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삶의 기술

세계의 선지식들 8 - 인도 위빠사나명상센터 원장 고엔카 법사

2007-09-12     관리자

“붓다가 입멸한 후 2,500년 뒤에 법(法, Dhamma)이 이곳(미얀마)에서부터 세계로 퍼져 다시 인도로 되돌아 갈 것이다.” 『지혜의 개발』(인경 스님 역, 길출판사)

불기 2551년을 맞은 지금, 이 예언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거의 맞아떨어진 느낌이다. 이러한 예언의 한가운데서 인도의 법등(法燈)을 되살리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고엔카(S.N. GOENKA: 1924~) 법사이다.

알다시피,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면서 함께 자취를 감춘 위빠사나는 미얀마에서 가장 잘 유지돼 왔다. 미얀마의 수행 전통은 크게 레디 사야도(Ledi Sayadaw) 계통과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계통으로 나뉘는데, 인도 전역의 위빠사나 명상센터는 레디 사야도 계통을 이은 고엔카가 지도하고 있다.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이 원산지인 인도로 역수입된 셈이다.

1969년부터 인도에서 위빠사나를 가르쳐 온 고엔카 법사는 그 동안 400회가 넘는 위빠사나 10일 코스를 직접 지도했다. 이를 통해 800여 명이 넘는 지도자를 배출, 100여 개에 달하는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세웠으며, 세계적으로 1만여 회가 넘는 명상코스를 개설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1년 처음 명상코스가 개설되어 7월 현재까지 20번의 코스를 열었으며, ‘한국위빠사나센터준비위원회(담마코리아: http://cafe.daum.net/dhammakorea)’가 구성되어 전용 수행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미얀마라는 작은 나라에서 오랫동안 보존되어 온 위빠사나라고 하는 숨겨진 보배가 이제 명상의 나라인 인도를 통해 전 세계로 전해져, 인류는 지속적인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삶의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놀라운 체험

고엔카 법사는 인도인이지만 미얀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사업에만 몰두하던 그는 어느 날부터 심각한 편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치료법을 찾았지만 완쾌되지 않아서, 그는 결국 모르핀 주사를 맞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마약 중독의 두려움으로 미얀마를 떠나 세계 각국을 돌아다녀도 진전이 없던 그에게 친구가 권한 것이 바로 위빠사나였다.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한 그는 당시 존경받던 위빠사나 지도자인 우 바킨(U Ba Khin: 1899~1971) 법사를 만나게 된다. 재가자로서 38세에 처음 수행을 시작한 우 바킨은 1948년 미얀마가 독립하자 회계청장이 되었으며, 1950년(51세) 위빠사나 모임을 창설하고, 2년 뒤 국제수행센터(IMC)를 양곤에 설립했다. 이때부터 미얀마 사람은 물론이고 많은 외국인들이 위빠사나를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엔카가 신병 치료를 목적으로 수행을 원한다고 하자 우 바킨은 그의 명상코스 참가를 거절한다. 위빠사나는 깨달음을 향한 수행이지, 질병 치료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고엔카는 아무런 사심 없이 위빠사나 명상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보수적인 힌두교 가정 출신으로 불교 수행을 하기가 망설여져 코스 참가는 몇 달 뒤에나 이뤄졌다.

고엔카는 훗날 자신이 두통으로 고생하고 어떤 의사도 이를 치료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큰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 덕분에 위빠사나 명상을 통해 놀라운 체험을 얻은 그는 14년간 스승의 지도 아래 수행했으며, 마침내 가르침을 전해도 좋다는 인가를 받았다. 45세 되던 1969년, 그는 인도 뭄바이에 정착해 어머니를 포함한 친지들에게 처음으로 위빠사나를 가르쳤다. 불교 수행이지만 종교성을 강조하지 않는 위빠사나의 장점은 빠른 속도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그는 쇄도하는 요청으로 인도 전역을 옮겨다니며 명상을 지도했다. 드디어 1976년에는 뭄바이에서 140km 떨어진 이가뜨푸리에 담마기리 명상센터와 위빠사나 국제아카데미가 세워졌다. 오늘날에는 외국으로 확산되어 인도의 45개를 비롯해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동남아 등에 55개 명상센터가 설립되어 있다.

고엔카 명상센터의 수행법

일중 스님의 논문 「고엔카 수행법과 대념처경」에 따르면, 고엔카 위빠사나는 신념처(身念處) 중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 아나빠나사띠)’을 준비수행으로 닦은 뒤, ‘감각에 대한 관찰[受念處]’을 본 수행으로 삼는다. 마하시 계통이 선정수행을 전제 조건으로 하지 않는 순수 위빠사나로 분류되는 데 반해, 고엔카가 속한 레디 사야도 계통은 사마타(禪定)수행을 먼저 닦은 후에 위빠사나(智慧)를 닦는 수행으로 분류된다. 즉 호흡을 관하는 입출식념에 의해 마음의 집중을 얻은 후에, 감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본격적으로 닦는 방법이다. 따라서 고엔카 위빠사나의 주 관찰 대상은 감각인데, 접촉이 있을 때마다 6근에서 일어나는 여러 느낌 중에서 특히 몸의 감각을 관찰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을 관찰하여 고(苦)의 원인인 욕망을 일으키지 않고, 거기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법이다.

고엔카 명상센터에서의 수행은 10일, 20일, 30일, 45일, 60일 코스와 8일간의 『대념처경』 코스가 실시된다. 명상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10일 코스에 등록해야 하는데, 주로 세 가지 수행법을 닦는다. 살생, 도둑질, 성행위, 거짓말, 술이나 마약, 담배 등을 하지 않는 ‘5계’를 지켜야 하며, 호흡관인 입출식념을 선정수행으로 닦고, 감각을 관찰하는 수념처를 지혜수행으로 닦는 등 계정혜(戒定慧) 3학을 두루 갖추고 있다.

마하시 위빠사나와 달리, 행선(行禪)은 없고 좌선이 중심인 고엔카 수행법은 대개 하루 8~10시간을 수행하며, 매일 면담을 통한 수행점검이 있고, 저녁마다 법문시간이 있다. 수행 중에는 철저한 묵언이 중시되지만, 개별적인 질문은 문답시간에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명상 코스는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사마타), 감각에 대한 관찰(위빠사나)과 함께 자비심과 수행의 공덕을 회향하는 자비관도 포함되어 있다. 수행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균등하게 개발해야 할 것은 깨어있음(sati: 마음챙김)과 평정심이다. 또한 감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해서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깨달아야 할 것도 강조되고 있다.

오직 바라보기만 하라

고엔카 법사는 “위빠사나 수행이란 자기의 실재(實在)를 직접 경험하는 관찰 방법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위빠사나는 사물을 단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본성으로서의) 있는 그대로를 관찰[如實知見]하는 것이다. 그는 『지혜의 개발』에서 “수행의 요체는 느낌을 단순히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라면서 “단지 우리의 집착을 관찰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섯 감각의 경험으로 접촉이 일어날 때, 아무런 평가도, 조건되어진 지각도 없어야 한다. 일단 자각이 경험을 좋다 나쁘다 하고 평가하게 되면, 그는 맹목적인 습관[業習]의 반응으로 세계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모든 조건지어진 것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과거의 습관적 반응이나 평가를 멈추고 무의식의 반응도 없이 깨어 있어야 한다.”(『지혜의 개발』)

‘오직 바라보기만 하라’는 그의 가르침은 “(보고, 냄새 맡고, 맛 보고, 만지는) 인식작용이 있는 곳에서는 오직 인식만이 있어야 한다.”는 부처님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숭산 스님의 ‘오직 ~할 뿐’이라는 법문처럼, 선사들의 법어와도 상통한다. 3조 승찬 대사는 『신심명』에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취하고 버리는 분별심과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버리면 통연히 명백해지리라.”고 했다.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임을 주창한 마조 선사는 『마조록』에서 “평상심이란 조작이 없고 시비도 없고, 취사(取捨)도 없고, 단상(斷常)도 없으며 범성(凡聖) 등의 분별심이 없는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팔정도의 맨 앞에 등장하는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로 편견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유와 무, 옳고 그름, 선과 악, 부처와 중생 등 양변을 초월해 일체의 분별심을 내려놓고 보라는 말이다. ‘사물의 실상(實相)을 있는 그대로 본다’라는 위빠사나(vipassana)의 어원이 말해주듯이, 모든 분별심과 고정관념, 번뇌·망상을 떠난 ‘여실지견’은 남·북방 수행법에 공통적으로 녹아있는 수행관임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놓아 버리라[放下着]’는 불·조사의 수행지침은 고엔카 법사의 가르침에 오롯이 녹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