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푸른 수행자, 현각스님의 전법행

2001-09-15     관리자

[눈푸른 수행자, 현각스님의 전법행]

숭산큰스님 외국인 제자 분들도 많지만 한국에서 현각스님만큼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현각스님은 다른 어느 외국 스님들보다 강인하게 우리에게 다가 오시며, 또 은사 스님의 법문을 영역한다든지 하여 세계에 알리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 분들도 나름대로 다 수행이 깊고 스님 모시는 마음이야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텐데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 이유가 현각스님과 한국의 인연이 좀더 깊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현각스님이 숭산큰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승의 나라를 방문한다고 김포공항을 내릴 때 공하에서는 스님이 알지 못하는 노래 하나가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스님의 가슴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이 일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이 노래를 들었는데 그 때마다 그런 현상이 반복되었지요.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무척 궁금해 하던 스님은 마침내 어느 날 그 노래 이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애국가'였습니다!

스님이 알게 된 자신의 전생은 이러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생에 일제 시대에 태어난 조선 독립군이었다고 합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거친 벌판에서 전투를 벌이던 스님은 어느 전투에서 마침내 전사하게 됩니다. 전사할 때 광복된 조국에서 마음껏 꿈을 필치지 못하고 죽는 것이 너무나 한스러워서 한 가지 원을 세우게 됩니다. 다음 생에는 힘센 나라에 태어 나 이런 비극 없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 원이인연이 되어 스님은 수십 년 뒤 미국에 태어나 명문 하버드생이 됩니다.

지난 생에 이런 삶을 산 적이 있는 스님이므로 다른 어떤 외국스님보다 더 우리 마음을 잘 아시고 더 정서에 와 닿지 않은지, 그래서 더욱 더 스님을 좋아하는 우리 불자님들이 많은 것이 아닐까요? 스님의 수행과 법력이 다른 사형 스님들보다 높아서라기보다 아마 그런 인연이 더욱더 친밀하게 스님을 우리에게 다가 오시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타큰스님께서는 열반을 미국땅 하와이에서 하셨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먼 곳까지 가셔서 열반하셨나 했는데, 20 여 년 뒤에 미국에서 젊은 청년 하나가 불교를 배우겠다고 한국으로 오면 그 청년이 바로 나인줄 알라는 부촉이 계셨다는 말씀을 듣고는 의문이 풀렸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나고 같이 살아가는 것은 모두 알지 못하던 먼 지난 날에 심어 놓은 소중한 인연의 결과일지니, 모두 모두 희유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곳에 인연을 심을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종린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