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다라’를 통해 달라진 삶

전무송 이기순 부부 - 특별 초대석

2007-09-11     관리자

글· 고은별/프리랜서 리포터(lovemit@naver.com)

올해로 연기 인생 45주년을 맞이한 배우 전무송, 말없이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빠져 몰입해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은 경건한 수도자를 닮았다. 그러나 그가 환하게 웃을 때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이 어린다. 그런 남편을 옆에서 자랑스러운 듯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 이기순. 굳게 다문 야무진 입술은 그동안 배우 전무송의 아내로 살면서 겪었던 남달랐던 삶이 얼마나 한결같고 지혜롭고 당당하였는지를 이제는 마음 편하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고은별 _ 어떻게 처음 만나셨나요?

이기순 _ 64년 크리스마스 이브였지요.

전무송 _ 동창 친구들이 미팅을 한다고 해서 나갔는데 집사람이 눈에 확 눈에 띄었어요. 짝이 되고 싶었는데 제비뽑기를 해서 가진 종이를 보니 집사람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어요. 옆 친구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보니까 집사람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 친구에게 내 것하고 바꾸자고 했지요.

이기순 _ 조촐한 망년회 모임에서 다시 만났고 그 후 계속 이어졌습니다.

고은별 _ 첫사랑이었겠어요.

이기순 _ 그렇지요.

고은별 _ 성격이 참 밝으신 것 같아요.

이기순 _ 제가 생각해도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전무송 _ 그런데 무슨 일이 생기면 냉정할 정도로 침착해요. 그래서 믿음이 갑니다. 저는 생활적인 면은 모두 아내에게 일임하고 있어요. 월급을 타면 봉투째 그냥 다 갖다주고 용돈만 타서 썼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 편했어요. 연기에만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기순 _ 굉장히 고단수지요. 내게 모두 맡겨놓고 하고 싶은 일을 다하니까요.(웃음) 저는 남편이 연극을 하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행동했지요. 자부심이라고 할까요? (웃음)

고은별 _ 결혼생활은 몇 년째인가요?

이기순 _ 연애를 8년 했고 결혼한 지 36년째 되네요.

고은별 _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남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지요?

이기순 _ 그렇지요. 저는 연극배우가 뭔지 몰랐어요. 남편이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때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지요. 자주 찾아갔어요. 부대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지요. 동료 배우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에 남편은 군대에서 혼자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 남편을 위해 기타도 사서 보내고 케이크도 사서 소포로 부쳐주고 하면서 마음을 달래주었어요. 직장 생활을 해서 번 돈을 모두 남편을 위해 쓴 셈이지요.

고은별 _ 영화 ‘만다라’에 출연하면서 내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전무송 _ 그 전에는 오로지 내 경험과 정보들을 가지고 작품을 들여다보았는데 ‘만다라’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스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로부터 법문을 들으면서 제 생각들이 바뀌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나를 알게 된 것이지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며 존재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적으로 불교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만다라’라는 작품을 통해서였고, 지산 스님의 수행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깊이 있게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만다라’는 제 인생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준 작품입니다. 그 이후 ‘원효 스님’, ‘산산이 부서진 이름’,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의 불교영화에도 출연했지요. 삶 자체가 부처님의 말씀, 법대로 사는 삶이고 싶었습니다.

이기순 _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 바로 불법(佛法)이고, 자비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이 연극배우이기 때문에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때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것에 대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전무송 _ 무대에서 삶을 표현한다고 할 때 내 의식 속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가르침이 한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무대에서 관객들을 감동시켰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순 _ 종교는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지요.

전무송 _ ‘만다라’의 지산 스님 역을 맡았을 때 막막했습니다. 스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거든요. 승려 생활을 모르면 안 되겠더라고요. 김성동 작가가 지산 스님을 모델로 한 스님이 계시는데 만나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서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그날 밤에 꿈을 꾸었어요. 꿈 속에서 지산 스님이 되어 걸어가는 제 모습을 보았어요.

그러더니 그 모습이 갑자기 바뀌면서 드라마 센터 정문으로 들어가는 제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그 순간 이거다 했지요. 내가 배우가 되겠다고 연극 수업을 받으러 드라마 센터를 십년 세월 동안 올라 다닌 것이나 지산스님이 깨닫겠다고 십년 세월을 방랑하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스님을 만나지 않고도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어려운 작품을 할 때마다 제가 꿈을 꾸면 연기가 잘 풀리고 꿈을 꾸지 않으면 잘 풀리지 않더라고요. 아마 작품에 몰입하고 집중하니까 꿈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는 기(氣)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혼(魂)을 가지고 있지 않는 배우, 즉 기가 살아있지 않은 배우에게는 작가가 쓴 인물, 그 배역이 들어가지를 않아요. 열심히 해도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것, 바라는 것이 있으면 배역으로 완전히 몰입되지 않지요. 항상 자기를 비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도 저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기순 _ 남편은 ‘만다라’ 영화로 신인상, 남우조연상, 평론가상을 탔어요. 상을 많이 타니까 CF 섭외도 많이 들어왔고 밤무대에 서 달라는 부탁도 많이 받았지요. 그렇지만 그 모든 유혹을 다 뿌리치고 하지 않았어요.

법명(法名)이 다정(茶亭), 반야심(礬若心)인 전무송, 이기순 부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따스하다.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믿고 이해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배우 전무송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을 믿어 주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고 이해해 주는 아내가 있고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자랑스럽게 따라 걷고 있는 딸(현아)과 사위(김진만), 아들(진우)이 있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이루고 결혼하여 오로지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자신이 자랑스럽고 언제나 당당했다고 말하는 아내 이기순은 배우 전무송의 영혼의 반려자임이 틀림없다. 아름다운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쁨이 가득했던 시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덕담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배우 전무송|1941년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드라마 센터에 입학. 유치진 선생에게 사사. 이해랑 연극상, 대종상 남우조연상, 영화평론가상, 대한민국 연극제 연기상, 한국 백상 예술대상 연기상, 한국연극 예술상 최우수 연극인상 등 다수 수상. 최근 2006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용호상박, 세일즈맨의 죽음, 세상을 편력하는 두 기사 이야기, 북어 대가리, 색시공, 고도를 기다리며, 불보라, 마의 태자, 카페 신파(이상 연극), 만다라, 피와 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백치 아다다, 동승(이상 영화) 무인시대, 왕룽일가, 원효대사, 왕건, 국희, 설중매(이상 TV) 등에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