 궁전을 짓기로 결심을 하였다. 위험한 바위산 꼭대기에 궁전을 짓게 된 것이다.

후회와 참회의 나날을 시기리야 산 궁전에서 보내고 있던 정신이상자이며, 예술가인 그는 왕이 되어 18년이 되던 서기 495년 남인도에 망명해 있던 목갈란의 군사가 밀어닥치자 바위산에 궁전만 남긴 채 자살하고 말았다.

바위산을 오르는 길은 시기리야 주차장에서 보통 걸음걸이로 약 10분. 바위산을 향해 가노라면 사자 발톱의 돌형상이 양쪽에 크게 내밀고 있다. 마치 바위산을 등에 지고 앉은 듯한 느낌을 주면서, 여기서부터 가파른 길 사이사이에 놓여진 계단을 밟고 약 1/3쯤 올라서게 되면 그 바위벽에 붙여 철재로 만들어진 보조계단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는데 벽에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춤추는 선녀들을 벽화로 그려 놓았다. 이것이 시기리야의 미인도이다. 당시에는 500명의 미인이 그려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 남아있는 그림은 귀걸이, 목걸이와 팔찌를 하고 과일과 꽃바구니 등을 들고 있는 10여 명의 미인만이 벽화로 부분부분 퇴색되고, 바위가 일부 조각난 채 남아 있다.

이곳을 지나 정상을 향해 2/3되는 지점에 제법 쉴 수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부터는 노약자 혹은 고소공포증과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이곳까지 올라 온 것으로 만족을 해야 하고 사자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위해선 한 손은 현지 안내원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바위를 더듬으며 올라가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 이윽고 꼭대기에 도달하게 되면 그동안 땀을 흘리며 올라 올 때의 살랑거리는 바람은 몸에 아무런 저항이 없었는데 그곳의 바람은 강하여 자연 몸을 숙이게 되기 마련이다.

시기리야 산꼭대기 남쪽 편에 있는 수영장은 어림잡아 20m×20m는 될 것 같으며, 궁성터는 궁전과 정원을 계단식으로 땅을 활용하여 넓게 사용하였던 것 같다. 통바위로 된 이 꼭대기에 흙이 있는 것은 아마 바위 아래 땅의 흙을 이곳으로 옮겼으리라 짐작된다. 다시 북서쪽으로 자리를 옮기니 웬 웅덩이가 있는데 이것은 카사파 왕이 술 저장 탱크로 사용했던 자리라고 한다. 캔디 시를 향한 남쪽 저편에는 여러 산들이 보이고, 서편 아래쪽에는 필자가 걸어 올라오기 시작한 계단이며 농지가 경비행기에서 본 것처럼 펼쳐져 있다. 또한 북동쪽 아래에는 정글이 보이고 있다.
당시 카사파 왕은 시기리야 산꼭대기에서 얼큰해진 술기운과 부왕을 죽인 괴로움과 두려움에 상인들과 농부들이 살고 있는 아래를 향해 아버지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미친 듯 소리 질렀을 것이다. 소리를 지른 후 마치 자기가 구름의 신이 된 양 껑충껑충 뛰어서 미녀들이 놀고 있는 수영장의 물에 첨벙 뛰어 들었을 것이다.

시기리야 산꼭대기까지 약 1시간 30분이면 왕복할 수 있는 이곳에 스리랑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연일 끊이지 않는 까닭은 미인도 벽화와 같이 예술이 생생히 남아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차 하면 떨어져 죽을 수 있고 당시로서는 맨몸으로 올라가기도 힘들었을 이곳에 생활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고승의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배지숙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