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권두강연

2007-09-11     박원순
글· 박원순/변호사,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공자님 앞에 문자 쓰는 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오늘 나눔을 주제로 여러분들과 말씀을 나눠 보고 싶습니다.

제가 사실 나눔에 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91년도에 영국 유학을 갔을 때부터입니다. 영국에서는 집집마다 돈을 기부하라는 쪽지가 오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go to door모금’이라고 하는데, 그 모은 돈을 제 3세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쓴다고 했습니다. 영국 국민들이 한해 기부한 돈을 모아보니 영국의 국방비만큼이나 되는 큰돈을 매년 기부하고 있었습니다. 신문 기사를 보니, 런던 시민들한테 “당신은 지난 한 달 동안 기부한 적이 있는가?” 물었더니 76%가 기부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는 현재 한 25% 정도 됩니다.

그리고 일 년 후 미국으로 갔습니다. 하버드 대학에는 도서관이 7개나 있는데, 그 중에 중앙도서관을 와이드너 도서관이라 부릅니다. 영화 타이타닉 아시죠? 그 타이타닉 호에 탔다가 익사한 아들을 추모하며 그 어머니가 하버드 대학에 기부한 건물입니다. 저도 그 도서관에서 많은 지식을 얻고 돌아 왔습니다만, 그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빛나는, 기념비적인 사업을 한 것이지요. 그 분이 그보다 더 빛나게 그보다 더 아름답게 돈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다니며 복사를 했는데, 책들마다 뒤쪽에 다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책조차도 누군가가 기부한 거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나눔

또 작년에는 미국 서부 지역에서 최고로 좋다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2004년 12월 19일 도착해서 그 다음날 대학에 나갔는데, 대학 신문에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대학 대학원생을 위해서 기숙사를 지으라며4300만불(430억)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한 부부가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250억불이 넘는 돈이 기금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저도 그 대학에서 강의를 딱 3개월 했는데, 다달이 10000불, 천만 원을 주더군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는 저같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한테도 그런 돈을 주면서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탠포드대학에만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교수로 7명이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서울대학교가 전 세계 100대 대학 안에도 못 들어간다고 교수를 비판하고 대학을 비판하는데 저는 우리 국민들이 서울대학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그 기부가 있음으로써 대학이 좋은 교수를 초빙하고 학생들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제가 하버드 대학에 있을 때 신문지상에서 인상적으로 본 글이 있습니다. 글쓴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두 단어가 뭘까?” 이렇게 묻고 본인이 또 대답을 했어요. 오늘 이걸 맞추시면 경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이라는 책을 하나 썼는데요. 제가 예전에 쓴 책은 초판밖에 안 나가서 초판클럽멤버인데 이 책은 많이 나갔어요. 왜냐하면 태평양 회장님이 4000권을 사서 전 직원들에게 나누어주셔서 갑자기 초판클럽멤버 신세를 면했습니다. 또 그 회사에서 50억 원을 저희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셨어요. 요새는 이혼을 한다거나 사별을 한 여성, 미혼모도 많잖아요. 그분들에게 생활비를 조금 지급하면 그건 잠깐 지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활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창업자본을 융자해 주는 기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그 책을 한 권 사인해서 드리겠습니다.

맞춰보십시오. 예, “나눔”, 크게 보면 맞추셨습니다. 영어로 ‘check enclosed’, 그러니까 ‘수표가 이 편지 봉투 안에 들어 있으니 좋은 데 써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나눔이요, 기부입니다. 그게 1992년의 일입니다. 그래서 2000년에 재단을 만들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재단’ ‘나눔을 실천하는 재단’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는데 잘 지었죠?

 

젊어서 유언을 하라

제가 변호사를 안 한 지 한 10년 됐습니다만, 그 전에 변호사를 한 7년 하면서 참 못 볼꼴을 많이 보았어요. 여기 어르신들도 계시는데요. 재산 남겨 주시면 형제들끼리 반드시 싸웁니다. 저희들보다 한참 선배 변호사가 계셨는데, 그 분이 큰 부자로 소문이 났어요. 제게 변론을 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알고 보니 그분의 딸이고 아들이더군요. 재산 없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연들을 봤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책을 집필하면서 젊어서 유언을 하라는 얘기를 썼습니다. 연세 드셔서 좋은 일 하겠다는 생각을 해도 실행되기 어려운 사례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썼는데, 출판사 직원이 “본인도 안 하면서 왜 남보고 그러느냐”고 하기에 그날 밤 당장 썼습니다. 혼자 밤늦게 유언을 쓰다 보니 그거 참 쓸 만하더군요. 바쁜 일상 때문에 정신없이 사는 게 우리의 삶이잖아요. 그런데 유언을 쓰면서 내가 과연 잘 살아왔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지요. 또 한편으로 재산에 대해 쓰려고 보니 물려줄 만한 게 없어서 고민하다가 이렇게 썼습니다.

“얘들아, 내가 그랬듯이 나도 너희들한테 아무것도 물려 줄 재산이 없다는 이 사실을 커다란 유산으로 삼아라.”

궤변 같지만 굉장히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은 긴 마라톤입니다. 부모님이 유산을 한 10억쯤 물려주면 자식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됩니다. 남보다 100m 앞에서 뛰는 거예요. 그런데 거북이와 토끼 경주 보셨죠. 빨리 앞에서 뛰는 사람은 자만심이 생깁니다. 의지할 곳이 있는 사람은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보다 인생을 절박하게 살지는 않습니다. 아마 여기 계시는 어르신들은 다 경험하셨겠지만 인생에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실패를 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막 일어나서 뛰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저앉아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뭘 물려줘야 되겠습니까?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일어나서 다시 뛸 수 있는 용기와 지혜와 지식을 물려 줘야지 창고에 돈을 가득 넣어서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고기를 잡아서 주는 것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유대인의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버린 만큼 얻는다

흔히 삼대 적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잘은 모릅니다만 결국 삼대적선과 상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육바라밀 중의 첫 번째인 보시는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대함은 다 버리고 출가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한 나라의 왕자로서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었던 분이 어느 날 다 뿌리쳤습니다.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버리는 것만큼 얻으셨고,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별로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변호사를 해보니 돈이 잘 벌리더군요. 82년도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는데, 그 때만 해도 변호사가 많지 않아서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좋은 차도 사고 몇 년 만에 집도 하나 샀습니다. 여러분 집 사고 나면 또 뭐해야 되지요? 예? 좀 즐거운 상상을 좀 해 보세요. 자기 살 집 하나 마련하고 나면 월세 받는 집이나 건물 하나 있으면 좋잖아요. 그것도 하나 마련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할까요? 땅요? 예, 별장 하나 있어야지요.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다 별장 부지로 보이는 겁니다. 경치는 안 들어오고 ‘저기에 별장 하나 지을까?’ 하고, 제주도에 가면 ‘아, 적어도 제주도에 별장 하나는 있어야지.’ 하면서 탐욕으로 가득 차고 돈독이 오르는 겁니다. 인생살이의 목적이 돈 버는 것뿐인 거예요.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저 세상 가면서 땅 한 평 가져갈 수 있습니까, 아니면 지갑에 있는 돈을 가지고 갈 수 있나요? 하나도 못 가져갑니다. 단지 살아온 인생의 가치와 그 베푼 덕만이 남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땀 흘려 번 돈을 물려줘서 결과적으로 자식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참으로 귀하게 쓸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와이드너 도서관 얼마나 의미 있습니까. 같은 돈이라도 그 어머니처럼 보람 있게 쓸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평소 존경하는 지홍 스님을 뵙고 “불광사에도 ‘아름다운 가게’를 하나 넣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공간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중창불사를 해서 공간이 생기면 여러분들이 아름다운 가게 하나 만들어주십시오. 그런데 중창불사 총 약정액을 보니까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더군요. 어쨌든 불광사가 새롭게 중창되어지면 여기 계시는 불자님들뿐만 아니라 이 일대의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계사가 그렇잖아요. 조계사에 반드시 불교 신자만 갑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많은 사람들, 많은 외국인들이 갑니다. 그분들 다 평화를 얻지 않겠습니까. 사찰을 일구는 것이 결국 많은 사람에게 보시하는 게 되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기부라는 것이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변호사를 하지 않고, 시민운동, 기부운동 등을 하다 보니 가난해졌습니다. 가난해 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그에 비례해서 참 부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래 뵈도 택시를 타면 열 명 중에 한 분하고 꼭 실랑이를 벌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운전기사님이 당신같이 좋은 일 하는 분한테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요새 택시 기사님들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공짜로 타겠습니까? 저는 드리겠다고 하고 그분은 안 받겠다고 하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만 해도 너무나 감사하고 그것에 큰 힘을 받아서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 드리곤 합니다. 어떤 때는 막무가내로 안 받으시겠다고 해서 정말 안 드리는 것이 그 분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릴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뿐만 아니라 우리 간사들 데리고 절에 가서 공짜로 많이 지냈습니다. 이렇듯 저는 나눔 운동을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얻었고 너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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