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불교미술] 중국편 37.키질14굴

중국편 37. 목숨을 구해주고 배은당한 곰의 인연―키질석굴제 14굴 및 제63굴 천정벽화

2007-08-09     이기선

 이번에 소개하는 그림은 「근본 설 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一切有部毘奈耶破僧事)」권 제15에 있는 이른바 「곰의 본생」(熊)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그림은 키질석굴 제14굴 굴천정 왼편과, 제 63굴의 주심굴 천정 오른쪽에 있다.

  탐심 앞에 무기력한 양심

 먼 옛날 바라날사(바羅날期)성에 한 가난한 나뭇꾼이 살았다. 그는 늘 땔나무 해다 팔아서 생활하였다. 어느날 나무를 하러 숲에 갔다가 그만 때 아닌 폭풍우를 만났다. 폭풍은 이레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그는 폭풍우를 피해 헤매다가 깊은 산 속에 이르러 한 석굴(石窟)을 발견하고는 굴 속으로 피신코자 했다. 굴의 문 앞에 이르러 안에 곰(熊)이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달아났다.

 달아나는 나뭇군을 본 곰이 그를 불러 세웠다.
『선남자여, 이리 오시오. 그대는 나를 두려워 마시오.』
그 말에 나뭇군은 오히려 더욱 두려운 마음이 생겨 발이 달라붙어 달아나지도 앞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곰이 그 가여운 모습을 보고는 그를 안아서 굴 속으로 데려가서는 두려움을 갖지않도록 애쓰고 여러 가지 맛있는 나무 열매 등을 구해와 그가 굶주리지 않도록 하였다. 그렇게 보살피기를 칠일이 지나 여드렛째가 되는 날 곰이 굴 밖으로 나가서 폭풍우가 그친 것을 알고는 먹을 것을 싸주면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나뭇꾼은 무릎을 꿇고 합장하면서 곰에게 말하였다.
『저는 알뜰한 보살핌 덕택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곰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말만 하지 마시오. 그것으로 나에 대한 은혜 갚음은 족하니까.』나뭇꾼은 곧 일어나 곰의 둘레를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다짐의 말을 하였다.
『제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말을 퍼뜨려, 감히 배은망덕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끝내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곧 길을 떠났다.

 나뭇군이 바라날사성의 성문에 이르렀을 때 사냥을 나가려는 사냥군을 만났다. 전에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사냥꾼이 먼저 물었다.
『그대가 며칠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부인과 아이들이 모두 크게 근심을 했소. 폭풍우를 만나 헤매다가 호랑이나 여우를 만나 틀림없이 먹힌 줄 알고 있다오. 큰 비로 해서 짐승들도 많이 죽었는데 그대는 어떻게 목숨을 구했소?』

 이에 나뭇군은 그가 겪었던 일을 떠벌리면서 마침내 곰이 자기를 구해 준 사실을 말하였다. 사냥군이 다구쳐 물었다. 『그래, 그 곰이 지금 어디에 있소? 내개 그것이 사실인지 보여줄 수 있소 .』
나뭇군은 지금 겨우 살아왔는데,다시 산에 들어갈 수는 없노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자 사냥꾼은 갖은 말을 다하여 나뭇군을 꾀었다.
『내가 만일 그 곰을 잡으면 그대한테는 대부분을 주고 나는 조금만 갖겠소.』

 이 말에 나뭇꾼은 탐심이 생겨 그만 곰이 있는 곳으로 앞장서 갔다.굴 가까이 다가가 곰이 있는 곳을 가리켰고 곰은 그를 알아보았다. 때에 그 사냥군은 굴 앞에다 나뭇가지를 가득 쌓아 놓은 다음 불을 질러 연기를 피어내어 굴 속으로 몰아 넣었다. 굴 안에 있던 곰은 매운 연기로 고통을 겪다 마침내 죽음에 이르자 게송을 읊었다.

나는 이 산 속에 머물면서
한 사람도 해친 일이 없었네.
맛있는 열매, 풀뿌리로 굶주림
을 면케 하며
늘 자비의 마음을 일으켰네.
내 이제 목숨이 다하여
다시 무엇을 꾀할 건가,
스스로 지난 업(業)을 생각하니
선업·악업 모두 지은대로 받는
것을.

 게송을 마치자 마침내 목숨을 마쳤다. 때에 그 사냥군은 곰이 죽은 것을 알고 굴 속으로 들어가 곰의 살과 가죽을 발라내고 셋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나뭇군에게 말했다.
『그대는 둘을 갖고 내가 하나를 갖겠다.』나뭇군이 손을 뻗어 곰의 고기를 받으려 하자 그만 그의 두 손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사냥꾼은 이 광경을 보고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고 놀라 곰의 고기를 버려둔 채 곧 성으로 돌아가 이 희귀한 사실을 임금에게 아뢰고 또 나라 사람<國人>들에게도 널리 알렸다.

 임금은 이 이야기를 듣고 친히 그 곳을 찾아 곰의 가죽을 거두어서 사찰에 들러 대중들에게 그 사실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사중(寺中) 가운데 으뜸되는 이가 게송으로 임금에게 말했다.

임금님은 마땅히 아시오.
이는 곰의 몸이 아니라
바로 덕높은 보살이시니
정녕 무상과(無上果)를 얻어
삼세(三世)의 공양을 받으리니
임금님이시여, 탑을 세워 기리시라.

 이에 왕은 신하들에게 명을 내려,갖가지 향목을 모아 다시 곰의 굴을 찾아 그 몸을 태운 곳에 탑을 세웠다. 그리고 온갖 꽃과 향을 올리고 화려한 번개(幡蓋)를 달아 장엄하여 쇄소공양(灑掃供養)을 올렸다. 임금과 대신 그리고 뭇사람들까지 함께 규약을 만드니, 해마다 한번은 함께 모여 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규약을 정한 뒤 탑을 예배하고 성으로 돌아왔다.

  악업의 참혹한 잔재

 그림을 보자. 화면의 상태가 좋지 않아 아쉽지만 자세히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표현을 찾을 수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 활을 쏘는 사람의 윗부분이 보이고, 시위가 겨냥한 쪽을 따라가면 붉은 색의 짐승이 엎드린 모습이 보인다. 곰을 그린 것으로 생각되는데 얼굴과 두 앞발 등 윗몸의 일부만 그려 있고 나머지 부분은 보이지 얺는다. 혹 화면의 상태가 나빠 보이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 수 있으나, 곰의 상체가 끝나는 부분을 유심히 보면 굵게 처리한 검은 테 비슷한 표현에서 그것이 곰이 동굴 속에 있는 장면을 나타내기 위한 화사(畵師)의 숨은 뜻 임을 알게 된다.

 또한 사냥꾼이 활을 잡고 있는 왼팔 아래쪽에 흰색의 반점이 크게 눈에 띄는데 그것은 은혜를 배반한 나뭇군의 떨어진 두 손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힘껏 시위를 겨냥하는 사냥꾼의 힘에 넘치는 알몸의 표현에서 탐심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읽고, 그 탐심 앞에 무력해진 인간의 양심을 엎드린 곰이 상징하고 있으며, 배은(背恩)이란 악업의 참혹한 잔해(殘骸)가 땅에 뒹구는 더러운 양손(兩手)으로 극명하게 묘사되고 있다면 필자의 견강부회가 지나친 것인가.

 내친 걸음에 억측을 더 해보자. 이 인연설화를 읽다가 문득 「삼국유사」제5,「대성 2 세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大城孝二世父母.神文王代)」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특히 대성이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날 밤 꿈에 나타나 꾸짖는 곰에게 용서를 빌며 곰의 소원대로 절을 세울 것을 다짐하고는,꿈에서 깨어나 그 후로는 사냥을 그만두고 약속대로 곰을 잡았던 그 자리에 장수사라는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하겠다.

 시공을 넘어,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설화가 묘하게 얽히면서 우리에게 새삼 큰 일깨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군종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