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우바이, 평등성

우바이 만세 여성불자 만세

2007-09-12     관리자


방한암 대종사가 주석하셨던 오대산 상원사는 우리나라 선원가운데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수행처다. 상원사가 유명한 선방이 된 데는 물론 한암 큰스님의 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원사가 수행하기에 훌륭한 도량이기에 한암 큰스님이 주석했던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둘의 관계는 반드시 상보적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이태가 지난 어느 여름날 상원사에 한 여신도가 찾아왔다. 그러니까 1947년 여름이었다. 아직은 젊은 여인이었지만 나름대로 불심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한암 선사가 상원사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통해 듣고 팔백 리 길을 물어 물어 찾아온 것이었다.
월정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불공정진을 하고 다음날 아침 다시 30리 길을 걸어 상원사를 향했는데, 계곡의 흐르는 물이 하도 맑아 흐르는 물을 손으로 움켜 마시고 다시 얼굴을 씻었다. 그녀는 세수를 하다 말고 멍하니 물 속을 들여다 보았다.
일렁거리는 얼굴이지만 꽤나 괜찮은 여인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잠시 후에 한숨을 쉬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에이그, 이젠 나도 늙어가나 보구나. 그래도 젊었을 때는 예쁘단 소리를 듣곤 했는데 . 허지만 다 부질 없는 것."
그 때, 누가 소리를 질렀다. "보살님, 거기서 뭘 하십니까?" "예에?" "어디서 오신 보살님이시며 어디로 가시는가는 모르오나, 대체 거기서 무얼하고 계시는 겁니까?" "예, 아무 일도 아닙니다. 저는 개성서 오는 길이며 상원사 방한암 큰스님을 친견하러 가는 길입니다. 하도 물이 맑아 세수좀 하느라고요. 다른 일은 없습니다." "방한암 큰스님을 찾아간다구요?" "예, 그렇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상원사에 주석하고 계시겠지요. 스님?" "예, 계실 것입니다. 자, 어서 그럼." 월정사에 머물고 있다는 젊은 스님이 그 여인을 안내하여 상원사에 올랐다. 그러면서 그 스님은 생각했다. '한암 큰스님은 이제껏 여자신도를 만나 준 일이 없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거참, 이상한 일도 다 있군 그래.' 한암선사는 계행에 있어서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분이었다. 상원사에 이른 여신도는 한암선사를 뵈었다. 한 암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신 보살이신가?"
"경기도 개성에서 왔습니다요, 스님." "경기도 개성에서 오셨다? 그래 어떻게 오셨는가?" 여인은 아무말 없이 한암 선사가 보는 앞에서 왔다갔다 한 뒤 말했다. "이렇게 왔습니다."
한암선사는 이 여인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간파했다.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는가?"
"스님을 친견하고자 하여 왔습니다요."
그러자 한암선사는 여인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되돌아서면서 조실로 향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다 보셨으면 어서 가 보게" "?---."
그런데 그녀는 산을 내려오지 않고 대신 법당으로 향했다. 개성보살은 법당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저녁예불이 끝나고 스님네가 모두 승방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녀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그 밤이 지나고 다음날이 밝자 개성보살은 새벽 예불을 마치고 조실을 찾았다.
"큰스님, 한달간 기도를 계속하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한암 선사가 말했다.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찌 하시겠는가?" "본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것이 불법인 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잇고자 하는 사람을 억지로 내치지 않는 것도 불법의 법도가 아니온지요, 스님."
"그렇다면 내게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지 않으신가. 어서 가 보시게."
"감사합니다요, 스님."
그날부터 개성 우바이는 매일같이 삼시로 예불참석을 뻬먹지 않았고 찬거리라든가 공양 준비, 청소와 차를 끓이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상원사를 떠나지 않았다. 한암 선사는 개성 우바이에게 법명을 지어주셨다. '평등성(平等性)'이었다.
하루는 한암 선사 회상의 대중들이 모여 대중공사를 열었다. 그들은 그 모임에서 그 여인을 상원사에서 내보내자는 데에 일치를 보고 그 내용을 한암 선사에게 고하였다. 시자가 조실 방문을 두드렸다.
"조실스님, 계시옵니까?" "무슨일이더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할 말이 있다고? 어서 들어오너라."
시자가 조실방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한암 선사에게 삼배를 올리고 앉았다.
"그래, 무슨 할 말이 있다 했느냐?"
"네 조실스님.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상원사에 와 있는 저 젊은 보살님 얘기인데요."
"그래서?"
"네, 큰스님. 아무래도 남 보기도 그렇고, 또 큰스님께서 아직 한 번도 젊은 보살님을 절에 머물도록 허락하신 일이 없는 줄 아옵니다. 헌데, 어찌하여 저 보살님은 한 달이 넘도록 우리 상원사에 머물고 있습니까?" "그래, 그 보살이 있어서 안될 일이라도 있더냐?"
"그렇지만, 큰스님."
"어허, 그래 그 보살이 조석 예불에 빠지는 일이 있더냐?"
"아닙니다. 조석 예불은 아직 한 번 도 빠진 일이 없습니다요."
"그러면 사시마지를 걸렀더냐?"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청소를 하지 않더냐?"
"웬걸요? 대중들보다 더욱 열심입니다."
"그러면 기도정진을 게을리하더냐?"
"아닙니다요."
한암 선사가 느닷없이 호통을 쳤다. "네 이놈들! 그래 조석예불이나 사시마지도 거르지 않았고 청소나 허드렛일도 우선적으로 했고 기도정진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너희들보다 더 나은데 어찌하여 내치려 작당들을 하는고?"
"그건 저---."
"그만 두어라. 그 보살은 내가 '평등성'이라는 법명을 지어 주었느니라. 그리고 그녀는 너희들보다 더 높은 경지를 터득했느니라. 앞으로 평등성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게 없느니라."
개성 보살 평등성은 한암 선사를 모시고 열심히 정진했다. 그렇게 하기 3년 뒤 6.25 한국전쟁이 터졌고, 이듬해 1.4후퇴 때 월정사가 국군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그리고 국군은 상원사가 인민군들의 은둔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한암 선사가 주석하는 상원사마저 불태워야 한다고 했다.
그때 끝까지 상원사를 지킨 사람은 방한암 선사와 평등성, 그리고 한 사람의 시자 분이었다.
평등성 보살은 당대의 최고 선지식 방한암 대선사가 인가하였듯이 근세 한국불교에 있어서 상당한 경지를 터득했던 여성불자였다.
군인들은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상원사를 불태워야 했지만 한암선사와 평등성 불자는 불자된 도리로서 법당을 지켜야 했다.
기록에는 한암선사의 일화만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있으나 평등성 불자의 순교적 정신도 지나쳐서는 안된다. 한암 선사와 평등성 불자가 법당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으므로 군인들도 법당에 불을 지를 수가 없었다. 군인들은 대신 상원사의 모든 문들을 떼어다 한 곳에 모아 놓고 태우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하여간 평등성은 한암 선사를 모시고 높은 경지를 체득하였고 한암 선사가 열반에 들자 스님들과 함께 다비에 참여하였다.
지금, 불교가 혼돈기를 맞으면서도 장래가 밝게 여겨지는 것은 평등성과 같은 여성불자가 이 땅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데 있다.
어떤 여성불자는 김밥장수를 통해 모은 돈 수십 억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았는가 하면, 또 어떤 여성불자는 삯바느질로 모은 돈을 육영사업에 써달라고 내놓았다. 그것도 수 십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새해를 맞으며 평등성과 같은 참신한 여성불자가 더욱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황윤정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