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자연 속에서

내 마음의 풍경

2007-01-24     관리자

자연속에서, 한기늠 작(Italy Marble 14*19*48cm)
태양이 뜨고 지는 곳, 오륙도와 동백섬 그리고 광안대교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이 곳 해운대, 세계 어느 나라 휴양지보다도 아름답다. 청사포에서 올려다 보이는 달맞이 언덕은 이태리에 내가 살고 있는 이웃도시인 친쾌테레(Cinquettere)와 비슷하다. 바다 위에 돌출된 다섯 곳의 예쁜 마을이라는 뜻의 친쾌테레는 자연풍광이 아름다워 여름이면 수많은 휴양객이 이 곳을 찾는다.
6개월 전 처음으로 고국 땅인 이 곳 달맞이에 작업장 겸 전시장을 하나 더 두었다. 새벽이면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게 되고, 해질녘 언덕 위의 집 베스타에서 바라보이는 석양은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감격하며 했던 말은 나 역시 고국땅을 밟을 때마다 그 느낌을 받는다.

자연과 더불어
열흘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갖고 부산으로 돌아왔던 날, 노란 멕시코해바라기 한 송이가 나를 반겼다. 작업장 마당에 깔린 판석과 판석 사이에서 민들레처럼 짧게 홀로 당차게 피어있는 것이 신비롭다.
사흘 전 매서운 태풍 에위니아가 세차게 몰아쳤는데도 그 자리에 그대로 피어있는 것이 놀랍다. 나는 매일 아침 꽃 앞에서 반야심경을 독송한 뒤, 꽃에게 다음 생에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 몸 받아 태어나라고 빌어주고 있다.
10여 년 전 이태리의 집 앞 작업장 풀숲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었던 두꺼비에게 열엿새 동안 반야심경을 독송해주었다. 그 신비로운 소식을 「불광」에 띄워 보낸 다음날 두꺼비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지금도 그 두꺼비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나투신 것이라 믿고 있다.
알프스와 지중해의 자연 속에서 15년 넘게 살아오면서 자연은 어느새 내 절친한 도반이 되었다. 이태리의 중부도시 아시시에 가면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이 있다. 성당의 벽에 13세기의 화가였던 지오토가 그린 벽화 18점 중에 성 프란체스코가 새에게 설교하는 그림이 있다.
새벽 예불 후 작업장을 나서기 전, 성곽으로 둘러싸인 집안 곳곳에 올리브, 오렌지, 포도나무 등 각종 과일나무들이 많아 새들도 많이 찾아오고 야생화도 많기에 나 역시 자연들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아울러 뻐꾸기와 반딧불이 집으로 찾아오는 봄날이면 내 어린 시절 자랐던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곤 한다.

이태리 유학 15년의 회향
내가 10년 동안 원을 세우고 현대 불교조각을 해 왔던 첫 계기는 관세음보살님을 집안에 모시고 예불 드리면서였다. 그러니까 내 작품세계는 모두 내 주변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태리 생활을 시작하던 해 첫 고국 방문길에 마침 고향에 있는 절 타종식에 참석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 10명의 형제 자녀 이름으로 종 불사를 해놓았기에 나에겐 의미 있고 기쁜 날이었다. 법사로 오신 약천사 혜인 큰스님을 처음 친견한 날 방생을 하고 이태리를 떠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해 마지막 날 부처님 전에 공양할 꽃을 가득 사서 들고 제주도 약천사로 향했다. 굴법당 관음전에 꽃 장엄을 하고 3일 동안 하루 천 배씩 삼천 배를 했다. 방생을 정성들여 하고 난 뒤 관음전 기도의 여운이 오래 남아, 혜인 큰스님께 부처님 한 분을 이태리로 모셔가고 싶다고 부탁드렸더니 관세음보살님을 점안식 해주셨다.
이태리로 모시고 간 관세음보살상에 꽃공양을 올리고 매일 아침 예불을 모시던 어느 초여름날, 꽃시장에서 연꽃을 발견하고는 너무 반갑고 기쁜 나머지 연꽃을 모두 사서 환희심으로 이웃에도 나눠주고 집안 부처님 전에도 꽃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 전에 올린 연꽃잎이 방바닥에 떨어진 것을 우연히 손바닥에 올려 갖고 놀다가 연잎의 생김새 따라 반가부좌한 구도형태를 흙으로 조그마하게 모형을 만들어 완성하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10년 넘게 구도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나 자신도 한국의 산사에서 수행하는 수행자처럼 살면서 외롭고 힘들 땐 운문사 명성 학장스님께서 써주신 “무소의 뿔처럼 살라”는 글귀를 늘 가슴에 새기며, 당당하게 걸어가시는 스님의 모습과 “청정하고 평등한 마음의 본바탕을 깨우쳐 부처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신 관응 큰스님의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 속에서 내 마음은 어느새 힘이 솟고 마음이 맑아진다.
15년 전 이태리로 유학을 떠날 때 원을 하나 세웠었다. 15년 후 유학에서 돌아오면 사회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그 원은 한국에 국제미술원을 세우고 작은 법당 하나 지어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며 후진양성에 매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연과 빛’으로 3년 전부터 작품을 제작하면서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작품으로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돌아왔다는 느낌을 내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이 놀랍다. 유럽에서나 이 곳 고국 땅에서나 내 작품을 보는 이들은 마음이 맑고 편안해진다고들 한다. 지난 해에 제작한 ‘비파나무 잎새’나 ‘내심의 향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무아지경에 빠져 들기도 한다.
지난 해 초여름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현관 앞에 비파나무 잎새가 어떻게 그렇게도 많이 떨어졌던지. 그리고 15년이나 사용해오면서 몰랐던 미켈란젤로(Statuario) 대리석에 비추이는 자연의 빛, 조명의 빛이 그렇게 아름다운 빛을 드러낼 줄 미처 몰랐었다.
아름다운 색의 빛을 발휘하는 오닉스와 스타투아리오 대리석으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맑히는 일을 하라고 부처님께서 비파나무 잎새로 변해 나투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