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네 차례 아비라 기도

특집 | 가행정진

2006-11-06     관리자


해인사 백련암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집사람의 꼬임(?)에 의해서다. 1986년 양력 정월 초하루 제야의 밤 기슭에 어둠을 타고 원통전으로 찾아가 다짜고짜 엎드리며 삼천배를 했다.

그 후 간간이 주말이면 백련암으로 삼천배를 하러 가게 되면서 아비라 기도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으나, 그 때는 신심도 부족하고 또 직장생활에 쫓기느라 섣불리 시간을 내기 어려워하다가 한두 차례 도반들에 이끌려 접해보기는 했다.
그러던 중 1991년 봄(4월) 아비라 기도 때부터는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15년여 동안 운 좋게(?)도 이 아비라 기도를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 불자들이 행하는 기도법을 크게 4가지로 나누어보면 참선, 염불, 간경(독경), 주력일 것이다. 아비라 기도는 이 4가지 기도법을 복합적 내지 종합적으로 하는 기도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영원한 마음의 스승이신 성철 큰스님께서는 우리 불자들에게 하루일과-즉 오분향례와 함께 예불대참회(108참회), 대불정 능엄신주(능엄주) 독송, 그리고 화두참구를 일상생활 속에서도 빠뜨리지 말라고 하시고, 1년에 4번은 백련암에 와서 아비라 기도를 하라고 4가지 기도법을 일러 주셨다.

아비라 기도는 년 4회(음력 정월 초 4일~7일, 4월 12일~15일, 7월 12일~15일, 10월 12일~15일) 하는데, 기도 순서는 예불대참회(108배), 비로자나 법신진언(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30분, 대불정 능엄신주(능엄주) 독송까지 해서 1회(차례)가 끝난다.

1차례의 보통 소요시간은 1시간으로 하여 첫날(입제일) 5회, 둘째날 8회, 셋째날 8회, 끝날(회향일) 3회 해서 총 24회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는 부처님 곁에 가까이 가보는 일 즉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공부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라 기도법

아비라 기도는 앞서 말한 대로 예불 대참회(108배), 비로자나법신진언(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30분, 능엄주 독송까지 하면 1회(차례)가 끝나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예불대참회문은 서원 부분 7배, 부처님 명호에 따라 90배, 회향(참회) 부분에서 11배 해서 108배를 한다. 절은 오(伍)와 열(列)을 맞추어 규칙적으로 하지 못하면 앞사람의 엉덩이를 뒷사람의 이마로 들이받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 뒤돌아보고 미안해하고 할 여유가 없는 가운데 숨은 벅차고 땀은 줄줄 흘러 법복을 적신다.

법신진언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외울 때는 장궤합장으로 무릎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흔들지 않으며, 땀이 흘러도 심지어 벌이 쏘아도 자세를 흐뜨리거나 움직이지 않아야 된다.

또한 대중이 같은 속도와 음률로 호흡과 진언소리를 내어 다른 사람의 정신집중도 흐뜨리지 않도록 하며, 자기가 내는 소리를 자기가 들으면서 정신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 한다.

이 법신진언을 외우는 30분간이 아비라 기도의 진수라고 하는데 이 진언 가운데 ‘아비라’라는 글자를 따 와서 아비라 기도라고 이름 붙였다 한다.

아비라 기도의 묘미는 아픈 것을 참고 견디는 데 있다. 한 10여 분이 지나면 점차 무릎을 바늘로 찌르듯 아파오기 시작하고, 20여 분이 지나면 허리와 어깨, 팔 등에 꾹꾹 누르듯 통증이 찾아온다. 이 때부터는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진다.

한참 동안을 참고 낑낑대며 진언을 외웠건만 시간은 겨우 1분 내지 2분밖에 지나지 않았고, 5분여가 남았을 때부터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통증의 고통에 대한 감내의 시간이 도착점에 가까워지므로) 점차 진언소리는 목청껏 외침의 소리로 올라가고 팔, 어깨가 들썩거린다.

물론 기도를 일념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화두도 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후줄근한 땀과 찐찐한 고통감의 뒷풀림 맛을 느끼며, 여래의 정수리에 해당되는 주문이라고 하는 대불정 능엄신주(능엄주)를 경전 읽듯 독송하게 된다.

새로운 힘과 활력충전 기간

아비라 기도는 3박 4일(실제 입제 준비차 하루 먼저 오는 것 감안하면 4박 5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이 소요되고, 음식과 잠자리가 열악한 산사에서 여러 대중이 땀 흘리며,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고, 서로 부대끼면서 지낸다는 점에서 힘든 기도이자 수행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달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1년에 한 번 한다는 것은 기도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기 때문에 철에 한 번씩 4회로 정하신 것 같다. 실제 해보니 우리들의 심신에 게으름과 때가 낄 때쯤 새로운 힘과 활력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이 기도로 업장소멸을 하고 다시 태어나도 중생계 즉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이 아비라 기도를 통해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과 고통, 무더위와 땀범벅의 고통, 혹한의 추운 날씨에 웅크리며 떨던 고통 등등을 미리 맛봄으로써 팔열지옥, 팔한지옥, 화탕지옥 등등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주목나무 가지 끝에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지기 시작하는 오후가 되면, 어디에선가 이름모를 산새가 날아와 지저귀고 범나비가 한판의 춤사위를 훨훨 벌이는 7월의 한여름이 시작된다.

며칠째 계속되는 기도에 나른하고 무거움이 찾아올 때, 쏴아- 한 줄기 솔바람이 쓸어 지나가면서 주는 상쾌한 청량감이 온 법당을 휘감는 그 맛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여름(백중) 아비라 기도 떠날 채비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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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봉|1946년 생으로 중앙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으로 근무하다가 1990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생활을 그만 두었다. 성철 큰스님으로부터 1986년 도천(道泉)이라는 불명과 삼서근의 화두를 받았으며, 지금은 경남 통영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백련암신도-백련선우거사림회 거사로 ‘천지도 모르고 깨춤을 추듯 다니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