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과 코끼리

연꽃나라 이야기 [14]

2007-09-08     관리자


  애처로운 장님 할아버지

 옛날 한 임금이 있어 나라를 매우 잘 다스렸는데 사람들은 그 임금님을 경면왕이라 불렀습니다. 임금님은 날마다 모든 백성들이 어떤 어려움속에 살고 있는지, 왕이 돌봐주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등 세심하게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거의 모든 날 궁중으로 많은 백성들을 초대하여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백성들의 살아가는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때로는 임금님께서 몸소 궁궐을 나와 백성들이 사는 마을을 걸어다니시며 백성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신하 몇 사람들을 거느리고 마을로 내려오셔서 이곳 저곳을 유심히 살펴본 임금님은 궁궐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한 채의 낡은 집을 발견하고 그 집안을 둘러 보셨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작은 집 앞마당에는 온갖 꽃들이 어지럽게 피어 있었고 햇빛이 마당 가득히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 했습니다. " 이 댁에 아무도 안계십니까 ? " 신하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분이 말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 예, 누가 오셨습니까요. 이 집에는 제가 있지요. 그러나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일 뿐입니다." 소리가 나는 쪽에는 어린아이 만큼이나 작은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 여기 임금님께서 오셨습니다. " " 뭐라구요, 임금님께서 오셨다구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사람 그렇게 놀라게 하시면 안됩니다. " 그 음성은 몹시도 우울하게 들렸습니다.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슬픈, 절망의 쇠창살에 갇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임금님께서 이런 누추한 집에 오실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고 말고요. 이렇게 보잘것 없는 늙은이가 살고 있는 데를 어떻게 임금님께서 오실 수가 있겠습니까 ? 그리고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면 안됩니다. 아무리 앞 못보는 장님이라 해서 임금님을 빌어 멀쩡한 사람을 놀래키면 그것도 또한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요...." 쭈그리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간 임금님은 앞을 못보는 장님 할아버지의 딱한 모습을 물었습니다. " 할아버님 ! 이 집에서 혼자 사시는지요 ? " " 아닙니다요, 지금은 혼자 이지만 저녁이 되면 아들 놈이 돌아옵니다요. " " 예, 그러세요. 그렇다면 조금은 안심입니다만..." "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요 ? 누구시길래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지요. 정말 임금님 이십니까 ?" " 예, 그렇습니다. 좀 더 일찍 찾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해 했습니다. 그러나 장님 할아버지의 태도는 한결같이 겸손해 보였습니다. " 할아버님, 언제부터 그렇게 앞을 못보게 되셨는지요 ?" " 임금님, 이 눈은 제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세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실로 죄가 많은 인생이옵니다. 날마다 한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꽃도, 하늘의 뭉게구름도,.... 어찌 살았다 하겠습니까마는.... " 실로 애처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경면왕은 즉시 한 신하에게 명령했습니다. " 자네에게 부탁하겠네. 당장 전국에 있는 장님들의 수를 조사하여 적당한 기회에 날을 잡아 장님들을 모셔다가 성대한 잔치를 베풀도록 하게." " 임금님, 어찌 장님들에게까지 잔치를 베푸시려 하십니까 ?" " 으음, 그건 다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잠자코 내 뜻을 따라주시오. 또한 장님은 장님이되 태어날 때부터 앞 못보는 장님만을 부르도록 하게나." 마침내 장님들의 잔치날이 되었습니다. 나라 안의 장님, 그 중에서도 태어날 때부터 눈을 못 뜬 장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마련해서 대접을 아주 극진히 했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비단 옷까지 잔뜩 준비해 놓았습니다.

 임금님은 장님들을 며칠 동안 잘 먹고 편히 쉬도록 해 주셨습니다. 장님들이 궁궐을 떠나려고 하던날 아침 임금님은 신하들을 다시 불렀습니다. " 이 궁궐에서 가장 큰 코끼리를 끌어다 놓고 저 장님들에게 만져 보도록 하시오. 또 그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들어 보도록 합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큰 코끼리 한 마리를 끌고 온 신하는 장님들께 말했습니다. " 여러분, 여기 코끼리라고 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손으로 만져 보시고, 과연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는지를 제각기 말씀해 보십시요." 그 신하는 한 사람씩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코끼리 앞에 선 장님들은 코끼리를 만지기도 하고, 귀를 대어 보기도 하며... 얼마동안 별 짓을 다 해보았습니다. 한참 후에 임금님은 장님들 앞에 나아가 물었습니다. " 여러분은 방금 코끼리라 부르는 동물을 만져 보았습니다. 근데 그 코끼리란 동물은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하십니까 ?" " 예, 제가 말씀드리지요. 제가 보기엔 코기리는 둥근 통 같았습니다." " 아니예요. 저는 둥둥둥 치는 북과 같았습니다." " 저로선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봅니다." 서로가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더니 마침내는 큰 소리로 각자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싸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온통 수라장이 되어버린 광경을 지켜 본 신하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때 임금님께서 신하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 이것은 웃을 일이 아니요, 자신이 만진 그 부분을 코끼리의 진짜 모양인양 믿고 주장하는 것처럼, 눈을 뜬 사람들은 진리의 세계에서 장님이 되어 있음을 모르고 살고 있음이요. 내가 오늘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만지도록 한 까닭은 우리들이 욕심에 의해 가려진 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이 바로 장님들이 만진 코끼리의 모습과 꼭 같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일깨워 주고자 했던 것이요. 오늘의 깨달음이 있다면 여러분의 앞날에 밝은 지혜의 눈이 뜨여지길 바라오." ( 여기서 경면왕이라고 하는 임금님은 석존의 한 전생이였다고 한다.) < 우타나 6 . 4 六度集經 八卷 >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