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에 열광하는 아이

부모님을 위한 청소년 상담

2007-09-12     관리자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 어느 시기인들 어렵지 않겠느냐마는 아이들이 사춘기일 때만큼 알 수 없고 힘든 때도 없을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사춘기 청소년기를 '폭풍과 스트레스의 식'라고 한다. 이는 청소년들의 격렬한 내적 격동과 갈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전에는 귀엽고 부모 밀도 잘 듣고 말도 잘하던 아이가 갑자기 부모와 상대도 하지 않으려 하고, 부모가 하는 말을 잔소리나 참견으로만 여겨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며, 신체적으로도 어른과 똑같거나 그 이상으로 커버려 괜히 섣불리 건드렸다간 시쳇말로 본전도 못 찾게 될까봐 말 붙이기도 어렵다. 또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부모와 심한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도 과거와는 달리 부모를 무서워 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부모쪽에서 눈치보며 조심스러워진다.
이들이 보이는 행동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보모들이 요즘의 사춘기 아이들을 볼 때 특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연예인에 열광'하는 현상이다.
자기 방 책상이나 벽, 문짝, 침대 위에 연예인의 대형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TV에 나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 시간이 되면 TV앞에 앉아 채널을 독점하고, 본 후에는 친구와 방금 본 것을 이야기하느라 전화기를 한없이 붙들고 있다. 게다가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간다고 하여 부모의 애를 태운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커서 뭐가 되려나 싶고 한심한 마음뿐이다. 집집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많은 부모들이 이 문제로 인해 골치가 아픈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빠르면 초등학교 6학년부터 시작하고 늦게는 고등학교까지 계속된다. '도대체 왜 이럴까. 우리는 저만한 나이에 그러지 않았는데'하며 부모들은 요즘 아이들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현상이 요즘의 사춘기 아이들에게만 있는 것은아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강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사실이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춘기를 거친 성인들은 대부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대상이 부모세대와 지금이 다를 뿐이다.
과거 TV나 비디오 등 영상매체가 덜 발달된 때에는 주변에서 접하게 되는 이웃집 남학생 또는 여학생이라든가 동생이나 오빠의 친구, 또 학교 선생님이나 가정교사 선생님 등을 좋아하고 열중하여 짝사랑 같은 것을 겪었던 것에 비해, 요즘은 시대가 변하고 매스컴의 발달로 인해 유면 연예인을 쉽게 접하고 열광하게 되었을 뿐 한 대상을 열렬히 생각한다는 본질적인 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단지 지금이 훨씬 집단적이고 요란하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는데 먼저 TV나 영상매체의 보급 확대와 인기 연예인들의 계산된 상술 등의 요인이 있고, 다음으로 요즘의 청소년들이 문화적 욕구는 큰데 그것을 충족시켜줄 만한 문화적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과거에 비해 더 치열해진 입시경쟁이 더욱더 청소년들의 숨통을 꽉 막히게 한 것이 내적인 요인이 된다.
또한 남들과 다를 때 다르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고 못견디는 사춘기 아이들의 특유한 심리도 작용한다. 친구들이 연예인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자기만 소외되는 것이 싫어서 같이 어울리고 대화하기 위해 열심히 끼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서태지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가 굉장했는데 그때 필자가 아는 중 3학생에게 "서태지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어보았더니 서태지의 노래와 춤도 물론 좋지만 그들이 대학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소신껏 밀고 나가는 것이 더 좋다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애들이 많다고 했다. 지금의 자기 성적이나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 대학에 들어갈 자신은 없는데 부모는 대학과 공부가 인생의 전부로 살고 강요할 때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부모에 대한 반발심은 서태지와 자신과의 사이에 강한 동료의식을 느끼게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동일시(同一視)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자기 일처럼 발벗고 나서게 된다. 우리가 챙겨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책임의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여 과열되는 것이다.
아무튼 과거시대나 요즘이나 이런 현상이 생기는 요인이나 나타나는 양상에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사춘기 아이들이 뭔가 열중할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러한 것을 사춘기 시기에 어느 정도 거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 치르는 홍역이라 생각하면 된다.
나의 진료실을 찾아왔던 어떤 여자 환자는 나이가 들어 한 남자를 사랑했는데 그 남자는 실제의 모습과는 동떨어지게 대단히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보았다. 그 때문에 사랑에 실패하고 그 충격으로 진료실에 온 것이었다. 그 여자는 사춘기때도 그렇고 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열중했던 대상이 거의 없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그런 홍역을 몹시 치른 것이다.
우리 자신 속에 이런 대상을 향해 열중하고 싶은 욕구는 큰데 그것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채 살아가다 보면 앞에 예를 든 환자처럼 착각이 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내적 욕구가 청소년기에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을 적절히 겪으면 예방주사를 맞은 것과 같이 성인이 되어서 그러한 과정을 겪더라도 그만큼 덜 힘들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현상을 정신의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갈 때 바로 넘어갈 수는 없다. 그냥 독립하기에는 너무나 막막하여 중간 대체물을 만들어 자기 힘이 생길 때까지 의지한다고 본다. 그 중간 대체물들이 지금까지 말한 연예인, 학교 선생님, 가까운 사람들이다. 사춘기 청소년기는 격동의 시기이다. 부모들이 편하려고 조용하게 넘어가길 기대하기 쉬운데 사춘기는 어느 정도까지는 아프게 앓아야 한다. 그래서 빠질 고름이 제대로 빠졌을 때 비로소 성인의 새 살이 잘 돋아날 수 있다. 너무 밋밋하게 지나가면 그 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부모로서는 요즘 많은 가정에서 걱정하고 있는 연예인에 열광하는 현상이 이런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이 지나치지 않을 경우는 같이 공감하여 그런 과정이 잘 넘어갈 수 있도록 하고 그것으로 인해 부모와 자식간이 소원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만약 그런 현상이 너무 지나칠 경우 예를 들면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기 위해 학교를 빠진다든지,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한다든지 할 경우에는 자식 관계나 집안 분위기, 아이의 스트레스 요인 등을 주의깊게 살펴서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다른 문제가 있을 때 연예인에 열광하는 쪽을 훨씬 더 증폭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에 열광하는 것만 문제라고 생각하고 다른 근본적인 요인에 대한 고려없이 아이에게만 뭐라하며 강압적으로 격리시킨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황윤정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