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포교 활동가는 힘이 세다

부루나 존자들/한국철도공사 불교단체협의회

2007-01-24     관리자

“우리는 지금 영주역으로 간다”
토요일 아침, 청량리역 역사 안은 언제나 그렇듯 삼삼오오 모여 앉은 젊은이들과 등산복 차림, 한손 가득 짐을 든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주말의 이맘때와 달리 붉은 색 티셔츠의 물결과 그들의 퀭한 눈, 처진 어깨,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가 역사 안을 감돌고 있었다.
온 국민을 한 달 동안 들썩이게 했던 2006 월드컵 16강의 염원이 몇 시간 전, 안타까운 패배의 쓴맛을 남겨 놓은 때문이리라. 동이 터오던 그 새벽의 안타까움은 우리의 일상에 다시금 ‘무엇에 그렇게 열광(집착)했을까?’를 묻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오늘 최악인데요. 월드컵 스위스 전을 밤새워 응원하느라 힘들었는지, 보통은 근무 순서를 바꿔서라도 수련회에 참석하고는 했는데 오늘은 어째…. 작년 한국철도공사로 공사화된 이후 이번 7월 1일 다시 직제개편에 들어가서 그런지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수련회 와서 부처님께 기도드리고 해야 하는데….”
‘6월 24일 09시 00분 청량리→영주’행 새마을호 기차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정찬연(성북승무사무소, 한국철도공사 불교단체협의회 포교위원장) 기관사의 얼굴에 아쉬움이 역력하다.
정기수련회는 철도무사고기원대법회와 함께 한국철도공사 불교단체협의회(이하 철불협)의 가장 큰 행사이다. 그 동안 쉽게 만나지 못했던 전국의 회원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이기에,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회원들이 많이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12시 25분, 청량리역을 출발한 기차가 정확하게 영주역에 도착한다. 철불협 리경재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영주기관차승무사무소 불교법우회 회원들이 반갑게 일행을 맞는다. 마침 우리가 타고 온 기차를 직접 운전해온 송주열(영주기관차승무사무소, 철불협 총무부장) 기관사가 뒤따라 나온다.
“원래는 신참(기관사) 담당이었는데 잠도 못 주무셨을 것 같고, 여러분이 좀 더 편히 오시라고 제가 직접 하고 왔지요. 편안했지요?”
오늘 수련회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 교대 근무를 했다는 송 기관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그러자 성북승무사무소의 성시오 기관사(철불협 편집부장)가 “기차가 어쩐지 부드러웠다.”며 얼른 맞장구를 친다. 송 기관사의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경북 봉화의 청량사에서 열리는 이번 정기수련회는 철불협 운영위원장인 리경재 씨를 비롯 총무부장 송주열, 재무부장 이기수 씨 등 영주기관차승무사무소 불교법우회가 주축이 되어 준비를 해왔다. 그러니까 조금 전 송 기관사의 진지함은 손님을 맞이하는 쪽의 긴장과 책임감 같은 것이리라. 

포교 활동가는 힘이 세다
현 한국철도공사의 불교신행단체는 1978년 철도청 대전기관차승무사무소의 불자회 창립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983년 영주기관차 승무사무소에서 불교법우회를 창립하면서 80년대에 5개 법우회가 생겼고, 1990년 구로승무사무소 불교법우회를 시작으로 IMF 이전까지 7개 법우회가 더 창립되면서 지역별로 활발한 신행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그즈음 사회 전반에 몰아친 IMF의 태풍은 당시 철도청 내의 불교법우회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기둥 뽑힌 집 기운 격으로 선배 법우들이 직장을 떠나가면서 조직력이 탄탄했던 불자회조차 정기법회를 제대로 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직장 내의 불교신행 활동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움직이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그 활성화가 이루어지는 특성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직장신행단체에 맞는 인재(활동가)의 성장이 필요했던 것.
보다 못해 이일승(서울차량정비창), 이채권(현 철불협 회장, 경남지사장), 박창식(구로승무사무소), 리경재(영주기관차승무사무소), 최비석(부산철도차량정비창), 황국진(서울철도차량정비창), 정찬연(성북승무사무소) 씨 등 철도청 각 지역별로 흩어져 활동하고 있던 몇몇 뜻있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몇 번의 예비모임을 통해 보다 조직적으로 철도청 각 지역 불교신행단체의 창립을 지원하고, 무사고기원대법회 등 철도청 전체 규모의 행사를 준비해나갈 연합단체 결성에 뜻이 모아졌다. 2000년 1월 먼저 철도청불교단체대표자회의(의장 박창식)가 결성되었고 2001년 9월 대전 청사 불자회의 창립을 계기로 철도청불교단체협의회가 탄생할 수 있었다.
2000년 안산승무사무소 불교법우회를 시작으로 최근 KTX 불자회까지 철불협 창립 전후로 10여 개 단체가 새롭게 창립됨으로써 현재 한국철도공사 내 각 지역 불교법우회는 23개 단체, 불자회원 수 1,2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철불협의 결성과 함께 각 지역별 운영위원 제도, 20여 명의 포교사와 교화부장, 사이버포교부장, 여성부장 등으로 구성된 포교위원회의 활동, 사내 통신망인 철도인트라넷 불교동호회의 결성을 통해 신심 있는 불자들을 하나로 묶고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불교신행단체를 창립할 수 있도록 이끌어줌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철불협 창립 이전 승무분야에 편중되어 있던 법우회가 철불협 창립 이후에는 본사, 역, 차량, 지역본부 등 철도 각 분야에서 창립됨으로써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매월 정기법회, 봉사활동, 불우이웃돕기 등 자체 신행활동 외에 ‘자비의 말씀’ 게시판 전국역사 설치, 환경보호활동, 열차안전운행 캠페인, 무사고기원법회, 회보발행, 사찰순례법회, 정기수련회, 신규단체의 창립 지원 등 활발한 연대활동으로 각 분야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
이렇게 철불협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앞서 밝혔듯이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며 열성적으로 활동한 포교활동가들의 힘이 뒷받침되었음은 물론이다.

철불협, 변화를 꿈꾸다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절’ 청량산 청량사의 맑은 공기가 어느새 차가워졌다. 입제식이 시간을 초과했고 수련회 때마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 함께 해주시는 지도법사 화암 스님(양평 사나사)의 법문이 길어진 데다 좌담회가 벌써 2시간을 훌쩍 넘긴 때문이었다. 철불협 이채근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참가자 인사, 각 지역별 법우회 운영 상황 보고가 이어진다. 잦은 이동으로 승무(기관사) 분야에 비해 여전히 어려운 타 분야 법우회의 창립과 운영, 공사화에 따른 회비 징수의 어려움, 지난 5월 부산철도차량관리단 법우회에서 주최했던 경로잔치의 성과, 조직 개편 이후의 불교법우회 운영 문제 등등. 5층 석탑 탑전에 빙 둘러 앉은 40여 명 회원들이 밤이 깊도록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다음날 아침 108 예참에 이어진 청량산 산행과 잡초 뽑는 운력 시간. 회원들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또 지난 밤 못다 나눈 서로의 근황이며, 속살거리는 수련회 이야기로 푸른 청량산과 청량사 이곳 저곳에 웃음 꽃이 활짝 피어오른다. 지난 7월 1일 한국철도공사(사장 이철)는 5개 지역본부와 100개의 지역관리역 및 현업사무소를 통합, 현장업무를 직접 계획하고 집행하는 17개 ‘지사’ 체제로 개편함으로써 조직·인사혁신 과정을 마무리 했다. 이에 따라 철불협도 다시 한번 조직을 추스르고 그 내용면에서 새로운 변화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운송 및 여객 서비스를 통한 이윤 창출과 그 성과의 일부를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공기업. 시대와 직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알차고 다양한 신행활동과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펼쳐낸다면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함께 철불협의 위상도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철도공사 불교단체협의회의 오늘을 만든 직장 내 포교 활동가의 적극적인 육성이 다시 한번 대두되는 대목이다. 철불협의 힘찬 도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