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꿈 밝은 길

건강한 관계

2007-09-03     관리자

살아가노라면 가끔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통해서도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은 내가 알고 잇는 그런 얘기 하나를 소개해야겠다. 내 얘기를 듣는 독자도 한동안 간접적으로나마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수한 출판사중의 하나인 K출판사는 교양물과 어린이물 그리고 교과서를 동시에 출판하고 있기 때문에 편집직원만 해도 400명이 훨씬 넘는다.
 지금은 년간 매상고가 천 억대에 달하고 있어 하나의 기업체로도 탄탄한 자리를 굳히고 있지만 그 출판사도 초창기에는 몹시 어려웠던 듯 싶다.
 창업주가 처음 출판사를 창건하고 난 후 경영의 어려움 속에 빠지자 또 자신의 집은 물론 친구의 집까지 저당해 은행돈을 빌려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집까지 저당해 은행 돈을 빌려 쓴 지경이었다면 또 사채도 끌어 쓸 수 있는 데까지는 끌어 썼을 것이다.
 경영주가 이런 곤경속에 빠지게 되니 직원들은 자연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하나 둘 직장을 버리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회사를 떠나갔다.
 그래서 마침내 그의 사무실에는 20대 후반의 젊은 여직원만 남게 되었다. 혼자 남은 그녀는 동료들이 떠나간 사무실을 혼자 지키면서 회사의 명맥을 유지해 갈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주위 사람들한테 돈을 빌려서 곤경에 처한 사장을 돕기 시작했다.
 말이 쉽지 동료들이 떠나간 직장을 혼자 지키면서 재기한다는 특별한 보장도 없는 사장을 돕는다는 것….이 일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나는 아직 그녀를 만나 본 일이 없다. 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할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몇 년 전 그분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강한 감동을 받았다. 기억만은 생생히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런 신의와 확신을 갖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다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때의 그녀 모습이 비장하도록 아름답다는 것이다.
 살아가노라면 가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손을 잡아 준다면, 그 잡아 주는 손길이 간절한 염원과 진실이 담긴 것이라면….그 사람은 자신의 손을 잡아 주는 누군가가 잇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되찾을 수 있고 용기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곤경에 처했던 그 사장님도 그랬던 것 같다.
 20대 후반의 젊은 여직원이 자신의 재기를 염원하면서 혼자 사무실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사업자금을 구해오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면 그런 여직원을 둔 사장이 어떻게 좌절의 늪에만 빠져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다시 필사의 노력으로 사업에 임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유수한 출판사를 창건해 놓았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녀에 대해 최고의 신의를 지킬 뿐아니라 회사의 경영권도 상당량 주고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면 그녀의 조언이나 판단을 높이 사고 있다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그녀를 고모라 호칭하고 가족들고 마치 친인척처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이다. 30여년 정도의 세월을.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에게서 가장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그 사람이 이성과 감성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을 때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신뢰감과 존경심이 느껴질 뿐 아니라 친근감과 따뜻함도 느껴진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이성쪽만 발달된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사고나 판단에 대해 신뢰감은 가나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져 가깝게 접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반대로 이성쪽 기능이 없고 감성만 발달된 사람을 보고 있으면 친근하고 따뜻해서 편안하기는 하나 뭔지 모르게 불안하고 그 사람의 사고나 판단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생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관계를 맺고 산다.
 스님과 신도, 스승과 제자, 상사와 동료,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친구와 친구…. 한 인간이 자신의 생 안에서 경험하게 되는 관계만 나열하려고 할래도 아마, 한참은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관계를 맺고 살면서도 우리들은 어느 것 하나 이렇다하게 성공시킨 관계를 떠올리기가 어렵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이성과 감성을 적절하게 조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조화시킬 수 있을 만한 성숙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이성과 감성을 적절하게 훈련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예를 든 여성에게서 우리가 아름다운 감동을 받는 것을 그녀 안에서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발견하기 때문이다.
 감성은 관계를 따뜻하게 결속시켜가고 이성은 냉철한 판단력을 갖게 한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강한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개인의 관계뿐 아니라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K교수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분은 앞으로 3, 4년 안에 불교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분의 예견을 들은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무슨 이유로요?"하고 쳐다 봤다.
 그러자 그분은 나의 어리둥절함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김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자 얼마 안 있어 대통령 가족이 청와대 안에서 예배를 보는 장면이 매스컴을 통해서 보도 되지 않았습니까? 그 장면을 보고 많은 불교도들이 배신감을 느꼈죠. 분명히 그분은 지난번 선거때, 청와대에서 찬송가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겠다는 말은 잘못된 보도며 절대로 자신은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불교인들한테 약속을 했었으니까요.
 거기다가 지난 번 보도를 통해서 안 바와 같이 모부대에서 군법당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을 쌀자루에 넣어서 뒷산에 매장한 사진 같은 것은 앞으로도 계속 터질 가망성이 있거든요. 이러한 일들이 향후 3, 4년간 이어지면서 불교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K교수의 말을 듣고 나는 처음 어리둥절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다가 잠시 후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의 진의를 알게 되었다.
 이교도가 가해오는 자극에 의해 우리 불교도들은 결속되게 되고 그 결속에 의해 결과적으로 불교가 발전되게 될 것이라는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논리였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불교가 발정해서는 안 된다.
  그 방법안에는 이성이 배제돼 있기 때문이다. 이성이 배제돼 있는 힘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위험한 힘이 표면으로 분출되지 않도록 이교도들은 물론 우리 불교도들도 이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는 가장 아름다우며 그것은 개인의 관계뿐아니라 전체의 관계속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