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

현대인의 정신위생

2007-08-07     관리자
 

 우선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

  정신분열병으로 한 두어 달 입원을 했다가 퇴원한 후 일 주일에 두 번씩 정신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던 처녀가 하루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인생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한다. 처음에 입원할 때에는 불안하고 교회에서 만난 남자에 관한 망상에 가득 차 있었고 퇴원할 때에도 그 남자와 몇날 며칠 어디서 틀림없이 만난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이 처녀의 병은 어려서부터 앞집에 돈 많은 트기 출신의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그녀를 귀여워해서 낮이면 늘 그 집에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에 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점차로 마음이 공허해지고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가 미워지고 어려서부터 와 있는 일하는 아이가 미워지고 천주교 성당을 나가게 되었다.

  입원하기 몇 년 전부터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일년 전에는 스스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았으나 악화되어 부모가 데리고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처녀는 퇴원 직후에는 남자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가, 수녀가 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수녀가 될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나는 부모님에게도 그런 얘기를 말씀드리라고 일러주고 왜 수녀가 되려고 하느냐 물어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란다.

  성당을 왜 가게 되었는가 물어보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갔단다. 그러면서 수녀님을 만나 상의해 본다고 하기에, 「그럼 수녀님에게 그러한 수녀가 되기 위한 외적인 요건 이외의 다른 자격이 무엇인가 물어보아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기 위해 수녀가 되겠다 하지만, 수녀가 되려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 봉사해야 하는데 당신의 목적과 정반대가 되지 않는가?」했더니, 아무튼 수녀를 만나러 간다고 하기에 만나거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 놓고 의논해 보라고 했다.

  다음에 수녀를 만나고 왔다면서 수녀님 말씀이 우선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를 잘 받으라고 하더라 보고를 했다. 나는 수녀란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풀고 봉사는 것이 본분이라, 보통으로는 하기 어렵고 정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수녀 생활이 견디기 어려워 도중하차하든지 아니면 노이로제나 정신병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 수녀가 되려면 우선 정신이 건강해진 뒤에 생각해 볼 문제라고 일러주었다.


     미약한 뿌리

  이 환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면담을 하고 안정제를 소량 먹고 치료를 받고 있는데 워낙 부모의 협조가 철저해서 다른 환자들보다 빨리 회복이 되는 편이다. 처음에는 부모 특히 아버지가 밉다고 했는데 점차로 부모네 대한 감정이 좋아지고, 일하는 아이에 대해서 가졌던 미운 감정도 일하는 아이가 집안일을 많이 하고 어머니와의 접촉이 많아서 자기보다 어머니와 더 가깝다는 질투, 즉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아 간다는 느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 집과 부모의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집에 오면 자기 혼자 맛있는 것을 먹고 왔다는 죄의식을 지울 수 없고, 할머니에게 의를 하고 있어도 피를 받은 부모와는 같을 수가 없으니 뿌리 없는 나무 아니면 대단히 미약한 뿌리를 가진 나무와 같았고, 할머니 집도 내 집이 아니고 내 집도 내 집 같지 않고 일하는 아이가 도사리고 있는 존재였는데, 중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미약하게 있었던 그 쪽 뿌리를 내리지 목하고 방황을 하다가 하나님 다음에는 남자에게 공상 속에서나마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것이 자기의 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형제를 되찾게 되고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하고도 얘기를 잘 하게 되었다.

  나는 그래서 노이로제나 정신병은 기독교 성경의 탕아(蕩兒), 불경에서 나오는 같은 뜻의 집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정신 건강이고, 마음이 밖으로 흩어져 있는 것이 환자고, 마음잡은 것이 건강 회복이라고 말해주니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기 자신의 생의 의미

  이 처녀는 이 때쯤 하나님이나 남자에게로 흩어져 나간 마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하나님이나 남자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자 무엇 때문에 사느냐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환자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노이로제나 정신병 환자는 병이 낫기 전에는 노이로제적인 욕구, 즉 사랑을 독점하자는 갈애(渴愛)에 집착이 되어 있다가 그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의미의 공백이 온다. 왜냐면 그때까지는 사랑, 관심, 인정, 칭찬 등만이 의미가 있고 다른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갈구가 의미 없으면 자연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인생은 원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되려면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의미가 나타난다. 그 의미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미국의 하버드대학 신학·철학 교수 폴틸리히는 「존재의 용기」란 책에서 무(無)를 받아들임으로서 유신론(有神論)적인 실존주의에서는 신들 위의 신을 만난다 했고,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는 자아를 만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신들 위의 신이나 자아라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본래면목이다.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를 물어보라고 했다. 다음 시간에 와서 얘기가, 아버지에게 물어 보았더니 처자를 먹여 살리고 자녀를 교육시키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은 일반적인 생의 의미고 우리가 하루에 세끼씩 동물과 식물을 자아 먹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이것을 우리 인간들의 가치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짓이 아닌가?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자기가 만든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모 화가(畵家)처럼 인간적인 가치를 가지고 이러한 살생(殺生) 행위를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미친 것이다.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허무에 머물러 있으면 소위 실존주의가 되고 여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선에서 말하는 낙공(落空)일는지 모르겠다.

  정신 건강, 각(覺)은 이러한 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자기 자신의 생의 의미가 생겨나야 한다.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억지로 만든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발견되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 환자는 대학원 학생인데 다는 알아듣지 못 했겠지만 방향은 잡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왜냐면 한 번 깨닫고도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유지되는 편이 가장 빠른 길이다.