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정신위생] 수도와 정신치료 / 이동식

현대인의 정신위생

2007-08-24     이동식


도와 같은 무아실리학적 정신 치료
몇해
전에 한국정신치료학회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로 수도자와 정신치료자의 모임을 가졌었다. 500명 이상의 관심있는 청중들이 모여서 4시가 이상 열을 올리고 자리를 뜰 줄을 몰랐었다. 처음에 몇 사람들은 선사들이 자기 자신의 수도의 경험을 말하지 않고 누구나 다 알고, 그 자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불교의 교리를 장황하게 늘어 놓아, 실망을 참을 수 없어 나가버리기도 했었다. 이럴 때마다 청중들은 선사에게 교리는 다 아니까
수도의 구체적인 경험을 얘기해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사전에 이렇게 될까 봐 여러 번 부탁을 했었는데 이러한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동양이 서양의 침략을 받고, 서양의 지배를 받은 후에 그 여파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침략의 선봉에 섰던 선고사들이 동양사상의 도를 공부하여 경전을 번역해서 서양인에게 소개했고, 서양의 물리학자, 정신분석을 하는 사람들이 도(道)나 선(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1920-30년대다. 그리고 현재는 동양의 명상, 즉 수도에 대한 관심이 일반화되고 근래에는 개념상으로는 도와 완전히 일치하는 무아(無我)심리학적인 정신치료가 대두하고 있다.

명상·신비주의
서양
의 역사는 소크라테스까지는 「너 자신을 알라」즉 대화를 강조해서 도가 있었다고 보겠으나, 그의 제자 플라톤 이후에는 진리에 도달하려면 정심(淨心) 즉 「카타르시스」를 해야 된다고 말만 했지 마음을 정화하는 수도는 없고 이론만 늘어 놓았을 뿐이였다. 단 중세 즉 13세기 말, 14세기 초 에크하르트라는 독일 신부가 신은 무(無)라고 해서 이단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다가 나중에는 철회되었다. 이것을 기독교의 신비주의(神秘主義)라고 하는데 서양의 신부들이 처음에 도를 번역할 때 도를 신(神 ), 존재(存在)라고 번역을 하다가 신비주의라고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조금 유식한 층에서는 도의 중국 발음을 따서「다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일반적으로는 명상이나 신비주의라고 통용되고 있다.

정신분석학적 정신치료
서양 역사에서 동양의 붇다 나 공자, 노자가 나타날 때 소크라테스가 조금 늦게 나타났지만은 도를 닦는 전통은 생기지 못하였다. 그러다 중세기에 와서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가 한쪽 구석에서 대두되었지만 일반화되지 못하고 있다가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에서 유태인 정신과의사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라는 정신치료가 창시되어 비로소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시작되었다. 동양에서는 적어도 2,500년이라는 구체적인 수도의 전통이 연년히 이어 왔지만, 서양에서는 겨우 20세기 말에 마음의 정화의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된 셈이다.
서양의 정신분석 치료는 최면술로부터 시작해서 무의식의 작용을 발견하고 어릴 때, 경험의 중요성 등으로 본인이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를 해결 못하여 자기는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실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이러한 굴레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유 연상케 하여 설명하게 하고 꿈을 해석하며 환자의 마음에 내재된 사랑과 미움의 감정적 근원을 파악하여 자기 마음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저항을 분석하였다. 처음은 무의식만 의식화시키면 남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인격구조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격구조는 타고난 기질과 어릴 때의 가까운 사람, 즉 부모 형제나 식구들과의 정서적 교류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병적인 경험을 주로 다루고 파헤치는 데 주력을 했으나 근자에 와서는 이러한 병적인 부정적인 측면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을 지적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부정에서 긍정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또 다른 불만이 생기게 되었다. 인간이란 정신분석의 이론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실존분석(實存分析), 현존재분석(現存在分析)으로서 실존주의적인 정신치료운동이다. 이론과 기법(技法)에 매달리는 것을 배격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일찍이 유럽에서 일어난 운동이고 실존주의 자체가 서양인에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자각케 하고 해결의 제시가 없다는 점에서 도(道)의 입문(入門)이다.

제 3·4세력의 심리학
이러한 실존정신치료적인 운동보다 뒤늦게 미국에서 일어난 운동 또한 도(道)를 지향해 오고 있다. 제3세력과 제4세력의 심리학이 그것이다. 전자는 전통적인 서양의 심리학인 실험심리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동물 혹은 대학2학년생을 연구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을 동물이나 대학 2학년만의 심리를 보는 것은 부당하다. 그리고 정신분석은 병든 인간의 심리를 가지고 인간심리를 이해하자는 것이니 이것도 부당하다. 지구상에는 서양 사람보다 성숙된 인간이 존재한다. 성숙된 인간의 심리학이라야 인간의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주의 또는 인본주의 심리학, 존재(存在)심리학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도(道)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같은 인간주의 심리학파 내에서 일어난 제4세력의 심리학은 무아(無我)심리학이다. 이 운동은 인간주의 심리학에서는 아직도 「나」에 대한 집착에 매달려 있으니 최고의 궁극적인 정신건강은 나를 초월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완전히 도와 일치한다. 그러나 도를 닦는 사람들이 무아에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이들도 관념으로만 무아이지 자기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동과 서의 보완
실제적 문제로는 평생 도를 닦아도 견성이 어렵다는 점이 있고, 훌륭한 정신분석자에 치료를 받아도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수도자나 환자의 근기(根機)가 낮아서 그렇다고 볼 수 있으나 그렇지 않는 면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양식의 정신분석적인 치료만으로는 궁극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려면 도를 닦아야 한다. 도는 정신이 비교적 건강한 사람이 닦아야지 정신이 불건강한 사람이 닦으면 오히려 더 나빠질 우려가 있다. 도를 닦는 동기가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문제에 직면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입산수도를 해서 견성 성불하겠다고 수도를 하다간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타락 또는 환속을 하게 된다. 정신치료를 받아서 이익을 볼 사람만을 골라서 해야 하고 수도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도를 할 사람은 서양식으로 간단한 정신치료를 받아서 자기 문제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수도를 해야 좋은 결과와 효과가 오지 않나 생각이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깨달음을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올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동과 서가 서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동과 서의 정신치료를 서로 보완함으로써 상호 발전을 촉진하고 보다 더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