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수행 대중화를 위한 방편 모색

불강 창간 23주년 특별좌담

2007-08-20     관리자

일시

 불기 2541년 10월 8일 오전

장소

  서울 안국동 국제연등불교회관

좌담에 참여하신 분들

 원명스님/국제연등불교선원장

 김희균/월간 『대중불교』주간

 사회 및 원고정리 남동화

사회자 :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바쁘신 가운데 자리를 함께 해주신 데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호는 저희 월간불광이 창간된 지 23주년이 되는 기념호입니다. 불자들의 신행활동을 위해 절박하고도 필요한 문제를 들추어내다 보니까 ‘불교수행의 대중화를 위한 방편모색’라는 주제를 이끌어 내게 되었습니다.

  불교은 깨달음의 종교, 수행의 종교라는 말을 합니다. 수행에 대한 관심은 확산되고 있는데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그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면 밝혀보고, 가능하다고 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불교수행의 대중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해주신 스님과 두 분 선생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불교수행의 대중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오면서 오랜 동안 수행해 오시고,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체험하고 부딪쳐 왔던 경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자연히 우리들이 이르고자 하는 결론에도 어느 정도 도달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스님께서 불교수행이란 무엇이며 왜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원명: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 자신은 누구인지, 왜 이렇게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의 의문을 갖게 됩니다. 설령 이러한 의문을 잦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모든이들의 궁금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이 있습니다. 존재근원에 대해 탐구해 들어가는 것이 참선이고 수행입니다. 불광에서도 늘 말해오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생명이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임을 밝혀보는 것이지요. 무아(無我), 무심(無心), 오매일여의 지고체험을 해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선이요, 수행입니다. 자기 자신과 우주가 하나 되어 이 우주의 주인공으로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불교수행의 요체입니다.


사회자: 김희균 주간님께서는 그 동안 여러 수행프로그램에 참가해보시고 또 많은 분들을 만나보셨지요. 불교수행의 현황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김희균 : 불법에 귀의하고 불교를 공부하고 ‘아 절말 부처님 말씀대로 살면 되겠구나’ 싶어 갖가지 수행을 해보지만 번뇌망상이 정진을 방해하고, 번뇌를 떨쳐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번뇌는 더해진다고 합니다. 특히 재가불자의 경우에는 수행에는 전념할 수 없고, 아쉬움을 가진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결과적으로 중도에 좌절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불교수행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수행을 지도하는 단체들도 늘고 있다는 것은 다행 한 일입니다. 현재 행해지는 수행법에는 선(禪), 염불(염송), 독경, 사경, 만트라(다라니, 주력) 절(예배)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한국불교수행의 전통은 선이고 그 중 간회선이라고 알고 있지요.

  그런데 일반 재가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칫 이러한 방법들이 방만하고 체계가 없어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일상생활을 하는 일반 불자들이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 수행을 계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특히 간화선의 경우는 화두를 던져주고 깨쳐보라 하니 보통 근기의 사람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수행을 다 해보신 스님이나 법사가 오는 사람의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주고 꾸준히 점검해주는 것이 좋겠지만 그러한 곳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가르치는 분들이 다 각각입니다. 참선을 하시는 스님은 주로 참선만 하라고 하고 기도하는 스님은 기도를, 그리고 교학하시는 스님는 교학을, 염불하시는 스님은 염불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 배우는 입장에서는 혼선이 올 수밖에 없어요.


김열권: 우리나라 불교가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아왔고, 대승경전과 조사스님들의 어록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자연 초기 경전 특히 아함경에서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 부족합니다. 사제팔정도 십이연기 중도 계정혜에 대한 가르침이 근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불교가 전래된 지 1600여 년이 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고,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고, 어떻게 제자들에게 수행을 지도하셨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대개 우리 불교의 선 수행 방법을 보면 유교 불교 도교의 수행방법이 접합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구분이 안 되고 있어요. 심지어는 불교의 수행법이라고 하는데 힌두교의 수행과 혼돈되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다보면 그 차이점이 분명히 드러나요.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견(正見)을 습득해야지요. 성철 큰스님의 백일법문에서도 자주 말씀하시고 계신데 아함경을 중심으로 우선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분명히 이해하고 수행을시작하며 틀림이 없어요. 대승경전의 말씀도 사실은 아함경 안에 다 있어요. 부처님의 말씀이 원형 그대로 쓰여 있는 것이 아함경이지요.

  중국 선종의 영향으로 수행법이 화두 참구법에만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화두 참구법의 뿌리도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으신 수행법인 위빠싸나(慧觀 Vipassana)에 뿌리가 있다고 봅니다. 불교의 모든 수행은 반야에 의지하지요. 불교와 타종교나 타수행법과의 극명한 차이는 반야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어요. 반야의 실상을 보았을 때 중도, 연기가 드러나고, 모든 수행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요, 위빠싸나 수련은 처음부터 반야관에 의지하기 때문에 호흡과 관련된 물질을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로 관찰하여 그 본질인 공(空)의 자리로 회귀하여 자성을 철견하는 것입이다. 모든 수행은 정(定)과 혜(慧)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견(定見)에 입각한 정혜쌍수(定慧雙修)가 되어야지요.

원명: 제 경우는 선방에 10년 넘게 앉아 있다가 국제포교 한다고 나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공부도 해보고 지도도 해보았습니다만 수행의 방법에는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없어요. 나름대로 장점과 특징이 있는 것이지요. 다만 그것이 현대인들의 근기에 맞아야 하고, 일반대중을 위해 방법적인 개발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즈음은 모든 정보가 개방되고 세계도 한울타리가 된 만큼 국제화 시대에 상호교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요,

  특히 남방에 가보면 일반인들을 위한 선방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요. 무료로 개설되어 있고, 그 대중선방에 공양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1년 이상 예약이 되어 있을 정도지요. 우리 나라에도 몇몇절에 대중선방이 개설되어 있긴 하지만 거의가 노보살님들입니다. 그런데 남방에 가보면 어린이부터 학생 직장인 등 일상 중에도 누구든 들어가서 수행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왜 수행하느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윤회에서 해탈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불자들은 대답이 제 각각이지요.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새로운 수행법이 개발되고 사람들의 근기에 맞게 많은 테크닉들이 개발되고 전문센터들이 곳곳에 많이 생기고, 개방되어야지요.


사회자 : 법사님들께서는 간화선과 위빠싸나를 두루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보신 결과는 어떻습니까.


김열권 :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위빠사나수행을 하고 계신 분들도 차츰 늘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에 전해진 위빠싸나는 주로 미얀마 마하시 스님의 가르침을 위주로 한 것인데 실제로 위빠싸나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 중에는 염불선과 같은 방법도 있고요. 태국에서는 주로 이 방법이 가장 많습니다.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의 전동 간화선이나 염불선를 해보지 않은 분들이 무조건 위빠싸나가 좋다고 하거나 우리의 전통선을 매도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간화선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열심히만 하면 일하면서도 되는 것이 간화선입니다.

  1979년 성철 큰스님께 화두를 받고 6개월 정도 참구한 결과 일상생활 중에도 화두가 들려졌어요. 그런데 오히려 위빠싸나 수행의 경우는 센터에 있는 동안은 잘 되다가도 나오면 흩어지곤 했지요.

  각 수행방법에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고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다만 지도하시는 분이 부처님의 듯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근기에 맞게 지도할 수 있어야지요. 그런 면에서 수행테크닉개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수행을 하는데 제일 문제가 돼는 것이 망상과 잠인데 밀교수행법에 보면 이것을 털어주는 테크닉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어요.


김희균: 불교수행이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 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수행이라는 말이 보편화 되어야지요. 불교는 수행의 종교입니다. 수행이 핵심이지요.

  그런데 기도한다는 말은 잘 쓰지만 수행은 스님이 하시는 것이라든가, 왜 해야 하는지는 물론이려니와 수행은 누구나 해야하는 것인지조차 모르는 것 같아요. 관심을 갖고 수행하는 사람ㅁ도 열심히는 하는데 너무 막연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수행하는 사람도 열심히는 하는데 너무 막연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수행을 뜬구름 잡는 것같이도 생각하고 곡해도 많이하고 있는 듯합니다.

  해인사 원당암이라든지 인천 용화사, 부산 해운정사, 서울 수선회 등에 재가들을 위한 선원이 개설되어있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화두를 받아 스스로 침구해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듯합니다. 스승이 늘 계셔서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번 점검해준다면 모르겠지만 그저 던져주고 깨쳐보라고 하니 화두 참선은 어찌 보면 완벽한 점프에요


원명 : 사실 수행은 수행공간이 있고 능력있고 원력있는 스승이 있고 지도방법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다 되는 거지요.

  문제는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스님들이 이러한 데 많은 관심을 가져야지요. 올바른 스승 밑에서는 다 되는거지요

  대발심하고 지도하시는 스승만 있으면 시간의 차이는 있으나 다 될 수 있습니다. 무슨 수행이든 지도자가 필요해요. 정견(正見) 무상(無常)에 대한 이해가 있는 지도자가 잘만 이끌어주면 반드시 진보가 있습니다  


김열권 : 현재 강남포교당과 불교방송국능인선원에서 위빠싸나를 지도하고 있습니다만 특별히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은 바로 결과가 와요, 수행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하는 만큼의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단전호흡이나 요가, 염불도 다 수행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어요. 시중에서 수행할 경우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씩은 점검을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무상(無常)을 느끼고 대발심과 분심을 일으키고 좋은 스승과 도반 그리고 환경여건이 조성되어 수행의 맛을 보면 누구나 계속할 수 있어요

  그런데 거듭 말하지만 근기에 따라 수행법을 들어야지요. 누구에게나 화두선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아함경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수행지도 방법으로 근기설법을 하셨듯이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사마타와 위빠싸나를 병행하기도 하고 혹은 설법을 통해 지도를 하기도 하셨어요.

  제가 알고 있는 분 가운데에는 50이 넘은 보살님으로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분으로 그분은 장사를 하시면서도 매일 저녁 조계사에서 300배씩을 1년간 하면서 관세음 보살염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매일여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마리안느라고 캐나다 사람으로 지금은 시카코 대학교수로 있는데 그분은 콜롬비아 철학과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옴마니반메훔을 10년하고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를 2년간 했는데 오매일여에 들었어요, 이처럼 수행방법은 다를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의 차이는 있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하는 만큼은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수행의 주제는 사실상 크게 나누어 보면 네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어요. 빛, 소리, 호흡, 마음이 그것이지요. 그 중 가장 무난한 방법이 호흡입니다. 선정도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만, 어떤 수행이든 하나만 제대로 하면 다 통하게 되어 있지요.

  근기에 따라 염불을 하면서 위빠싸나를 할 수도 있고, 주력을 통해 망상을 가라앉힐 수도 있고, 특별히 지적이거나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은 화두참선이 좋아요.


김희균 : 어찌되었든 수행을 하는 데에는 신심(信心)과 분심(忿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지속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결과도 오는 것이지요. 제 경우는 다른 어떤 수행법을 통한다고 하더라도 화두선이 궁극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요즈음 사람들의 말을 빌면 화두는 허공에 무엇인가를 잡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특히 초보자들에게는 테크닉도 필요해요. 수행 테크닉을 통해 작은 체험이라도 하게 되면 수행으로 인한 변화를 느끼게 되고 수행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지면서 계속해 지속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수행이라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너무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우선 없애 주어야 하고,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수행에 대한 테크닉 개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서양에서 개발된 비교적 완벽하다고 생각이 드는 수행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에 갔었습니다. 40여개 나라에서 온 수행자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는 그 사람들과는 달리 이미도(導)에 젖어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특히 불교신자의 경우는 확실히 의식 수준이 높아요. 다만 교육은 서양식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가르치고 인지하는 데는 혼선이 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는 서양사람들이 개발한 명상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다양한 수행법을 체험하고 능력을 확보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사회자 : 이번에 참가하신 프로그램이 아봐타과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수행의 테크닉이 개발되어야 한다는데 모두들 동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한 면에서 아봐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희균 : 아봐타는 선공학(嬋工學)이라고도 불리며, 미국의 명문공대 학생이던 해리 팔머 씨에 의해 개발된 일종의 의식탐구프로그램입니다.

  아봐타 코스는 불교라는 한마디 없이 어떤 종교의 벽도 뛰어넘고 있지만 그 안의 전면에는 사성제, 팔정도를 비롯한 불교의 기본관점들과 수행법들이 막연한 관념을 넘어서 촘촘히 깔려 살아움직이고 있어요. 불교의 수행체험을 서양인의 의식과 서양의 합리적인 논리 체계로 너무도 명쾌하게 현대화된 프로그램으로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상(無常)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일체유심조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지금 내 생활속에서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하며, 이렇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과 확신에 찬 체험을 안겨줍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늘 깨어있음이 가능하고 자신이 우주의 주체자로, 근원으로 살게 되며, 세상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과 둘이 아님을 알게 되고, 경이감과 자비심이 샘솟게 됩니다.

  자칫 서양에서 들어온 이러한 프로그램 자체에 반감을 갖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방법과 기술적인 면들은 우리 불교계에서 좀더 진지하게 변용과 재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심사숙고해 보아야 하지 않나 합니다.


사회자 : 스님께서는 지난 9월 28일 강화도에 외국인들의 수행공간인 국제선원을 개원하시면서 해외포교의 또 다른장를 여셨는데 외국인 수행지도는 어떻게 하시고 계십니까.


원명 : 서양사람들의 경우는 주로 불교 수행하면 신비체험을 우선 생각합니다. 깨달음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어요, 그렇게 신비감이나 신통력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열에 아홉 도중하차를 합니다. 바른 이해 없이 무었인가를 기다린다거나 관심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불교수행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해탈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성공 여부를 따지는 것은 성취욕에 불과하지요. 무상(無常), 무아(無我)가 될 때까지 세세생생 나아간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나아가는 것이지요.

  제가 지도해본 경험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동양인들은 종교적인 측면이 강하고 서양사람들은 철학적인 측면이 강해요. 그러니 그 접근 방법도 달라져야지요. 그리니 자칫 종교적이기만 해서는 기복에 빠지기 쉽고, 또 철학적인 논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했을 때에는 신심 없는 사변에 떨어지기 쉽지요.

  그래서 우선은 불교기초교리를 공부시키고 기도와 절을 시킵니다. 저희 스님께 배운 대로 아비라 기도를 시키고, 매일 108참회를 시킵니다. 그리고 특별히 화두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삼천 배를 시킵니다. 그만한 근기는 있어야지요. 삼천 배를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마음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 이러한 바탕이 마련된 사람에게 근기에 따라 화두를 주고 있어요. 성철 큰스님께서도 그렇게 하셨고요.

  그런데 특히 소련사람들을 공부시키다보면 참으로 단순하고 순지하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분별심이 없어요. 가르치는 대로 그대로 알아듣지요. 마치물이 스며드는 것 같아요. 앞으로 그 곳에서 도인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김희균 : 제 경우 어떤 절박함에서 스승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극복해보고자 여기 저기 다녔습니다. 절, 독경, 염불, 주력을 열심히 하다가 화두도 들어보니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점검을 받고자 했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혹 사도에 빠지지않는가 하는 두려움은 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책을 통해 스스로 터득도 하다보니 많은 세월을 보내게 되었지요.

  특히 간화선은 책을 보지 말라고 하는데 불교에 대한기본적인 상식없이 공부를 하다보면 이렇게 많은 세월 별 진전없이 방황을 겪게 됩니다. 처음 불교에 입문한 사람에게는 우선 기본교리를 공부시키고, 경전공부와 더불어 기도를 시키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행쪽으로 옮겨 앉도록 이끌어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저 사변적으로 불교를 알거나 막연하게 신심이 생겨 기도만 계속하게 되지요.


김열권 : 불교모임 가운데 문사수(聞思修)라고 하는 모임이 있던데 참 좋은 이름이라는 생각입니다. 잘 듣고 생각해서 수행을 해야지요. 제 경우에는 20분에서 30분 정도 불교의 근본 가르침과 수행의 필요성이라든지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설명하고 호흡과 기체험을 하게 하고 위빠싸나를 하게 합니다.

  염불을 하더라도 역시 관(觀)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수행하는 사람들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끌어주고 있어요. 최소한 수행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는 주 1-2회 정도의 지도가 필요해요. 그렇게 하다보면 집중력이 특별히 뛰어난 사람은 매일매일 변화가 있어요

  저도 아직은 공부하는 과정입니다만 확철대오한 스님이 계셔서 근기에 따라 한사람 한사람의 수행의 정도를 점검 해주고 지도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사회자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소 겹치는 부분도 있고, 불교수행방법 모색을 위한 구체적인 접근이었다기보다는 주변을 맴돌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오늘이 자리에서 얻어진 결과라고 한다면 수행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수행은 근기에 따라 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방편이랄까 테크닉이 필요한 것이며, 현대 다양한 사람들의 근기를 고려할 때 수행의 방편도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불광지에 글을 주시고 오랫동안 수행해오신 이남덕 교수님께서는 여성들에게는 염불선이 근기에 맞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성실성, 원만구족의 본성자리, 불성자리에 가지 위한 수많은 방편들이 있고, 궁극은 하나라 할지라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납득을 원하는 현대인을 위한 수행방편 테크닉 개발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은 또 다른 기회로 미루고 이만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수행하시는 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지요.


원명 : 수행은 역시 사이다 콜라맛일 수가 없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물맛 같은 것이지요. 우리가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윤회하는 한은 세세생생 해야 할 우리의 과제죠, 옛날 조사스님들이 공부하신 것을 보면 정말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셨어요. 이 점은 우리 수행하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기도 하지요.

  사실 지금까지 불교수행에 대한 많은 말을 했습니다만 우선 먹어봐야 맛을 알 듯 모두가 그 문에 들어 가봐야 하는 것입니다. 글쎄요.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53계단 중에서 첫 번째 계단이나 올라갔을까요. 다 겉껍데기 이야기예요


모두들 동감하며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