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형상으로 표현된 붓다 Ⅱ

내가 본 불교미술

2007-09-13     관리자


간지스 강과 야무나 강 유역
서력 기원이 시작될 무렵에 날로 팽창되어 가는 불교 공동체 안에서 어떤 집단들이 그들의 존경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그들의 임금의 신인 동형의 표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고고학적인 증거에 의하면 신들과 위대한 인간들을 사람의 형상으로 숭배하는 것이 브라만교와 자인교에서 동시에 발전한 것 같이 보인다.
벌써 수백 년 동안 나무의 정령(남성인 약사와 여성인 약사미)과 물의 정령과 다른 지방의 신들의 예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도상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호적이고 부차적인 신으로서 그것을 예배하는 것은 아주 옛날부터 불교도들이 스투파 숭배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지역 신으로서 어떤 고급 종교도 그들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러한 그들의 종교의 영향 하에서 시바와 바수데바와 같은 힌두교의 고급신들을 예배하는 것이 기원전 2세기에 가서 유행하게 되었을 것이다. 석가모니불과 마하비라 지나상을 만들고 예배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동일한 문화적 배경, 즉 광범위하게 퍼진 고급 개인신에 대한 예배에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장인이나 장인들의 집단이 부처님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처음 받았을 때 그 지방에서 유용할 수 있는 전통적인 자료를 이용해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초기의 불상들이 가장 많이 발견된곳은 마투라와 그 인근 지역이았고, 또 이러한 증거를 근거로 해서 보다 넓은 쿠나사 제국의 동쪽 지방인이 도시 국가가 불상을 인간의 형상으로 만든 최초의 창조적인 중심지의 하나로 간주되게 되었다.
이 지방에서 석공들은 두 가지 주요전통을 원용했는데 그 첫번째는 신이거나 왕이거나 간에 초인간적인 형상을 만든 그들 자신의 경험이었고, 두번째는 석가모니 붓다로서 그리고 '초 인간'으로서의 특수한 성격에 관한 문학 전통에 보여준 암시를 원용했을 것이다.
이미 형상이 만들어졌던 가장 중요한 지방 신들은 약사와 약사미였던 것같이 보인다. 그들의 예배는 간지스강과 야무나 강 유역 전체와 중부 인도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신들의 인기는 바루트와 산치 스투파에 있는 부조에 편재해 있고 또 불경 자체에 보존되어 있는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것에 의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신들은 각자가 그의 또는 그녀의 지방 이름과 거처를 가지고 있고 또 초인간적인 크기와 힘을 가지고 있어 때로는 자비롭고 또 때로는 심술 궂지만 개인이나 공동체의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들은 이승의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이들은 입체적인 이 세상의 사람들처럼 표현되었다.
이러한 지방 신들의 많은 입상과 좌상들이 마투라와 파트나 지방에서 발견되었다.
구왈리오에서 출토된 약사 마니바드라 상의 좌대에 새겨진 명문은 이 신상들이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또 이들을 믿는 사람들을 박크다스(헌신적인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장인들은 등신대보다 더 큰 상들을 초인간적인 비율의 크기와 거대한 지상의 힘의 인상을 주는 상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형태가 아주 둥근 전면상으로 만들어 졌다. 마투라 지역에는 또한 쿠사나 제국의 황제들의 초상 조각이 남아 있다.
이들은 약사의 상과 동일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조각상들은 약사상과 동일한 발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거대한 이 세상 사람의 인상을 준다. 명문에 의해서 이름이 밝혀진 가장 유명한 작품은 용왕좌에 앉아 있는 위마카드피세스의 상과 입상인 카니스카황제의 상이다.
이렇게 해서 마투라의 불교 공동체 구성원들이 돌을 가지고 처음으로 불상을 마들기를 원했을 때 그들은 지방의 신들과 왕들의 초상을 만들었던 동일한 장인들에게 그 일을 주문했다.
붓다는 최고의 종교적인 의미로 하늘의 임금이자 세계의 지배자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초기 불상은 그들이 전에 만들었던 다른 '하늘의 임금들'의 상과 분명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들은 실제적인 붓다의 인간의 형상이 없던 초기 스투파를 장식하던 많은 남녀 신들과 귀신들과 신상에 그려져 있는바와 같이 다양한 인간과 신상을 제작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인들은 붓다의 특수한 형상을 다른 형상으로부터 분명하게 구별짓게 만드는 충분한 성격을 석가모니불에 관한 확립된 구전과 전통에서 찾아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붓다는 종교적인 지도자로서 몸에 착달라 붙는 종교적인 의복을 입고 오른손에 자유롭게 내리고 있는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아주 초기의 불상에는 승려에 알맞게 머리를 짧게 밀었으나 때로는 나선형의 우스니사(육계)가 있었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종교적인 진리를 찾기 위해서 그의 궁전에서 도망나와 숲속으로 들어가서 보석으로 장식한 머리를 위로 따올려서 머리를 잘랐다는 경전의 설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는 원형으로 자유롭게 서 있거나 언제나 앞을 보고 깊게 판 부조로, 아니면 결과부좌하거나 뒤에 가서 전통이 된 연화좌 위에 앉아 있다. 그러나 이들 초기 마투라 불상에서는 연화좌에 앉아 있지 않고 사자좌에 앉아 있고 서 있을 때는 그의 두 다리 사이에 앉아 있는 사자가 한 마리 있다. 이것은 그의 '사카 족의 사자'라는 유명한 칭호에 관계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의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그려져 있는 법륜(法輪)이다. 경전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세계의 지배자로서 이런 상호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의 일생을 잘 알고 있는 승려들은 불상의 제작을 의뢰했을 때 그가 한때는 왕자였으니까 그가 옛날에 무거운 귀금속 귀걸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래로 축늘어진 귓볼을 가지고 표시하게 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긴 깃볼이 붓다의 특징적인 도상의 하나가 되었다.
예술적인 전통이 문헌적인 전통을 반대해서 간다라에서 만들어진 그런 종류의 불상과 일치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후기 마투라 불상들은 아주 특수한 유형이기는 하지만 짧은 곱슬머리를 가졌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원각심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