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도 부처님을 모르겠네…

나의 인연이야기

2007-09-13     관리자

글· 이은종

초하루 법회인 것으로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타고 대전시민회관 앞에 도착하여 공주 마곡사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이 드신 어머니께서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 하나 못 들어 줄 것이냐?’하고 어찌나 졸라대시던지, 나는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남자는 오직 나 혼자뿐, 유일한 청일점이었다. 마곡사에 도착하여 장년이 된 자식이 어머니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 모습이 마치 송아지가 어미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떤 스님께서 어머니께 다가서며 “아드님 잘 계세요?” 하고 말을 건넨다. 필경 무슨 말을 하였기에 저 스님이 아들의 안부를 묻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어머니가 뒤를 돌아보시며 “여기 우리 아들이라오.” 하자, 스님께서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여 얼떨결에 답례를 했다. 그리고 몇 발작 앞서 가시더니 발길을 돌려 “여기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를 갔다가 오시며, 한 권의 책을 내 손에 들려주시면서, “이 책을 통해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스님께서 “이 책은 아무나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열반하신 성철스님께서 삼천 배를 해야 내리는 책인데, 처사님은 능히 실천하리라 믿고 주는 것이니, 아침마다 독송하고, 108배를 하면서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물론 내용을 알 리가 없었다. 아니 지금도 그 내용이 무슨 뜻이며 어떤 진리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그날 이후 새벽이면 일어나 독송하고 절을 했다. 이제야 그 경전 『예불대참회문』의 뒤를 열어 보니 2002년 1월3일 ‘지장(知藏)’ 스님으로 적혀 있다.

18년의 군(軍)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부딪치는 일 앞에서 내 한 몸이 서있을 곳이 없었다. 이 사회의 시장경제논리와 내가 추구했던 가치관의 혼동으로 꿈속을 해매며 좌절해 쓰러졌다. 게다가 집안에 몰아닥친 풍파는 빚더미에 올라앉고, 전 재산이 법원에 경매처분으로 집행관들이 경매딱지를 붙이려고 집으로 들이닥칠 때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쓰러지셨다.

‘이씨 집안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니, 오직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 하나 믿고 평생 홀로 살아오신 강한 정신력인지, 아니면 아침저녁으로 지극정성을 통해 얻은 기도력인지는 몰라도 자식을 일으켜주는 커다란 역할을 하셨다. 또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영원한 자유의 길』이라는 책을 내 손에 들려주셨다. 책장을 넘겨보니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었으며, 나에게도 누군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0대에 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장교의 길을 걸으며, 수계를 받고 지혜(智慧)라는 법명을 받았으나,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40대에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돌아와 좌절하고 있을 때 연로한 당신보다 아들이 세상을 먼저 등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한 맺힌 세월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여 80여 생을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그러기를 얼마간 하시더니, 어머니는 ‘이 사회생활에서 지쳤다면, 이 사회를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시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다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한없이 걸어 이른 곳은 어느 조용한 산사였다. 마애불상 앞에 나를 무릎 꿇게 하시고, 기도하시길

“나의 아들이 국가에 봉사하고 이제 가정과 어미 품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좌절하여 마음 놓고 편히 쉴 곳이 없어 함께 왔습니다.”

어머니는 구부려지지도 않는 다리를 이끌고 절을 하고, 쓰러지길 몇 번이나 하셨다. 그럴 때마다 다시 땅을 짚고 일어서며 간절히 소원하길,

“아직도 사십대이니 충분히 부처님 일을 받들 수 있습니다. 평소 어질고 착해서 남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 착한 심성인데, 이렇게 크고 엄한 벌을 주시나이까? 이제 이 늙은 어미의 마지막 소원이오니, 이 아들을 일으켜 세워주세요. 그리고 저를 먼저 데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러시면서 계속 수많은 절을 하고 소원을 비시었다. 그러길 반나절. 저녁노을에 비친 어머니의 백발과 주름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반짝이며 하나 둘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젊은 내가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후 일반직장에 입사하여 불교모임에 참여했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자 검은 구름은 사라지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아들들이 안정을 찾았다. 아, 나는 언제 어느 때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어머니의 고마움을 새기게 되려나. 아직도 그걸 몰라 새벽마다 지장 스님께서 일러준 대로 108참회문을 놓고 무릎을 꿇으며 불보살에 대한 고마움에 감읍하고 있다.

이은종 님은 1979년 육군 3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 육군대학, 한국방송통신대학,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6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하였으며, 2005년 대전MBC 비상계획관으로 퇴사하였다. 2001-2005년 전국동계체육대회 일반부 (10,000M) 각각 은, 동메달, 2005년 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스케이팅대회(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현재 전주에서 김밥집 운영하고 있으며 대전불교언론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바람을 가르는 사람들(스피드스케이트와 쇼트트랙의 첫걸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