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음을 내어

물처럼 구름처럼

2007-09-12     관리자


『선관진책』을 보면 중국의 선사 이암유권(伊庵有權) 스님께서는 하루종일 힘써 정진하시다가 해가 저물어 저녁이 되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하시기를, "오늘이 또 이렇게 헛되이 지나가니 내일 공부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구나!"라고 하셨다고 한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고, 해가 지나감에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만은 이렇게 간절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무릇 부모와 형제의 눈물을 뒤로하여 수행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도를 이루겠다는 마음 하나로 살아도 눈물로 지는 해를 탄식하는데, 성글게 풀어 헤쳐진 마음으로 자신의 나태함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잡다한 생활속에 빠져 들어가 수행의 마음을 뒤로 접어둔 미진한 출가자에게 가슴 아픈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수행하는데 때와 장소를 가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불자들의 일상적인 말들은, 수행심을 버리지 않은 성근 신심에 작은 위안이 되어 주더라도 오롯한 수행력을 미처 지니지 못한 초심자에게는 먹기에는 달콤하지만 결국 몸을 상하게 하는 나쁜 음식과 같다.
강원을 마치고 은사스님을 도와 잠시 포교당 생활에 몸담는다는 것이 어느새 한해가 다 지나갔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지나보니 여러 가지로 어설픈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름대로 책임있는 법회를 보려고 애써 왔지만 굳은 정진력이 받침되지 못한 까닭인지 지나고 나면 항상 후회가 따른다. 부처님 말씀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을 설하라 하셨는데, 스스로 정진하여 얻은 바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도시에 있는 까닭에 정진하는 스님들이 지나는 길에 잠시 들르곤 하는데, 항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정진하기를 권하곤 한다. 잠시 기한을 정하여 살고 있는 줄 알지만 그래도 정진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얼마전 갑사 대자암에 육개월간 무문관 정진에 들어간 사제에게 편지가 한 통 날아왔다. 무척 두툼하기에 세어보니 누런 갱지에 열 장 가까운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행자시절부터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했고, 선방에 다니면서도 만행철이 되면 함께 지내는 일이 많았던 사제다. 처음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정진에 진보가 있다는 말과 함께 하루 속히 정진에 들라는 간절한 권유로 일관한 내용이었다.
젊은 나이의 포교당 살이를 그리 마땅하게 생각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많이 이해해 주던 사람이었는데, 공부의 재미가 무르익어 가는 모양이다. 강원을 마치면서부터 계획해 오고 있는 인도 및 동남아불교의 편력길도 간곡하게 만류하면서, 우리나나만큼 좋은 수행처가 어디 있고 또 지금 정진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겠느냐며 구구절절 함께 정진하기를 권한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아 선방에 한철 방부를 드려도 걱정이 되어 꼭 안부를 전하라고 당부를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입장이 바뀌었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억울한 듯한 느낌이 밀려온다. 나는 건강을 걱정해 주었는데 이 스님은 나의 고부를 염려해주니 빚을 져도 단단히 지는 일이다.
처음 입산을 했을 때 낯선 천정을 보며 일어나서 가슴시린 새벽공기를 마시며 눈에 들어오듯 빛나던 새벽별을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몸에는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몸서리 쳐지도록 차가운 냉수가 흐르는 듯 그렇게 맑고 상쾌할 수가 없었다.
법성계에는 "처음 마음을 낸 때에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고 했다. 처음 출가자가 되었을 때, 비록 머리를 깍지 않고 잿빛 승복을 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팽팽하게 긴장된 마음이 초발심의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가끔씩 상념의 시간을 가진다면 초발심의 순간만큼 소중한 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은 초발심의 마음을 살려서 다시 발심하라고 하신다. 꾸준한 정진과 수행으로 초발심의 마음을 계속 지니지 못하고 홀연히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는 과거의 초발심의 기억으로 살 것이 아니라 재발심하라는 것이다.
옛말에도 같은 돌에 두 번은 넘어질 수 있어도 세 번 넘어지면 바보라 하지 않는가. 처음 낸 소중한 마음을 잃었으면 다시 마음을 내어 잃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는 것이 바른 자세인 것이다. 어찌 소중한 마음을 두 번씩 잃을 수 잇겠는가. 아직 초발심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았고 구도에의 열정과 신심이 타오르고 있을 때 다시 발심 해야겠다.
원효 스님께서는 「발심수행장」에 이르시기를 "수행이 없는 헛된 몸뚱이는 길러봐도 이익이 없고, 무상한 뜬 목숨은 소중히 여기고 아껴본 들 보존할 수 없다."고 하셨다. 자주 육신의 무상함을 말하고 육신에 매이지 않음을 논하지만 실상은 저 깊은 곳에서 육신의 족쇄를 끊지 못했기에 번뇌로움이 끊이지 않음을 알아야겠다.
문득 정진이 안될 때, 내가 있는 자리가 정말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닐 때 한 번 울어보자. 이암 스님처럼 매일을 깨닫지 못한 탄식의 눈물을 흘리지는 못하더라도 흠씬 울어서 깨끗이 해보자. 울고 울어서 다 씻어버리고 새로 정진의 마음을 내자. 어제의 아픔을 딛고 오늘의 공부를 준비하자.

본 기사는 불광 사경 불사에 동참하신 황윤정 불자님께서 입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