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

고구려 역사유적 탐방|대불련의 ‘COREA의 고구려 역사를 찾아서’

2007-09-10     관리자


▲ 동양의 피라미드라고 불리우는 장군총.
2002년부터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동북변강역사와 현상계열연구공정’이라는 약칭 ‘동북공정’ 사업을 시작하면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본격적인 역사왜곡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최근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TV 드라마가 연거푸 방영되고 있다. 지금이나마 고구려에 대해 바로 알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으니 퍽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가 지난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젊음의 패기를 안고 고구려의 숨결을 직접 느끼기 위해, 중국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 역사유적 탐방을 다녀왔다. 대불련 소속 학생 45명을 비롯한 60여 명의 탐방단은 윤명철 교수(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고구려연구회 부회장)의 지도로 중국 단동에서부터 본격적인 고구려 찾기에 나섰다.

▲ 방치된 채 무너지고 있는 백암산성.
고구려의 강인한 진취적 기상을 찾아서

중국에서 처음 맞는 아침, 북한과 국경 역할을 하는 압록강 하류에서 유람선을 탔다. 이성계가 회군하였다는 위화도와 신의주가 바로 눈앞, 손에 잡힐 듯하다. 멀리서 배 한 척이 가까이 오는데, 북한의 어린 학생들을 태운 배다. 순간 반가우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인다. 이것이 가슴 깊이 내재되어있는 민족애인가 싶다.
호산장성으로 이동하니 동북공정의 실체를 보는 듯하다. 원래 고구려 양식으로 축조된 박작성이었는데, 우물을 메우고 은폐한 채 호산장성으로 이름을 바꾸어 시멘트 등으로 복원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평양을 만리장성의 동쪽 끝 지점으로 표기한 지도가 있어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후부터 하루 평균 8~9시간 버스를 타고 유적지를 탐방하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400여 년간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의 고구려 유적이다. 이곳은 지난 2004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주변 정비가 잘 되어있다. 책이나 TV에서만 접하던 광개토태왕비 및 태왕릉, 장군총, 고분 벽화를 직접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감동적인 역사 체험에 학생들도 숙연한 마음으로 고구려의 웅장한 기운을 오래도록 느껴본다.

▲ 잠시 고구려 유적 탐방을 뒤로한 채, 백두산 천지에서의 즐거운 한 때.
이번 탐방은 대체로 고구려 성(城)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압록강변의 박작성을 비롯해 오녀산성(주몽이 세운 첫 수도인 환인의 졸본성으로 추측), 국내성터(두 번째 수도인 집안의 궁성), 환도산성(비상시 국내성에서 대피할 때 만들어진 수비성), 백암산성(하얀 석회암으로 쌓은 요동지방의 방어성), 비사성(요동반도의 수군기지로 활용되면서 해양전략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성) 등이 그것이다. 방치되고 훼손된 성벽이 많았지만, 아직도 견고하게 남아있는 성의 흔적을 살피며 고구려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탐방 일정 중간에는 민족의 성지 백두산(2,744m)을 오르기도 했다. 백두산의 동·남쪽은 북한, 서·북쪽은 중국에 속한다. 탐방단은 백두산 서파로 올라 신령스런 빛이 가득한 천지에 이르렀다. 그 장엄함과 수려함에 매료되어 자신의 존재감마저 잃고 만다.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 비사성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윤명철 교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진실을 볼 수 있다
마지막 날은 고구려 천리장성의 맨 끝자락에 있는 비사성을 찾았다. 645년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고구려군 8,000여 명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장군이 군사를 지위하는 점장대(點將臺) 앞에는 진시왕릉에서 출토된 도용들의 모형이 커다랗게 서있어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비사성에서 조금 내려오면 석고사라는 고찰이 있다. 포대화상이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준다. 사찰에는 유독 빨간 색이 눈에 많이 띄고, 커다란 향을 피우며 절을 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탐방단은 그 옛날 치열했던 전투 속에서 산화해간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다함께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일정을 회향했다.

▲ 석고사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전쟁에서 죽어간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곳곳의 유적지에서, 버스 안에서 학생들에게 고구려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확성기를 놓지 않던 윤명철 교수가 늘 강조하던 것이 있었다. “과거에 배웠거나 익숙해진 것은 과감하게 모두 버려라. 언제 어디서나 있는 그대로 보고 무조건 받아들인 후 조금씩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먼저 뛰어들어라.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진실을 볼 수 있다.” 아마 고구려인의 진취적인 기상이 그러했을 것이다.

고구려는 매우 개방적이었고, 주변의 많은 종족들을 백성으로 삼아 그들의 문화도 조화롭게 수용하였다고 한다. 21세기 글로벌시대에 꼭 걸맞는 가치관이 아닐 수 없다. 고구려는 더 이상 잊혀진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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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석(대불련 회장, 전남대 사회학과)

비록 지금은 중국 영토지만, 그 역사와 문화는 분명 우리의 것이고, 우리가 지켜나가야 한다. 과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 또한 비전이 없을 것이다. 비록 6일의 일정은 이제 끝이 났지만, 앞으로 더욱 긴 여정이 남아있다. 이번 고구려 역사 유적 탐방을 함께 한 대불련 법우들이 그 여정의 중심에서 당당히 서 있기를 바란다. 지난 일정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앞으로의 삶 속에서 당당함으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고구려의 기상으로 발현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COREA의 고구려’는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다.


▲ 김화현(동국대 서양화과)

광활한 옛 고구려 땅에 발도장을 찍으면서 민족의 얼을 온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곳이 진정 우리의 영토였나, 어쩌다가 우리 후손들은 고구려를 잊고 있었나’라는 생각에 원통하고 비통한 생각까지 들었다. 마지막 날 비사성에서 묵념을 하고 반야심경을 독경하였을 때는 가슴이 뭉클, 뜨거워지는 전율을 느꼈다. 이번 기회로 인해 조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커졌다. ‘세계 속의 한국’이 아닌 ‘세계 중심의 한국’이 되는 그 날까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