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만행(菩薩萬行)

연재소설<35>,원 효 성 사

2007-09-13     관리자


뱀복이도 합장하고 함께 외웠다. 이렇게 삼편을 독송한 뒤 뱀복이는 원효를 일으킨다.
"이만하면 우리 어머니는 이고득락(離苦得樂)하셨겠군. 자 이제는 슬슬 가 볼까?"
뱁복이 어머니는 관에 넣어진 것이 아니라 잠자듯 누운 그대로였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 내 시중을 드시느라 무진 고생을 하셨으니 가시는 마당에는 내가 업어 모시고 가야겠어."
이렇게 말한 뱀복이는 자기 어머니를 마치 산사람을 대하듯.
"어머니 효대사 법문 다 들어셨지요? 이제 이만하면 경전 실어 나르던 공은 톡톡히 받은 셈이지요. 이제 다음 불사를 위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가셔서 잠시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 쉬십시다."
이렇게 말하고는 어머니를 일으켜 등에 업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은 뱀복이 어머니는 이레 전에 숨을 거뒀다기보다 마치 잠자는 사람처럼 팔다리며 온몸이 유연하였다. 사람은 숨을 거둔 지 두세시간만 지나면 사지로부터 몸이 굳어지기 시작하여 대여섯 시간 후면 딱딱한 나무개비 같이 되어 버린다. 원효는 맘속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뱀복이의 하는 짓을 잠잠히 지켜보고 있었다.
뱀복이는 자기 어머니를 업고 앞장서고 그 뒤에는 원효가 따랐으며 원효 뒤에는 뱀복이 부하들이 서열에 따라 줄을 이었다. 이 때 한 거지가 원효에게 요령을 바쳤다. 어디서 빌려왔는지 그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혀 있었다.
원효가 요령을 흔들며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선창하자 사백여명의 대중들은 그에 맞춰 일제히 나무 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부르는 소리는 어찌나 우렁차고 컷던지 온 천지에 가득한 듯하였다. 그렇잖아도 거지왕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문은 온 장안에 쫙 퍼져 있었는데다가 정작 장례 행렬이 이토록 이색적이고 거창하자 이를 구경하려고 모여드는 인파는 길의 좌우를 꽉 메웠다.
이 장례 일행은 어인 일인지 장안으로 들어서서 장안 대로를 걸어갔다.
원효는 본의 아니게 서라벌에 들어선 셈이다. 행렬은 왕궁의 동편에 있는 황룡사로 향하였다. 가섭여래의 연좌석을 연상한 원효는 뱀복이의 의중을 짐작할만하였다. 가섭불 시대에 경전을 실어 나르던 소가 바로 뱀복이의 어머니라 했으니 이 남염부제를 마지막 떠나는 어머니에게 그 연좌석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장안거리에 들어서자 앞서 가던 뱀복이는 몸을 돌려 원효에게 말했다.
"기왕 염불을 할 바에야 원효가 선창을 하오."
원효는 뱀복의 청에 순순히 응한다.먼저 요령을 찌렁찌렁 하게 흔들어 뒤따르는 대중들의 염불을 멈추게 하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부터 내가 선창을 할 터이니 여러분은 그에 따라 아미타불을 부르시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요령을 흔들며 선창을 했다.
"첩첩한 청산은 미타굴이요."
"나무아미타불."
"망망한 창해는 적멸궁일세."
"나무아미타불."
"물물(物物)을 잡아오되 걸림없거니."
"나무아미타불."
"학 머리붉은 것을 몇 번 보았나?"
"나무아미타불."
"극락당전 높이 뜬 만월의 얼굴."
"나무아미타불."
"옥호(玉毫)와 금색으로 허공 비추네."
"나무아미타불."
"일념으로 명호를 일컬으면은."
"나무아미타불."
"경각에 무량공(無量功)을 원성(圓成)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극락은 어드멘가 서방(西方)에 있네."
"나무아미타불."
"미타불 뉘시런가 법장비굴세."
"나무아미타불."
"마음에 일고 지는 생각을 쉬면."
"나무아미타불."
"여기가 극락이요, 내가 미탈세."
"나무아미타불."
원효의 선창도 구성지려니와 아미타불을 합장하는 거지떼의 우렁찬 음성도 여간 듣기 좋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서라벌에서 가장 넓은 중앙 대로를 지나가는 이색적인 장례 행렬은 서라벌 사람들의 충분한 구경거리였다.
이 때 장안의 각 절에서도 수많은 승려들이 거리로 나와서 이 장례 행렬을 다투어 구경하였는데 그 중에는 원효를 알아보는 이가 있어 손가락으로 원효를 가리키며, "저기 원효대사가 앞장서서 간다."
"앞에 가며 선창하는 이가 원효대사다."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비록 옷이 다르고 머리를 기르기는 하였지만 얼굴 모습만은 고칠 수 없는 것이므로 원효를 여러 번 대해 본 사람은 넉넉히 알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한번 원효의 이름이 불려지자 구경꾼들은 원효를 보기 위해 행렬의 뒤를 따르며 서로 앞서 가려고 붐비기 시작하였다. 장안의 백성들은 원효가 파계하였건 어쨌건 간에 원효를 존경하는 마음은 여전하였다.
"원효대사가 장례 행렬을 인도한다구?"
군중들은 이렇게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한 발이라도 남보다 앞으로 가서 원효를 제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싶어서 야단 법석을 떨었다. 이 바람에 장례행렬은 결국 군중들에 의해 에워싸여서 황룡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이제 오백여 보만 가면 황룡사 정문에 이르게 되겠는데 원효를 보려는 군중들은 길을 터주지 않는 것이었다. 황룡사 중들은 원효가 거지들의 장례 행렬에 앞장서 온다는 소문을 듣고 삼백여 명이 삽시간에 뛰어나와 행렬을 향해 달려 왔고, 분황사 승려들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황룡사 승려들은,
"파계승 원효를 몰아내라."
"승려 위신 떨어뜨린 원효를 잡아라."
"원효를 죽여라. 파계승 없애자."
이렇게 엉뚱하게 원효를 규탄하고 들었다. 그러나 분황사 승려들은,
"어떤 자가 원효스님을 욕하느냐?"
"원효스님을 욕하는 놈부터 족쳐라."
이렇게 응수하며 원효를 비호하였다. 이렇게 되자 황룡사 승려들을 편드는측과 분황사 승려들을 옹호하는 측으로 양분이 되어 설전을 벌이게 되었다.
바로 이 무렵 상감은 유신공과 마주앉아 국사를 논의하고 있다가 거리가 소란한 것을 알고 궁을 지키는 호위대장을 불러 진상을 하문한다.
"만선리에 사는 거지떼 두령인 뱀복이의 어미가 죽었사와 장례를 지내는 모양이온데 이를 구경하려 나온 백성들과 스님들이 소란을 피운다 하옵니다."
"과인이 듣기로는 뱀복이는 의인(義人)이요,덕인(德人)이라던데 어이하여 백성들은 소란을 부릴꼬?"
"뱀복이 때문니 아니옵고... ."
호위대장은 차마 원효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원효는 상감의 부마인만큼 혹시 상감이 원효가 끼어 있다는 말을 듣고 진노하지나 않을까 해서다.
"뱀복이 때문이 아니라면?"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속히 아뢰어라. 왜 꾸물거리는 거냐?"
상감의 언성은 높았다.
"장례 행렬을 원효대사가 주도한다고 하옵니다."
"무엇이? 원효대사가?"
"예, 원효대사가 선창 염불을 하면 거지떼들이 일제히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하옵는데... ."
"그래서?"
상감의 재촉은 성화 같았다.
"원효대사를 평소 시기하던 황룡사 스님들이 달려와서 원효대사를 욕하옵기로 이에 응수하는 분황사 스님들과 살벌하게 맞서서 설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 하옵니다."
상감은 유신공에게 몸을 돌려
"장군이 어인 일이요? 원효대사는지금 광주땅에 계시다더니 거지떼와 어울려 있다니요?"
유신공의 얼굴도 의외의 소식에 상기되어 이었다.
"글쎄요. 처음 듣는 얘기요."
"대사를 호위하는 자들은 다 무엇을 하기에 아무런 연락도 없는거요?"
"여지껏 그래본 일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오."
"유신공의 정보망과 조직망이 오늘 처럼 실수를 범한 일은 여지껏 없었다."
"원효대사와 뱀복이가 구면이 있는 모양이군."
상감은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는 "장군, 장군이 군사를 지휘하고 나가서 스님들이나 군중들을 해산시키시오."
"예, 그렇게 하지요."
유신공은 곧 장안의 경비를 맡고 있는 부하 장수를 불러 출동을 명하고 자신도 말을 타고 안압지 쪽으로 달려갔다. 유신공 일행의 기마병 이백여 명의 장례행렬 가까이 다가갔을 적에는 뱀복이가 부하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내 일찍이 너희 승려들하고 의를 상하여 본 적이 없으므로 되도록 입을 다물려고 하였는데 너희가 우리 어머님 장례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대화엄종주를 마구 비방하므로 하는 수없이 고언(苦言)을 주는 바이니 자세히 듣거라." 뱀복이의 음성은 찌렁찌렁 하게 울리는데 그 음성 속에는 날카로운 예지와 무서운 설득력이 깃들어 있어서 장내는 금방 조용해졌다.
"황룡사 중들은 듣거라. 중노릇을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함이냐? 나라와 스승과 백성을 위하여 중노릇 하노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중이 있다면 손을 들어라."
중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너희는 너희 일신의 안일을 위하여 나라의 녹과 단월의 시주물을 축내면서 남을 헐뜯고 죽여라 죽여라 하느냐? 원효대사를 왜 미워하며 못살게 구는 거냐? 문수대성을 친견하였노라 하여 아만을 한껏 부리는 상(相)덩어리 자장을 위하여 원효대사를 미워하느냐?
하지만 너희 중에 원효대사의 얼굴에 침 뱉을 만한 법력이 있거든 한번 침을 뱉어 보아라.
그래 중노릇 한다는 것이 궁궐 못지 않은 기와집에 앉아서 아만과 시기 질투를 부리는 것이 고작이어서야 언제 성불할 것이며 미몽(迷夢)에 빠져 허덕이는 중생은 누가 제도할 것이냐? 자기 자신을 성찰할 줄 모르고 중생을 외면하는 중이 과연 중이란 말이냐? 시주 은혜가 무거운 줄 알거든 얼굴 붉힐 줄이나 알아야 함이려든 너희는 얼굴에 쇠가죽을 쓴 놈들이구나.
상감께서는 인자하셔서 너희 같은 철면피들 그냥 보아 주시지만 나는 오늘 너희놈을 곱게 보낼 수 없느니라.
너희가 알다시피 우리는 인간의 맨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거지떼들이다.
이 한 목숨 죽는 것을 아까워 할 우리가 아닌 만큼 너희한테 실력이 모자라 설혹 죽는다 하여도 한스러울 것이 없느니라. 자, 우리 군사는사백여 명이다.지옥이 그토록 원이거든 우리가 보내주마."
뱀복이는 이렇게 외치고 나서 부하들에게 돌아보며 "오늘 우리 어머니 한 분만 왕생극락하시는가 했더니 동행자가 늘어날 것 같구나. 너희는 평소에 닦은 실력을 발휘하여 저 몽매한 황룡사 마군이들을 제도하자꾸나. 너희가 짚고 있는 막대를 검으로 사용하여 저 마군이들을 때려 누이자."
이렇게 크게 외치니 부하들은 '와-'하고 함성을 질러 답하고는 빠른 동작으로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황룡사 중들을 에워싸는 것이었다. -계속-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원각심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