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연구] 6. 인간은 죽으면 그만인가

심령연구(心靈硏究) 연재 제 6회

2007-09-12     관리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영계(靈界)를 규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일부 인사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은 더욱 아니다. 독자 여러분이 '인간은 육체(肉體)가 아니다'라 는 사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자는 것뿐이다.


[16] 장년시대(壯年時代)

다음 거울을 보았다.
산과 산을 잇는 소나무와 참나무의 숲이 환히 보인다. 그리고 산등을 여러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떠들고 있다. 모두가 몹시도 흥분하고 있다. 이것은 고노(古老)의 장 년 시절의 한 토막이다. 마을 소유 산림의 경계문제로 이웃 마을과 다투고 있는 것 이다. 노인은 맨 먼저 마을의 권익을 주장하고 나서서 싸웠다. 이 다툼은 수년이 계 속되었다. 그동안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처가와도 왕래를 끊었다.
이 산은 마을 공유인 총산(總山)으로서 워낙 넓은 면적인데다 공유지인 탓도 있어 이웃 마을에서 침범해와도 문제삼지 않고 있었다. 노인이 이를 문제삼아 일어섰을 때에는 산 경계에 대한 확고한 증표가 없었기 때문에 오래 다투기만 하여 오다가 마 침내 군수의 개입으로 산등성이를 경계로 경계선을 그었다. 이것으로 마을의 근심은 해결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산을 촌민이 나누기로 하였다. 그래서 노인은 공로를 인 정받아 많은 산이 배분되었다. 이 분배론을 꺼낸 것은 노인 자신이었다. 그렇게 되 면 자기에게 최대의 배당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한 일이었다. 그는 그의 뜻대 로 되어서 속심 기뻐했다. 그러는 동안 십 수년의 세월은 꿈처럼 흘러갔고 마을 사 람에게 분배됐던 산은 대부분 유복한 이웃마을 사람의 소유가 되어버렸다. 마을 사 람들이 팔아 넘긴 것이다.
다시 십 수년이 흘러갔다. 노인이 살고 있던 산골에도 훌륭한 도로가 났다. 그래서 재목 반출이 편리하게 됨에 따라 산촌의 값도 올라가고 마을 사람들의 생활도 사뭇 나아져 갔다. 문화 혜택도 받게 되고 학교도 짓고 동사도 생겼다. 그런데 노인의 마 을만은 옛 그대로였다. 그리고 누구라 할 것 없이 '총산이 있었다면 …….'하는 소리 가 나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들을 때 노인은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 꼈다. 이웃집 노인 말씀이 자꾸만 생각났다. '총산은 나누는 게 아니라니까! 나누면 타동으로 간다니까. 다시 돌아오지는 않아!' 칠순을 넘긴 이웃 노인은 장년시절의 이 노인에게 말했었지만 그때는 노인의 잠꼬대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총산 이 있었다면 마을은 어려운 재정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다리도 훌륭히 놓았을 것이고, 한 해에 총산의 4, 50 분의 1 씩만 베어 제재하여 팔면 마을 살림은 걱정 없 었을 것이다. 마을의 유구한 재산으로서 번영이 약속될 총산을 한갓 자기의 공명심 과 많은 배당을 받겠다는 자그마한 욕심 때문에 마을을 영구적인 가난으로 빠뜨린 것 이다. 이 동안 30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거울에 나타나는 장면이 전개됨에 따라 노인은 '아! 내가 잘못했다.' 하는 뉘우침이 뼈저리게 느껴왔다. 어째서 저렇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 은 충격이 몰려왔다. 그러다가 멀리 멀리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되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노인은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세령을 받았다. 마을을 빈촌으로 만든 회개의 눈물은 가슴을 쥐어뜯는 것 같은 괴롭고 어두운 생각이 되고 그대로 급전직하 지옥으로 빠져들었다. 거기서 생전에 얽혔던 인연을 만나고 미칠 것만 같은 고민이 연속되었다. 거기서 흘린 뉘우침의 눈물이야말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배 구 슬이었다. 마음 구석에 낀 터럭 만한 때 흔적도 남겨두지 않고 닦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의 보배구슬에서 발하는 빛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노인은 어두운 굴속에 빠져 머리를 두 팔로 감싸고 엎어져 있다. 소름 끼치게 하는 추위와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깔려있다. 높다란 곳에서 훤한 기운이 비춰 오는 듯 하여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에는 두 자 가량의 좁다란 창이 보인다. 그리고 한 노파 가 나타나 보인다. 노인은 일어나 무릎을 꿇고 노파를 올려다보았다. '할메야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주시오' 했다. 다음에는 60이 가까워 보이는 남자다. 지난해 죽은 왕년에 결혼문제로 다투고 평생을 척을 짓다시피한 이웃 노인이다. 그는 여전히 노 인의 잘못을 힐책해왔다. 노인은 빌고 빌었다. 그리고 단골 절 스님의 말씀을 듣고 염불하고 참회해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무아미타불'을 항상 불렀다.
다음에도 십여 인이 연달아 나타났다. 노인은 극도의 피로로 머리가 쪼가리가 날 것 같은 것을 염불의 힘으로 근근히 견디어 갔다.
최후로 나타난 것은 먼지를 뒤집어 쓴 행각승이었다. 그것은 찬바람이 불어대고 간 혹 눈발이 날리던 어느 겨울 저녁나절이었다. 피로한 듯한 걸음걸이의 한 행각승이 쉬어가기를 청하는 것을 처의 중병을 핑계로 거절하고 단골 절을 일러주었다. 다음 날 아침, 사과할 생각이 들어 절에 찾아가니 객승은 온 적이 없다 한다. 이웃에서도 아무도 모른다 했다. 그리고 이것은 평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어있었다. 이윽 고 그 스님이 나타난 것이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 못난 놈이 잘못했습니다."
노인은 계속 사과했다. 어느 듯 주위가 환히 밝아왔다. 스님이 계신 창가에서 황금 색 빛이 강렬하게 비쳐왔다. 너무나 큰 변화에 노인은 '아아 감사합니다.' 감격에 젖 어 나무아미타불을 불렀다. 그리고 노인은 입으로 읊조렸다.
"감사합니다. 무애자재 신통력이여. 이 어른이 저 산골짝 내 집에 찾아오셨는 데……. 그 때 하룻밤을 청하신 것을…….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는 처의 병을 고쳐 주시려고 오셨던 것을……. 내가 바보다. 구원의 손을 내밀어도 거절하는 것이 인간 이었다. 젠 체하고 똑똑한 체하고 있더라도 별 수 없는 업보중생들이다. 나도 그랬 다. 처의 중태를 구해주시는 것을……. 죽게 하고 말았다. 어찌할까?"
그 때 단골 절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인연이요!"
그 때와 동시에 노인에게서는 염불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염불 소리는 점점 커갔다. 그는 밝은 빛에 빨려들어가는 듯하며 조용히 의식을 잃었다.
노인은 어느듯 육각당 거울 앞에 단정히 앉아 있다.


[17] 업경대(業鏡臺)의 교훈(敎訓)

한 노인에 대한 업경대의 나타남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노인이 걸어온 일생동안의 모든 사건이 모두 나타났다. 아무리 친한 사람도 몰랐던 노인 자신의 거짓없는 마음상태가 현상세계에 나타나고 나타나지 않고에 관계없이 그 가 겪어온 적나라한 모양이 마치 한편의 영화를 펼치듯이 나타났다.
인간은 단순한 물체의 결합이거나 육체는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육체의 존부에 관 계없는 영체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그가 걸어온 일생의 나그네 길을 거울에 비춰보 니 그것은 끝없는 이야기거리이고 근심도 기쁨도 슬픔도 환희도 모두가 하룻밤의 꿈 이었다.
그리고 이 꿈같은 현상이 자신의 것으로 가슴에 울려오는 데서 잘못에 대한 뉘우침 은 강렬했다. 깊은 뉘우침, 참회의 연속에서 사람은 영적인 세척이 진행되는 것이다. 악에 젖어든 흉한 자기모양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부끄러움과 가책심은 그를 고뇌 의 깊은 바닥을 헤매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는 저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다 짐하는 것이다.
업경대 앞에서의 가책과 뉘우침이 바로 영적 향상과 직결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강한 반성은 마음 착한 사람일수록 그 충격도 크다. 그래서 도리 어 마음속 반성에 집착되어 마음 해방에 방해가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업경현상에는 또한 인생에 있었던 모든 현상이 일시적 환상에 불과한 것을 알도록 되 어있는 것이다. 이 점은 참으로 커다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악을 여지없이 비판하 면서 또한 가책심 같은 어둡고 국집되고 펴지 못한 마음의 집착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생에 있어 평범하게 지나간 일생은 무가치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것은 순식간에 흘러간 살별이고 고난을 당하여 그에 굴하지 않고 싸웠던 시간은 그것이 비록 짧은 동안이라 하더라도 영적으로 커다란 수확이 된다. 그러므로 편안 속에 묻혀 사는 몸은 꿈속에 다시 꿈꾸고 있는 것이므로 이야말로 가련한 생애다. 오히려 시련을 당하여 이웃을 위하고 공(公)을 위하여 일신 일가의 이해를 불구하고 맞붙은 생애는 실로 말할 수 없이 귀중하다. 이런 때야말로 생명이 빛을 발하는 순 간이다. 꿈속을 살아온 몇 백년보다 나은 것이다.
또 한 가지 잊혀지지 않는 것은 '모두가 인연이다' 라는 가르침과 '염불삼매'의 힘이 다. 노인이 업경대 앞에서 참회의 심연에 빠졌을 때 그를 분발시키고 어둠에서 일어 서게한 것은 '염불의 힘'이었다.
인연소생이라는 생각이 집착에서 헤어나게 하였고 염불이 용기와 빛을 주었다. 염 불은 어떤 고난에서도 힘과 지혜와 용기를 준다. 커다란 서원이 실린 염불은 필경 생, 노, 병, 사에서 벗어나고 무애의 본생명(本生命)의 권위와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 이다.


[18] 죽은 이를 슬퍼하지 마라

업경대 현상을 보면서 참회 세령(洗靈)의 수업을 하는 시기는 대개 육체에서 떠난 직 후부터 7일 내지 7·7일 이내의 기간으로 보인다. 이 동안의 수업이 새로운 생의 출발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근친이나 가족이 슬퍼하고 소리쳐 울 며 '돌아와주오, 왜 죽었소!'하며 통곡한다는 것은 죽은 이가 조용히 반성하고 있는 시 간을 뒤흔드는 결과가 되고 따라서 죽은 이를 괴롭히는 악이다.
업경대 현상이 만이면 만, 모두가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예외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업경대 앞에서의 반성 시기를 갖는 것이므로 이 기간을 조용히 지내도록 해 주고 나 아가서 영에게 밝은 빛을 던져주는 염불 독경 선회(禪會) 등을 갖거나 그 밖에 공덕 을 지어주는 것이 좋다.
영계(靈界) 자료에 의하면 영이 새 환경을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이 행복스런 상태라 면 생전의 가족이나 친지에게 알리고 싶어하고 자기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 것을 바란 다. 그래서 그러한 인간계의 애정은 영을 인간계로 끌어내릴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국 실망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러한 뜻을 전달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설 사 자기의 죽음을 슬퍼하고 통곡하고 있는 것을 눈 앞에 보면서도 그냥 되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혹 영력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자기 뜻을 전해 주고자 하여도 대개의 경우 영능자의 중계를 믿지 않고 오히려 그를 혐오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물론 예외는 있다.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죽은 자가 수행의 힘, 즉 삼 매력을 가졌을 때다. 이 때는 삼매력을 구사하여 친지의 심층의식 속에 호소하여 통 신 수단을 가질 수가 있다. 또는 탁월한 수행력의 소지자는 잠시라도 물질화 현상을 조성하여 자신을 물질계에 나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생사를 구사하는 도인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생존자의 수행력과 불보살의 가피력을 입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는 수행의 힘으로 영능력을 갖췄을 때이고 후자 의 경우는 기도의 힘으로 불보살 등 성현의 위신력을 입었을 때이다. 이 모든 경우 를 우리는 듣고 알고 있다.
이러한 예외를 제하고는 대개의 경우 영은 호소의 수단이 없음을 깨닫고는 되돌아간 다. 그리고 단념하는 것이다.
실지 이런 예가 있다. 아내를 남기고 죽은 어떤 남편이 괴로워하는 아내를 위로하 고자 영능력(靈能力)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남편의 사후 상황 이야기와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남편의 죽음을 서러워하던 그 부인은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집 주인은 죽었는데 다시 무슨 말이 있단 말이요. 공연히 사람을 우롱하지 마시오.' 이 경우처럼 죽은 자로부터의 통신을 아주 거부하고 있는 데에는 아무리 애정과 인 정이 많은 남편이라도 그만 탄식만 남기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계속)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해 주신 황순덕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