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불자의 선(禪)수행을 위하여 Ⅷ

재가의 선수행

2007-09-12     관리자

이번 호부터는 「선(禪)속에 약동하는 인생」편으로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어떻게 선 수행을 제대로 수행해 갈 수 있는지를 다루기로 하겠다.
먼저 일상생활 자체가 바로 도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그 다음으로 요즈음 자가용이 일반적인 교통수단의 하나가 되어 누구나가 손쉽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차(車)와 더불어 길을 달리면서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값진 선 수행을 할 수가 있으며(사실 운전 그 자체가 이미 선 수행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도(道)의 경지에도 다다를 수가 있다는 점을 밝힌다.
끝으로 삶과 자신의 전문분야와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 역시 선 수행이라는 것을 작은 선적(禪的)체험을 바탕으로 설명하기로 하겠다.

하루하루 살아감이 바로 도(平常心是道)
일상생활 자체가 따지고 보면 도(도) 아닌 것이 없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고! 그러나 철저히 수행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같은 것 같으나 속은 하늘과 땅 차이다.
수행한 사람은 밥 먹을 때 열심히 밥 먹는 것에 몰두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온갖 번뇌 망상에 밥맛이 제대로 날 리가 없다.
먹는 이야기가 나와서 한 가지만 말하겠다. 몇 년 전 세계 어린이 그림대회에서 '저녁식사'를 주제로 그리라고 했는데 일본 어린이는 침울한 분위기에서 혼자 식탁에 앉아 밖에서 사온 것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그렸고, 미국 어린이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저녁을 먹는 그런 모습을 그렸다. 우리나라도 여러 면을 비교해 보면 항상 십여 년 뒤에는 일본과 비슷하게 되어 가는 것으로 보아 심각하게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행복한 가정이 있어야 행복한 나라가 있게 될 것이니까!
그런데 수행이라고 하니까 수행으로 알지 모르나 정말 목숨걸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수행인(修行人)인 것이다.
영국의 수상을 지냈던 처칠에게 누가 건강의 비결을 물으니 자기는 식사 할 때는 일체 정치에 관한 생각은 안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밥을 먹었을 때는 열심히 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비단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는 모든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철저했을 것이며, 이런 생활태도 가운데 수행은 무르익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죽을 때 '다시 태어나도 걸어온 길을 다시 걷고 싶다.!'고 자신 있게 외쳤던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꾸준히 수행하면서 하루하루를 철저히 시간을 부리며 살아보려고 애써 보라.
세상을 떠나는 날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차[車]와 몸[身]
찬찬히 생각해 보면 차(차)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다. 따라서 겉에 드러나 있는 차 껍데기를 아무리 빛이 번쩍번쩍 나게 닦는 것만으로는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길을 떠나기 전에 차체의 뚜껑을 열고 엔진오일, 냉각수 및 기타 여러 가지 정비사항들을 철저히 점검하고 난 후 유리창도 깨끗이 닦고 차 껍데기도 남이 보기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정도로 깨끗이 닦은 후 떠나면 되는 것이지 그 외에 신경을 쓸 일은 없다고 생각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각자가 세운 인생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무리 없이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단지 삶의 참 의미를 깨닫고 나름대로의 뜻 있는 삶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건강한 몸을 지탱하며 때때로 병에 걸리면 병든 몸을 쉬면서 다시 활기차게 앞으로 걸어갈 준비를 하면 그만인 것이다.
몸에 걸친 옷들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비어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차는 길을 가는 도중 반드시 사고를 내게 마련이며 때때로 완전히 일그러져 그 자리에서 폐차가 되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가끔 보아 온다.
이처럼 속이 비어있는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영위하다가 언젠가는 사회를 경악케 하는 큰일을 저지르기도 하며 자기의 삶을 헛되이 끝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말 온 마음을 다 써야 할 일은 더불어 함께 참나를 찾는 일이다. 몸을 위해 쓰는 마음은 그저 차를 정비하듯이 별탈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한 것이다.
몸이 정상적이면서도 필요이상으로 장생술은 익힌다거나 보약을 먹어 몸을 아무리 튼튼히 한다고 하여도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에 (보다 오래 살면서 보다 많은 불우이웃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면 모르겠으나) 이런 일은 다 부질없는 일인 것이다.

차의 뒷 거울과 삶의 되돌아봄
내가 차를 운전하기 시작한 지 올해로 벌써 구 년이 지났다. 다행히 다른 사고는 없었으나 굽은 길을 돌자마자 있는 신호등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뒷 차가 그대로 달려와 차 뒤를 받은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로 인해 경추부염좌라는 진단으로 3주간 병원을 다니면서 물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잡념 없이 앞을 똑바로 쳐다보며 가면 이런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다른 데 정신을 쓰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사고 후 나는 정지할 때는 앞차와 거리를 넉넉하게 유지하면서 눈은 차의 뒷거울을 쳐다보며 난폭하게 달려오는 차가 눈에 들어오면 즉시 비상등을 켜서 속도를 줄이라는 신호를 보내곤 한다.
그러면 다른 데 정신을 쓰던 사람도 이런 상황/즘은 곧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조심 때문에 돌이켜보면 몇 번인가 똑같은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를 뻔한 경우들이 무사히 넘어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이런 사고의 현장을 목격할 때가 있는데 이때마다 나의 사고 경험을 되새기면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곤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각자 나름대로의 삶의 뜻을 세우고 열심히 앞을 보고 살아가지만 그로 인해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이 생겨난다.
한 보기를 들어 보면, 미국으로 이민간 부부가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돈을 벌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을 돌볼 여가도 별로 없고 해서 아이들은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점차 나쁜 길로 접어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다 드디어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후에야 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고 땅을 치며 통탄했으나 이미 돌이 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미리미리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어려움을 함께 이야기 했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라.
따라서 살아가는 순간순간 열심히 앞을 보며 애써야 하겠지만 동시에 뒤도 열심히 돌아보면서 살아온 삶의 잘된 점과 고쳐야 할 점들을 냉철히 살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삶의 태도를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참고로 『벽암록』 8칙에 다음과 같은 재미나는 이야기가 있다.
취암 스님이 하안거(夏安居)를 마치고 해제일(解制日)이 되자 (그동안의 언행에 대해 뒤가 켕기는지 . 물론 한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인 죄로 인해 산채로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구나! 라고 외치셨던 성철 노사의 열반송과는 하늘과 땅차이가 나지만)대중들에게 "그동안 내가 부처니 조사(祖師)가 어떠니 하며 대중을 위해 떠들었으나,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아직 내 눈썹이 제대로 붙어 있는가?"하고 말했다.
그러자 보복 스님은 "도둑이 제발 저렸군!" 하였고 장정스님은"(눈썹이 붙어 있는 정도가 아니고) 길게 늘어져 있군!" 하였으며, 운문 스님은 "관(關)!" 즉 "(함정이 있으니) 조심하라!"라고 우주가 떠나가도록 외쳤다.
그래서 나는 차를 타고 가다 비상등을 켤 일이 생기면(사실은 비단 운전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거나 내 자신이 나태해질 때마다) '관('하고 마음 속으로 크게 외치곤 한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황윤정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