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위한 청소년 상담

의식(儀式)은 의식(意識)을 결정한다.

2007-09-10     관리자
통과 의식이 인생을 지배한다.
인간이 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첫 고비를 잘 넘겨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되면 백일잔치를 한다. 이 세상살이를 시작하는 최초의 의식이다. 돌 잔치를 하고, 해마다 생일을 맞고, 스무살이 되면 성년식(成年式)을 하고, 약혼식·결혼식을 하고, 회갑연을 열고, 고희연을 열고, 장례식으로 마침내 이 세상살이를 마감한다. 이렇게 인간의 팔십 생애는 의식에서 출발하여 의식을 끝나는 것, 의식은 인간의 삶을 매듭짓는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의식을 '통과의식''통과의례', 이렇게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통과의식을 지배해 온 것은 곧 종교이다. 종교는 저마다 고유한 통과의식을 발전시키고 이것을 신도들에게 가르치며 그 실천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 민간신앙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문에 금줄을 내걸게 한다. 새끼줄에다 숯도 끼우고 고추도 끼워서 대문간에 내건다. 이것은 하나의 탄생식이다. 새 생명이 탄생하였음을 온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민간 신앙의 중요한 통과의식이다.
 인도에서는 남자 아니가 태어나서 6∼7살이 되면 입문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새찌줄을 어깨에 비스듬히 잡아매 준다. 이 새끼줄은 평생동안 몸에 지녀야 하는데, 이것은 이 아이가 힌두교에 입문함으로써 정신적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입문식을 거친 힌두교도들을 '재생족(再生族)'이라고 일컫고, 그들은 평생 이러한 의식(意識)을 갖고 살아간다.
 조선시대의 사대부 집안에서는 남자 나이 20살이 되면 관례(冠禮)를 행하고 머리에 관을 쓰기 시작한다. 이것을 '약관(弱冠)'이라고 일컫는데, 이로부터 그는 한 사람의 성숫한 선비로서 살아갈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고, 스스로 '나는 선비다'라는 자의식을 지니게 된다.
 유태인들은 아이를 낳으면 물 속에 넣는 세례(洗禮)의식을 행한다. 이 의식을 통하여 그는 유태교인이 되고 평생동안 유태교인으로서의 강한 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이렇게 모든 종교가 통과의식, 특히 탄생과 입문의식을 강조하고 엄숙히 지켜가는 것은 이러한 의식(儀式)이 사람의 의식(意識)을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갓난아이, 어린아이에게 고유한 탄생·입문의식을 행함으로써 그는 그 종교 신자로서의 고유 의식을 갖게 되고 이 의식이 그의 인생을 끊임없이 지배하여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종교마다 고유한 의식을 발전시키고, 고유의식 없는 종교는 종교라고 일컬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에게 수계의식을
'절에 가서 기도드리고 너를 배었다. 칠원 장춘사에 가서 일주일을 꼬박 절을 하고 마지막 날 밤에 그 절의 돌미륵불을 보고 너를 낳게 되었단다.'
 나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어머니로부터 이 얘기를 수없이 듣고 자랐다. 절에서 하도 절을 많이 해서 다리가 빳빳해져 업혀서 내려왔다는 얘기도 곁들여 들으며 자랐다. 그러면서 나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불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절에 가서 기도 드리고 태어난 아이다. 나는 미륵부처님의 현몽으로 태어난 아이다.'이러한 의식이 내 인생을 지금까지 지배해 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머니로부터 가장 강인한 탄생의식을 받았고 입문의식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불교는 통과의식이 없다. 특히 한 인간의 생애를 결정시켜 갈 탄생·입문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불교의 손실만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자녀들의 손실이며 우리 가정 전체의 심각한 손실이다. 왜 우리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다른 종교로 빠져나가고 부모의 종교를 비난하고 무시하는가? 아니, 왜 오늘의 한국 청소년들이 원초적 윤리의식을 결여하고 있는가? 일생을 살아갈 삶의 기본적인 틀을 갖고 있지 못한가?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불자로서의 고유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고유의식을 심어줄 불교적 통과의식을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랑도(花郞道)를 잘 알고 있다. 신라의 화랑도가 민족통일의 주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화랑정신을 말하고 있다. 민족정신의 가장 빛나는 한등불로서의 화랑정신을 얘기하고 있다. 황산벌 싸움에서 한 몸을 던져 국가의 운명을 연 열 여섯 어린 관창(官昌)의 화랑 정신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이 화랑도가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저 관창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가? 저 건전하고 용기 있는 우리들의 자녀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가? 그 대답을 우리는 세속오계(世俗五戒)에서 발견하게 된다.
 세속오계는 신라 청소년들의 불교적 입문의식이며 수계의식이다.
  우리가 어버이로서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아니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은 우리 자녀들의 입문의식, 입문수계식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 형편으로 간절하게 뜻깊게 할 수 있는 입문수계식은 법회에 나아가 오계(五戒)를 받아지니는 것이다. 오계를 수지하는 것은 모든 불교의식의 생명이 아닌가.
 5월, 부처님의 달이다. 화려한 장엄, 연등행렬-다 좋다. 그러나 진정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하고 우리 가정, 우리 사회에 이익과 행복이 되는 봉축불사는 무엇이겠는가? 불교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불사는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것이 어린이·청소년들의 수계의식, 입문수계식이라고 믿는다.
 이 5월, 절마다 법회마다 수계식을 마련하자. 어린이날에는 어린이 입문수계식을 베풀고, 청소년의 날에는 청소년 입문수계식을 베풀어, 마을마다 도시마다 입문수계의 물결이 넘치게 하자. 초파일 경비의 몇분의 일만 들이면 어찌 장엄한 수계의식을 마련하지 못하겠는가?
 군법당 폐쇄되고 부처님이 화형당하는 이 치욕을 극복하는 길은 이것뿐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