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 시절 --

재가의 선수행,오늘의 나

2007-09-13     관리자

 
앞으로의 불교개혁에 관해 도움이 될까하는 바람으로 지난 조계종 사태에대해 몇마디 하고 다시 '오늘의 나'를 다루기로 하겠다.

세간과 출세간
우리는 얼핏 피상적으로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구별을 단순히 재가((在家)와 승가(僧家)로 나누어 버리는 경향이 있으나 잘 따져보면 재가는 세간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으며 승가는 출세간의 성향이 강할 뿐이다. 물론 이런 경향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이렇게 유지될때 청정한 승가는 신심있는 재가의 외호를 받으며 힘차게 중생제도를위해 발벗고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라고 이를 위해 누군가 구심점이 필요하기 떄문에 총무원과 같은 집행부가 필요한 것이지 황금을 모으고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조계종단의 구심점이 되는 총무원 집행부가 그동안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세간의 성향을 강하게 띠다 못해 앞질러가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급기야는 오늘날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로 큰 스님들의 결연한 의지에 힘입어 이 정도에서 사태가 수습된 것은 불행중 다행이 아닐 수 없으며 또한 동시에 이제부터라도 모두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승가는 스스로 충분히 본래의 청정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일이라 생각된다.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관찰 결과가 있다. 한 학자가 개미의 집단을 관찰하면서 일 잘하는 개미와 게으른 개미로 다시 그 집단을 나누어 보았더니, 일 잘하는 개미 가운데에서 다시 일 잘하는 개미와 게으른 개미로 나누어지고, 게으른 개미 집단 가운데에서도 역시 일 잘하는 개미와 게으른 개미로 나누어지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재가 자체도 세간의 경향과 출세간의 성향이 있으며 승가 자체도 출세간과 세간의 경향이 있다.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서 볼 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보더라도 문제를 일으켰던 승가의 스님보다 재가수행자 가운데에 더 출세간적인 분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단순히 편을 가르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수행만 하시던 스님들이 바른 뜻을 가지고 중생제도를 위해 승가의 구심점인 총무원 집행부의 일원이 되었을 때 아무래도 세간의 일과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이때 세간의 경향이 강하고 이권에만 눈이 어두워 스님들을 이용하려드는 못된 재가인이 아니라, 세간의 경험이 풍부하면서도 출세간의 성향이 강한 재가수행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승가가 그 뜻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모든 일은 무난히 이루어지리라 생각된다.
사실 피상적인 제도의 개혁보다는 기존의 틀 안에서 바른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는 그 자세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정말 문제가있는 제도라면 대중의 뜻을 모아 개혁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조계종의 종헌과 종법을 잘은 모르지만 보기를 들어 총무원장에게 모든 교구본사의 주지를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했을 때 총무원장이 사심없이 각 교구 본사에 "현 주지스님의 임기가 끝나가오니 교구 본말사 모든 스님들의 뜻을 모아 바르게 주지직을 수행할 훌륭한 스님을 언제까지 천거해 주십시오."라는 공문을 보낸다면 훌륭한 스님들이 다 교구본사의 주지가되실 것이다.
또한 이분들은 각 지역구에 해당하는 덕망있는 종회의원을 선출하고,총무원장에 의해 직접 임명되는 전국구에 해당하는 각 분야에서 실무능력을 고루 갖춘 종회의원에 의해 구성된 조계종 종회는 원로 대덕 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불교계의 모든 현안들을 화합의 정신 속에서 잘 처리해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이렇게 구성된 종회는 현 총무원장의 임기가 끝나갈 때 자연스럽게 수행이 깊고 사심없는 스님을 차기 총무원장으로 모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종단은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물론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종교계는 정치판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종교계의 참모습을 하루 빨리 되찾아야 할 것이다.

보직(補職)과 나의 견해
나는 작년3월부터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학과장(대학교의 맨 말단 보직)을 맡아오고 있는데,그전까지는 나에게 주어진 강의를 철저히 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주로 연구에 모든 시간을 다 썼으나 학과장이 된 후로는 학교 당국, 학과 교수 및 학생들과의 관계가 빈번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만남을 통해 개선점뿐만 아니라 애로사항도 많이 접하게 되었으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점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그동안 나도 책무를 게을리하면서 너무 요구만 해온 것이 아닌가 하고 크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나의 연구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따라서 1년쯤 지나면서부터는 학과장일을 맡은 이상 직무에 충실하면서도 좀더 틈을내어 연구에도 소홀히 하지 않게 애쓰려 하고 있다.
또한 마음 한 구석으로는 임기가 2년이고 대개 연임을 하는 것이 관례이나 이제 1년만 지나면 연임을 하지않고 다시 예전처럼,그러나 상대방도 보다 폭 넓게 이해하면서 물리학자로서 동시에 재가수행자로서 보다 철저히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한다.
승가의 주지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수행하시던 스님들이 기회가 되면 주지직도 한번 맡아보시면서 대중스님들과 재가신도들의 애로사항을 관리자의 입장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이 분들의 원하는 바를 정말 여법(如法)하게 실천하려고 애쓰다가 임기를 마치면 직책에 연연하지 않고 출가 정신에 입각하여 다시 본래의 청정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되돌아 간다면 수행의 참뜻도 더욱 깊어지리라 확신한다.

오늘의 나 ∏

참선을 통해 나의 삶의 참뜻과 학문을하는 뚜렷한 목적을 바르게 세운 뒤 1978년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였고 1980년 석사과정을 마치면서 나는 워낙 눈이 나빠서 신체검사에서 병역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바로 박사과정에 입학을 하였다.
이 과정은 얼핏보면 인생에 있어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3년(군복무 기간)을 앞당긴 것이나 나는 지금도 내 스스로에게 내가 남보다 3년 모든 면에서 앞서가며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자만하지않고 남과 더불어 함께하는 삶을 3년 앞당기는 것이다 라고 다짐하며 살고있다.
박사과정 입학 첫 해인 1980년 4월, 한국물리학회 정기총회 연구분과에서 처음으로 연구논문을 발표하였고(그동안 키워온 아랫배의 힘 덕분에 여러 중진물리학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연구논문 발표를 끝냄) 1982년 1월 미국 물리학회지에 처음으로 연구논문을 게제하였다.
그리고는 국제학술지에 모두 5편의 논문을 게제하고 무난히 1983년 2월 졸업하였다.
그런데 연구를 하는 동안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이것이 화두가 되어 깨어있는 동안뿐만이 아니고 잠자는 동안에도 이것과 씨름하게 되었고 어떤 때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문제가 풀리기도 하였는데 이런 때의 기쁨은 천금만금과도 바꿀수 없는 그런 기쁨이었고 곧 별 어려움없이 연구논문을 국제학술지에 싣곤 하였다.
물론 돌이켜 보면 학문적으로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은사교수님들의 꾸준한 가르침과 지금은 여러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고 계신 선배 및 후배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밝혀둘 것은 나의 이런 학문적인 성취는 내가 똑똑해서라기보다는 참선을 통해(물론 이것이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길러진 아랫배의 힘을 가지고 연구를 하다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들을 화두를 뚫어내듯이 투과하였다.
또한 참선을 통해 길러진 부드러운 심성으로 인해 원만한 인간관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기에 여러 사람들과 지속적인 공동연구가 가능했을 것도 사실이라 확신한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원각심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