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과 하나된 농심(農心)은 곧 불심(佛心)

불자가정 만들기

2007-09-12     관리자

땅은 말이 없었다. 침묵하는 대지, 겨울 들판의 여기저기 오두마니 앉아 있는 볏가리며 땅 위에 바짝 얼어붙은 배추밭을 지나치자니 만감이 교차된다. 아예 파종도 하지 않아 누런 잡풀만 무성한 밭뙈기가 오늘따라 더욱 서럽게 느껴진다. 지금도 버려진 땅이 저렇게 많은데, 우루과이라운드 그 공포의 거센 물결이 홍수처럼 휩쓸고 간 뒤의 이 나라 농촌은 어찌될 것인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 그리고 불심(佛心)
여주군 홍천면 상백 이리 유우수 이장 댁을 찾아가는 길은 실제 거리에 비해 훨씬 멀게 느껴졌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농촌 풍광이 아름다운 만큼 더욱더 무거워지는 마음의 무게 . 연일 보도되는 '위기에 선 한국농업', '농가 경제 황폐화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공감하며 찾아 나선 길이었기에 그만큼 더 착찹했다.
유우수 이장이 사는 집은 곱게 단장한 새집이었다. 작년 그가 서른 여섯의 나이로 늦장가 들기 바로 전에 지었다는 살림집과 그 옆에 붙어있는 널따란 가공공장을 대하는 순간 꿈, 희망 사랑 같은 말들이 연상되었다.
"추운데 오시느라고 얼마나 수고했어요. 시장하실텐데 점심부터 드셔야지요." 유우수 씨의 어머니 권혁순(63세)씨는 이렇게 우리를 맞이했다. 땅과 함께 한평생을 보낸 그녀는 거친 농삿일에 다소 얼굴빛은 그을고 주름살은 늘었어도 환한 보름달 같았다. 땅처럼 포근하고 넉넉한 심성이 생전 처음 본 기자를 매료시켰다.
"취재는 무슨 취재요? 불자라고 하는 일도 하나도 없는데 . 그저 남한테 죄 안 짓고, 남 섭섭한 말 안하고, 될 수 있으면 내가 참고 오로지 원심(圓心)으로 살아야지요."
노보살의 원심이라는 한마디에 귀가 확 뜨여 기자는 "보살님은 평생 원심으로 사신 것 같아요. 자제분들도 다 잘 사시죠?라고 여쭙자, "제 스스로 원심으로 살았다 하면 부끄러운 일이지. 조상 대대로 절에 가서 부처님 전에 공들인 덕분인지 우리 자식들 속 안 썩이고 다들 자리잡고 잘 살아요. 이제 더 여한도 없어요," 그녀는 시어머니를 따라 처음 절에 갔다. 그녀의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였고 이제 작년에 이집 사람이 된 그녀의 둘째 며느리(김매선 씨)도 그녀와 함꼐 절에 갈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땅이 삶의 터전이라면 대물림 받은 불교는 그녀의 마음을 원심(圓心)으로 바로잡아준 궁극의 의지처다. 그러기에 지금도 목욕재계하고 농사 지은 쌀을 정성스레 이고 가 마지를 올린다.
정월, 초파일, 칠월칠석, 시월 등 일년에 네 번은 꼭 절에 다녀온다는 권혁순 씨. 부처님 뵙고 오면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즐거울 수 없다는 그녀는 절에 자주 못 가는 것이 늘 안타깝기만 하다. 이 땅의 전형적인 어머니인 그녀는 자식들에게 종교를 강요한 적이 없다. '부처님께서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고만 있지 겉으로는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요새 애들이 어디 말한다고 들어요. 스스로 느껴야지요,"라는 게 그녀늬 절대적인 교육관이다.
유우수 씨가 활짝 웃으며 한마디 거든다. "우리 어머니 아들이기 때문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불교신자가 됐어요. 하지만 장가 못 가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교회 나오면 장가 보내준다는 소리에는 솔직히 솔깃해지더군요."
삼십 하고도 중간을 넘긴 자못 심각하고 착잡할 지경인 노총각일 때 달콤한 이교도들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있었던 것도 다 소리 없는 어머니의 교화 덕분이었다.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전도활동은 본받아야 할겁니다. 우리 이 자그마한 마을에도 교회가 두 곳이나 있습니다. 그네들은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교는 아직까지도 잠만 자고 있어요.
이 근처에도 절은 여러 군데 있지만 정기적인 법회를 보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라는 유우수 씨의 한마디 한마디는 단호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종교, 민중의 생활현장에 스며들어 그들의 삶을 건강하고 윤택하게 가꾸어 주지 못하는 종교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천육백년 동안 쌓아온 조상의 덕화만 의지하다가는 큰 코 다칠 일이다. 지역을 동체 속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불교의 재 토착에 시급히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이다.


유기농법,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사는 지혜
유우수 씨는 군 제대 후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애처로워 일손을 돕는 사이에 농사꾼이 되었다. 농사를 직접 짓다보니 그전에는 못 느꼈던 보람과 자부심이 그를 단단히 홀렸다. 그즈음 그는 '한국유기농업연구회'에서 주최한 교육을 받으면서 농촌에 대한 새 희망의 꿈을 키워갈 수 있었다.
'82년에는 발효퇴비만을 써서 고추를 재배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전국의 품평회에도 나가고 고추박사라고 불릴 정도로 재배에는 성공했지만 그는 판매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농약도 치지 않고 재초재도 쓰지 않으며 일일이 풀을 뽑아가며 뼈빠지게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고추농사, 게다가 비료를 많이 준 것보다 소출도 훨씬 작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사람들이 알아주질 않는 것이었다. 농약 친 고추와 같은 값에 내놓을 수 없어 애면글면 속썩이다가 이듬해까지 묵혀 마침내 썩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근 3년 동안 몇천만원의 빚더미에 오르는 좌절감 속에서 살아야 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나는 이치는 맞는데 언제나 그 이후 판로가 문제였다. 이것은 자식같이 기른 농산물을 시장에 내 놓을 때 모든 농민들이 맛보고 또 맛보는 참담함일 것이다.
유우수 씨는 다행스럽게도 '88년부터는 무농약 유기 농산물을 제값에 사주겠다는 회사와 인연을 맺었고 판로 걱정은 한시름 덜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유기농가는 3-4천여 가구 정도 됩니다만, 가뜩이나 일손이 모자라는 농촌에서 퇴비를 쓰고 김을 매야 하는 등 품값이 많이 들기 때문에 유기농법을 실제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농가는 약 20%정도일 겁니다."
이 나라 농군의 팔할 정도가 농약에 오염돼 있는 심각한 상태인지라 언젠가는 모두다 유기 농가로 전황 할 것이라고 한다.
불교신자로서 불교잡지에서 취재나온 게 반가워 자리를 함께 했다는 정찬주 씨와 정덕수 씨도 농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유기농법을 택했다고 한다.
"농약 중독으로 며칠 동안 병원신세를 진일이 있어요. 누워서 생각해 보니 이치가 그렇구나 싶더군요. 욕심꾸러기처럼 혼자만 먹고살려고 다른 것은 다 죽이려고 했으니... 결국은 그 인과응보로 내 몸이 망가졌구나."라는 생각이 가슴 깊이 사무쳐 유기농 회원이 되었다는 정찬주 씨의 말은 절절했다.
상백 이리에는 유우수(유기농협회 여주 지회장)씨를 중심으로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 삼만평 너른 땅에다 유기 농업단지를 이루고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사는 지혜를 실천하고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농촌 살리기가 곧 겨레 혼 지키기
"슬픕니다. 열악한 농촌 현실 속에서도 땅을 떠나지 않고 농사를 지어온 우리 농군들은 이제 어찌해야 할지 갈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년에 무얼 심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제 마악 유기농법으로 농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데 이 마당에 쌀수입 개방이라니..."
농사꾼이 농업을 포기하면 겨레 혼 마저 흔들리게 된다. 미국 쌀 먹고 미국영화 보며 자란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형성될 것인지 벌써부터 두렵다.
가뜩이나 정치 경제적으로 압력 받고 있는 터에 식량까지 종속이 된다면 이 민족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절대로 양보 할 수 없는 게 농업이다.
"수입농산물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 때 우리 농촌은 죽어갑니다. 외국농산물 속에 투여된 농약 및 방부제와 갖가지 병균이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겨레 혼을 앗아간다는 인식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가격비교론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 우선 당장 앞만 볼 게 아니라 몇 년, 몇 십년 후에 일어날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대자연과 하나된 농심(農心)은 곧 불심(佛心)이다. 5천년 역사의 농심이 멍들면 천육백년 동안 대물림 받은 불심도 멍들 수밖에 없다. 아니 농촌의 황폐화가 곧 우리 모두의 황폐화를 가져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성찰해야 할 때이다. 농촌 현실을 내일처럼 걱정하고 그이들이 가장 힘들 때 그 힘 덜어주는데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성철 스님도 우리 쌀 드시고 성불하셨다."는 불교계 수입개방 반대 데모대의 조금은 희화화된 슬로건은 그냥 웃어 넘기기엔 너무 깊은 불교와 우리 농촌현실의 공통 분모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일년 동안 정성껏 지은 농산물을 맨 먼저 불전에 올려 왔던 우리의 아름다운 미덕이 뿌리뽑히는 국면에서 그저 수수방관만 하고 있겠는가.
그렇다면 불자도 아니다. 진정한 불자들의 하나된 목소리와 실천을 기원하며 여주 땅을 벗어났다.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황윤정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