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佛心) 가득 찬 사랑의 둥지

불자가정 만들기, 수원 신현봉씨 가족

2007-09-13     관리자


여름이 아름다운 계절로 돌변한 까닭
따가운 햇살이 성난 불처럼 달아오르는 여름이다. 본격적인 무더위 속에 불쾌지수는 높아만 간다. 짐짓 짜증스러워지기 십상인 이 계절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가 있단다. 창 밖에 시원스레 펼쳐진 푸르른 바닷가에 사는 것도 아니고 빛바랜 도심 한복판에 살면서 여름을 예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려름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로 골변한 까닭, 그 한여름의 추억을 곱게 간직한 주인공은 신현볼(62세) 씨. 그이는 수원시 사대 관문 중의 하나인 서문(일명 화서문) 근처에 사랑의 둥지를 틀고 있다. 정확한 주소지는 수원시 장안구 장안동 106-2호 “아유, 취재는 무슨, 먼 길 오시느라 출출하실텐데 떡이나 좀 드세요.”
쑥향 그윽한 파아란 쑥떡에 진한 수정과를 내오는 손길과 눈길이 무척이나 따사롭다. 유난히 두툼해 보이는, 곩어진 손마디가 어찌 저리도 어여쁘게 보일까. 살림하랴, 일하랴(그이는 한복 속옷 만드는 제품일을 40여 년 동안 계속해서 해왔다), 손녀딸 봐주랴(둘째 아들과 함께 할고 있는데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 바쁜 와중에서도 손수 쑥을 캐서 떡을 빚고 수정과를 만드는 부지런함이 잔뜩 묻어나는 손마디가 진정 아름다워 보였다.
“작년에 화성 신흥사 여름 수련회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뿌듯하고 기뻐요. 다 부처님께서 저희를 잘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이이지요. 신흥사 성일 스님께도 말할 수 없이 감사하구 있어요. 정말 그때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그이는 그저 모든 것을 부처님 은덕으로 돌렸다. 작년에 70이 가까운 친정 언니와 큰아들 내외와 손녀딸, 안사돈, 사돈 총각 등 아홉 명의 대가족이 함께 여름 수련회에 참석한 일은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고 환희심이 차오른다.
“언니, 며느리, 안사돈과 한 방에서 같이 자고 먹으면서 2박3일을 보냈지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예불 드리고, 참선하고, 법문 듣고, 찬불가도 배우고…하루 종일 스님들과 똑같이 수행하는 빡빡한 일정인데도 불구하고 고된 줄을 몰랐어요. 기분이 날아갈 듯 하니 몸까지 아주 가뿐한 것 같았지요.”
그이는 여름수련회를 통해서 애틋한 가족애도 더욱 진하게 느꼈고 맑고 푸른 신심도 한결 굳건해졌다 한다. 수계식 때 왜 그리 눈물이 나왔는지 모른단다.
“스님 설법을 들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기뻐도 눈물이 나오고 슬퍼도 눈물이 나오고 저는 눈물이 흔해 탈이에요.”
그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또 눈시울을 적신다. 마흔 넷에 혼자 되어 갖은 고생 끝에 반듯하게 자식들 장성시킨 그이, 이러구러 부처님에 대한 애기는 하지 않았어도 자식들이 따라주는 게 그저 고맙다는 그이. 자식, 며느리, 손녀와 함께 부처님 도량에서 합장배례 하는구나 하고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라는 그이고 보면, 자식과 나란히 수계 받으면서 느낀 수계식 때의 감동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성일 스님께서 ‘참회를 하는 순간에 과거의 모든 조그마한 잘못이나 해묵은 업장이 모두 다 사라집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계율을 힘써 지키면 자비공덕 넘치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수련회를 회상하는 그이의 얼굴이 밝디 밝아 보인다. 가족과 함께 여름 수련회를 지낸 뒤부터 그이와 그이의 가족에게 여름은 손꼽아 기다려지는 아름다운 계절로 돌변해 버렸다. 여름은 이제 지하공장에서 재봉틀 돌리며 더위와 헉헉대며 싸움하는 인고의 계절이 아니라 여름 수련회를 또 한번 가질 수 있는 환희의 계절, 생명력 넘치는 원력의 계절이 된 것이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 꽃피운 신심
여름 수련회 얘기서부터 풀리기 시작한 이야기가 한 올 한 올 지난 세월 속에 꼭꼭 묻어 두었던 내밀한 사연들까지 풀어내었다.
“동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부처님 의지하며 한 평생 살았습니다. 그 모진 시집살이며…. 동생이나 나나 마흔 갓 넘어 혼자된 외로운 처지인지라 함께 절에 가고 함께 부처님 말씀 나누며 친구처럼 그렇게 서로 기대며 살았지요.”
그이의 언니 신복인 씨(68세)는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언니가 저를 부처님께로 이끌어 주셨어요. 언니 아니었으면, 부처님이 아니었으면 전 이미 어떻게 됐을는지도 몰라요.”
윤택한 가정에서 태어나 춘천 사범을 졸업하고 결혼 전에 교편생활을 했던 그이는 결혼과 함께 지독한 고생길로 접어들게 된다.
홀어머니와 3대 독자 외아들인 남편과 방 한 칸에서 함께 먹고 자는 신혼살림은 시작부터 불편하고 고달프기 그지 없었다. 시청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으로는 먹고 사는 것도 갑갑했던 그이는 언니 신복인 씨가 하던 제품일을 인수해서 갓 돌이 지난 아들을 들쳐 업고 밤낮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일보다도 더 고된 시집살이에 가슴은 멍을져 갔지만 내색조차 않았다. ‘내가 참으면 집안이 화평하지’하는 마음으로 시종일관 일했던 것이다. 17년간 지극정성, 조심조심 뫼시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이는 그 충격으로그만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밤새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병, 아는(?) 소리를 술술 내뱉는데다 빨간 색만 보면 목에서 피가 넘어오는 괴상한 병에 걸린 것이다.
병원에서 이모저모 진찰을 해봐도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정신과적 치료를 요하는 극도의 신경쇠약증상이라는 진단 아래 그이는 용인정신병원에 요양을 하러 가게 된다.
“그 때 언니가 건네준 『천수경』덕분에 살았지요. 정말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릅니다.『천수경』을 외워야 산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외웠습니다.『천수경』을 다 외우고 나자 신기하게 제 병이 다 나았습니다.”
천수경 독송의 신비한 공덕을 몸소 체험한 그이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불제자로 거듭 태어난다. 부처님의 가피력을 피부로 느낀 뒤 그이는 신심이 말할 수 없이 돈독해진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부처님 믿고 살았으니까 낙심하지 않고 여태까지 살았지, 안 그랬으면 아마 일찌감치 남편 따라 아들놈 따라 저 세상에 갔을 겁니다.”
그이는 또 한번 눈시울을 적셨다. 그이가 유독 눈물이 많은 것은 모든 일을 제 탓으로 여기는 선하디 선한 심성과 깊은 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무슨 업장이 이렇게 두터운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남편 앞세우고 자식 앞세운 심정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기 긒은 슬픔을 그이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달랬다. 모든 게 다 인연 따라 오고 인연 따라 가는 것, 남편과 자식과 그 정도의 인연밖에 되지 않아서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를 가장 먼저 설법하신 부처님의 그 자비하신 마음 씀씀이를 생각하면 슬픔이 절로 놓아진다. ‘집착하지 말지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부처님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읽으며 그이의 삶은 훨씬 농익어 간다.
“언제나 바쁜 몸이라 절에 자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래 생활이 기도거니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일하면서 염불하고 외운 경전을 옲조리곤 합니다.”
『천수경』『반야심경』『고왕경』등 웬만한 경전은 거의 다 외우고 있는 그이의 신심은 생활 속에서 절로 나툰다. 빈틈없이 일 잘하고 마음씨 좋은 이웃으로 참불자의 길을 가는 그이. 고통 속에 싹튼 믿음은 그이의 반듯한 삶 자체이다.


신심으로 하나된 둥지 속에 싹튼 행복
“관세음보살, 부처님. 엄마, 엄마도 같이 절하자.”
세 살 박이 손녀 딸 선희를 바라보며 마냥 행복해 하는 그이. 그이는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재단을 저녁에 미리 해두어야 이튿날 재봉사들이 일을 할 수 있다) 열 두 시가 다 되야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밤 늦게 경전 일고 다만 몇 십 배라도 드리면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 짓는다.
손녀딸 선희가 밤 늦게까지 자지 않고 그이를 따라 절을 하는 모습을 볼라치면 웬지 뭉클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제 어미까지 잡아끄는 어린 손녀딸의 기특함이라니 ‘할미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미소짓는다.
염주를 좋아하고 불경책 넘기기를 좋아하는 손녀 딸 선희는 그이보다 훨씬 훌륭한 포교사이다. 제 엄마 아빠가 깜짝 놀랄 정도로 할머니의 신심을 흉내내고 온 가족을 불심(佛心)으로 하나되기 하는 재롱을 떨기 때문이다.
선희를 바라보며 지난해 여름 수련회 때 받은 감동적인 추억을 되살리며 올 여름수련회는 더욱 값지고 귀하게 될 것이라고 그이는 믿는다. ‘작년에 함께 갔던 큰 아들 내외뿐만 아니라 작은 아들네도 올해는 꼭 여름수련회에 참석하였으면 하는 바람은 꼭 이루어질 것’이라며 그이는 은근히 행복감에 젖는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 같은 부처님 마음일세.”라는 경구가 그이의 등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있는 방안에서 그이는 오늘도 108염주를 돌린다. 지극정성 108배를 드리면서 사랑의 둥지 속에 끊임없이 믿음과 희망의 알을 낳고 있는 그이의 삶은 날마다 새롭고 기쁘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문미호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