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심 연작소설] 부처님은 배신감을 느끼실까?

남지심 연작소설

2007-09-02     남지심

절에 가기 위해서 아침 일찍 목욕을 갔다 온 강여사는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승희 한테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친구는 남편과 약국을 하기 때문에 강여사 쪽에서 전화를 거는 일은 가급적 삼가고 있었다 . 친구가 전화를 받으면 다행이지만 친구 남편이 받으면 서로가 불편해서였다. 거기다가 요즈음은 윤주 때문에 경황이 없을 것 같아 더욱 전화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강여사는 자신의 마음이 친구한테 전해졌는가보다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나야,
그렇잖아도 니 전화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디서 만날래?
나 아무래도 오늘 절에 모가겠어.
왜?
윤주일도 그렇고… 나도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럴수록 가야지. 그냥 나하고 갔다 오자.
아니 오늘 안갈래. 이런 기분으로는 못가겠어.
그럴래….
강여사는 달리 어떻게 권유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어렇게 말끝을 흐렸다.
미안하지만 너 절에 갈 때 나한테 잠깐만 들러줘.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승희가 급하게 말했다.
왜?
기도 동참비 라도 좀 보낼려고.
알았어. 가는 길에 들릴께.
강여사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친구는 자기보다 더 편치않은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보면서.
강여사는 친구 승희와 함께 한달에 한번씩 북한산에 있는 승가사에 나가고 있었다. 승희 이외에도 한두명 친구가 동행할 때가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절에 가는 일이 일정하지 않았다.
하기 때문에 강여사와 동행하는 친구는 승희 하나 뿐이었었다.
북한산은 행정구역으로은 서울 종로구지만 심산유곡 못지않게 골이 깊ㅓ서 한달에 한번씩 절에 갔다오면 좋은 산에 등반을 갔다 온 것처럼 심신이 함께 쾌락해져서 좋았다.
그래서 늘 승희와 함께 다녔었는데 오늘은 천상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강여사는 승희가 절에 가지 않겠다고 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딸 윤주 때문이었다.
윤주가 대학입시에서 두 번씩이나 낙방을 하자 승희는 아예 머리를 싸매고 두문불출하더니 기어이 절에도 갈려고 하지 않았다.
승희는 딸만 둘을 두고 있었다.
큰딸 윤애는 학교를 다녔으면 금년이 졸업반인데 스스로 학교 다니는 일을 포기하고 요즈음은 생산 공장 공원으로 일하면서 노조일 을 주도해 가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운동권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교내 학생데모를 주관해 오더니 끝내 학교에서 중퇴하고 아예 그 길로 나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승희는 딸한테 눈물로 호소도 하고 무릎을 꿇고 빌기도 하였지만 그런 것은 딸의 마음을 돌려 놓기엔 너무 힘이 없었다. 승희는 딸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꼈고 그것은 절망감과 함께 허무감까지를 불러와 그녀를 괴롭혔다.
그런 와중에서 그런대로 자기자신을 지탱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둘째 딸 윤주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 문이었다. 윤주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유증 때문에 다르를 조금 절고 있었다. 하지만 심한 편은 아니어서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뿐아니라 뛰지만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 눈에 잘 띄지는 않을 만큼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부모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승희는 윤주의 가는 왼쪽 다리를 볼때마다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고 그 아픔은 연민과사랑으로 어어져 윤주에 대해 병적이리만큼 깊은 애정을 쏟으며 살아왔다. 윤주는 기질도 보드랍고 얼굴도 고울뿐 아니라 특히 노래를 잘해서 사랑을 쏟는 것만큼 키우는 기쁨도 돌려 주었다.
승희는 노래를 유독 잘 부르는 윤주를 상악과에 보낼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해 봤지만 무대에 설때마다 자기자신에 대해 갈등을 빚을 딸이 안스러워 그냥 미대에 보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아이가 그점에 전혀 소질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윤주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화실에 나갔고 학교 미술반에서는 그림을 잘 그리는 편에 속했었다.
이런 윤주를 위해 승희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절에 나가 부처님께 윤주의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렸고 집에서도 아침마다 천수경봉독과 함께 관음주력을 해왔다. 그러나 윤주는 첫 해에 1차와 2차에 모두 낙방했다.

승희는 깊은 실의에 빠졌지만 대학에 합격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더 보편화된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애써 다 잡고 딸을 위로해 재수하는 일년동안 승희는 더욱 부처님께 매달렸다. 새벽마다 절에 나가 새벽기도에 동참했고 입시생을 위한 기도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를 했다. 그렇게 일년을 보냈는데 금녀에 또 1차 시험2차 시험에 모두 낙방을 한 것이다.
강여사는 친구가 겪고 있을 고통이 가슴 속으로 전달되어져와 마음이 무거웠지만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그냥 절에 갈 준비를 해가지고 집을 나왔다.
강여사 집에서 승희네 집은 버스로 두정거장 정도의 거리여서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강여사가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 쇼파에 앉아있던 승희가 고개를 들었다.
남편은 안에 계시니?
강여사는 친구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윤주는?
걔도 안에 있어.
밥은 좀 먹니?
아니
큰일이다. 어떻게 해야하니.
사는게 지옥같애
승희는 울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여사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를 때려부술 수만 있다면 폭탄을 터트려서라도 때려 부수고 싶어. 불쌍한 윤주가 제도에 유린 당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승희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강여사도 빽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난초같이 연약한 윤주가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네 번씩이나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고 생각하니 무엇인가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우리 윤주가 오늘 아침 어떻게 한줄아니?
승희는 눈물을 닦고 나서 강여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제방에 있던 관세음보살 액자를 내방에다 엎어 놓고 가는거 있지.
손목에 차고있던 단주하고 염주도 같이 같이 말이야.
걘 이번에 부처님한테 어떤 배신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애. 솔직히 말해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모든게 허무하고 너무 야속해.
부모노릇 하기가 이렇게 힘든줄 알았으면 난 정말 자식을 낳지 않았을 거야.
우리 애들도 나주에 나처럼 힘들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애들이 나무 불쌍하게 느껴져.
기도비는 니가 대신 갖다내줘
부처님하고 한 약속이니까 지켜야지.
승희는 미리 준비한 봉투를 강여사한테 건네 주며 허탈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갖다 낼게.
강여사는 이번에는 내가 갖다 내지만 다음 달에는 같이 가서 내자 하는 말을 할까하다가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니가 마음을 잡아야 윤주도 마음을 잡지 하는 말도 할까하다가 그말도 입속으로 삼키고 그냥 가게문 을 나왔다.
거리로 나오자 강여사도 마음이 허탈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절에 가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승희 기도비를 받았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세검정 쪽으로 가??
차안에 혼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속 에 잠겨 있던 강여사는 묘한 의문속에 잠겼다. 그건 부처님도 우리 인간처럼 배신감을 느끼실까? 하는 것 이었다.
아까 승희처럼 인간이 부처님한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해가 간다는 말은 옳다던가 그르다던가 하는 말하고는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물론 강여사도 승희가 한 말을 이성적으로 는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우리의 사람이 수많은 고통을 통햇 성숙해 가듯이 신앙도 좌절과 갈등 속에서 성숙돼 간다는 것을 강여사는 알고 있어서였다. 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느
신앙은 그런게 아니야 하고 충고해 주고 싶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승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서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부처님도 우리 인간처럼 배신감을 느끼고 계실까? 하는 의문속에 잠겨있던 강여사는 그러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속으로 마음이 굳혀갔다.
물로 부처님은 무량한 자비심을 지니고 계시니 중생들한테 배신감을 느끼셨다 해도 인간들처럼 토라 지시 는 게 아니라, 더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감싸 주실 려고 하시겠지만 배신감 만은 순간 순간 느끼실 것 같았다.
부처님께서 고통을 빠져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천변만화로 당신의 몸을 나투고 계시지만 그러한 뜻도 모르고 철부지 말썽꾸러기들처럼 잘못을 반복하고 있으니 … 부처님인들 어찌 우리중생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시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보면 강여사는 속으로 혼자 웃었다. 그 생각이야 말로 가장 중생다운 생각이라는 판단이 서서였다.
택시에서 내린 강여사는 승가사 계곡으로 혼자 올라가면서 다음달은 승희도 동행하게 될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말썽꾸러기 자식을 부모가 버리지 않는데 토라진 승희와 윤주 마음을 어찌 부처님이 잡아 주시지 않으시겠는가.
두사람의 신앙은 이런 시련속에서 더욱 깊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